미얀마 연방공화국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 ||
국기 | 국장 | |
국가 정보 | ||
국명 | 미얀마 | |
수도 | 네피도 | |
독립 |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 |
언어 | 미얀마어 | |
면적 | 6,765만 9천㏊ (39위) | |
인구 | 5,457만 7,997명 (27위) | |
국교 | 상좌부 불교 | |
종교 | 불교 87.9% 기독교 6.2% 이슬람교 4.3% 불교 0.3% 기타 1.1% | |
경제개발 수준 | ||
상징 | ||
국기 | ||
국가 | 세상이 끝날 때까지 (ကမ္ဘာမကျေ, Kaba Ma Kyei) | |
국화 | 파다욱 | |
정치 | ||
정치체제 | 단일국가, 군사정부, 의원내각제 | |
대통령 | 민 쉐(권한대행) | |
총리 | 민 아웅 흘라잉 | |
외교 | ||
가입 국제기구 | ||
주한대사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28길 12 | |
국가 코드 | ||
104, MMR, MM | ||
국제전화 코드 | ||
+95 | ||
여행경보 | ||
전 지역 출국권고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고대 미얀마에서는 북부에서는 쀼족이 살고 있었으며, 남부에서는 몬족이 모여 왕국들을 세워 살고 있었다.[2] 이후 9세기경, 현재 미얀마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인 버마족이 들어와 1050년대에 버간 왕국을 세웠고, 점차 세를 넓혀 나가며 버마족의 언어, 문화, 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미얀마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버간 왕국은 몽골족의 대침공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말았고, 그 자리에서 여러 소왕국들이 난립하여 패권을 다투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따웅우 왕조에 의하여 통일되었고, 이후 잠시 동안이나마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군림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반에는 꼰바웅 왕조가 현재의 미얀마 지역과 함께 마니푸르와 아삼 지역까지 통치하였다. 그러나 영국-버마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부터는 점차 영국 동인도회사에게 국권을 침탈당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에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잠시동안 일본 제국의 침략을 받아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연합국에 의하여 해방되어 1948년에 독립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62년에 네 윈 주도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다.
미얀마는 독립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류인 버마족과 수적 열세인 소수민족들 간의 민족 분쟁으로 인하여 기나긴 내전을 겪어 왔다. 이 내전이 워낙 격렬했기에, 수많은 인권 탄압과 잔인한 학살들이 벌어지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결국 2011년에 군부가 2010년 총선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군부 정권은 공식적으로 해산하였고, 그 자리를 문민 정부가 들어서 민주주의의 기틀을 놓았다. 이후 국부인 아웅 산의 딸인 아웅산수찌 등이 권력을 잡았고, 이후 경제적 제재를 완화하고 외교 갈등을 해소하면서 인권, 경제 부문 전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때마저도 소수 민족에 대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종교적, 민족적 충돌은 여전하였다. 2015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문민정부와 민주주의를 더더욱 굳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반발한 군부가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결국 2021년 2월 1일에 쿠테타를 일으켰고, 권력을 장악하며 막 자라나던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고 말았다.
미얀마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비동맹 운동, ASEAN, BIMSTEC의 회원국이다. 보석류, 옥, 석유, 천연가스, 자연자원 등이 매우 풍부하며,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메콩 강 유역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의 태양열 발전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명목 GDP는 5,670만 달러이며, PPP는 2억 2,15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다만 빈부 격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부를 군부와 관련된 인물들이 틀어쥐고 있다. 2020년 기준, 미얀마의 인간개발지수는 189개국 가운데에서 147위를 차지했다.
미얀마는 독립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류인 버마족과 수적 열세인 소수민족들 간의 민족 분쟁으로 인하여 기나긴 내전을 겪어 왔다. 이 내전이 워낙 격렬했기에, 수많은 인권 탄압과 잔인한 학살들이 벌어지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결국 2011년에 군부가 2010년 총선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군부 정권은 공식적으로 해산하였고, 그 자리를 문민 정부가 들어서 민주주의의 기틀을 놓았다. 이후 국부인 아웅 산의 딸인 아웅산수찌 등이 권력을 잡았고, 이후 경제적 제재를 완화하고 외교 갈등을 해소하면서 인권, 경제 부문 전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때마저도 소수 민족에 대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종교적, 민족적 충돌은 여전하였다. 2015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문민정부와 민주주의를 더더욱 굳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반발한 군부가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결국 2021년 2월 1일에 쿠테타를 일으켰고, 권력을 장악하며 막 자라나던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고 말았다.
미얀마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비동맹 운동, ASEAN, BIMSTEC의 회원국이다. 보석류, 옥, 석유, 천연가스, 자연자원 등이 매우 풍부하며,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메콩 강 유역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의 태양열 발전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2013년 기준으로 명목 GDP는 5,670만 달러이며, PPP는 2억 2,15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다만 빈부 격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대부분의 부를 군부와 관련된 인물들이 틀어쥐고 있다. 2020년 기준, 미얀마의 인간개발지수는 189개국 가운데에서 147위를 차지했다.
3. 국명[편집]
1989년 이전에는 버마(버마어: ဗမာ)라는 국명이 사용되었다. 미얀마의 군사 정권은 '버마'라는 호칭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데다가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 민족을 아우르지 못한다면서 135개의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명칭인 미얀마(버마어: မြန်မာ)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현재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영국 정부 등도 반체제 인사들의 예를 따라 버마라고 부르지만 미얀마 정부의 항의가 이어지자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비르마니아(Birmania)라고 불리며 미얀마의 정치적 상태를 잘 모르는 제3국들은 여전히 버마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문화어 표기법에 따라 먄마라고 부른다. 유엔은 '회원국이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미얀마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언론사인 경향신문은 공개적으로 미얀마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을 것과 그 대체 표현은 '버마'임을 선언하였고, 대한민국 내부의 여론으로 인하여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자동 맞춤법 전환에서 '버마' 입력시 자동으로 '미얀마'로 고쳐지는 명령 체계는 폐지되었다. 이에 발맞춰 대한민국의 일부 사회 단체도 '버마' 단독 표기를 시작하였다. 2003년 아웅산수지는 방한 중 대한민국 취재진들에게 국명을 '버마'로 표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4. 역사[편집]
네윈은 1988년까지 군사 독재체제를 유지했지만, 경제정책의 실패로부터 심각한 인플레를 부르는 등, 버마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 1988년에는 네윈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나 네윈 장군은 7월에 BSPP 의장을 물러난다(8888 항쟁). 같은 해 9월 18일에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총선거를 공약으로 했기 때문에, 전국에서 수백개의 정당이 결성되었다. 군부는 국민통일당을 결성해 체제 유지를 도모했다. 미얀마 연방 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은 1989년 6월 버마(Burma)에서 현재의 미얀마(Myanmar)로 명칭을 바꿨다.)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수찌 등은 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했지만, 아웅산수찌는 선거 전의 1989년 7월 20일에 가택연금 되었다. 이후, 그녀는 장기 연금과 해방을 반복해 겪었다. 1990년 5월의 총선거에서는 NLD와 민족 정당이 압승했지만, 군정은 선거 결과에 근거하는 의회 소집을 거부해, 민주화 세력의 탄압을 강화했다. 일부의 총선거 당선자는 국외로 피해 망명 정권으로서 버마 연방 국민연합정부 (NCGUB)를 수립했다. 군사 정권은 1994년부터 2007년에 걸쳐 신헌법 제정을 향해서 기본 원칙을 심의하는 국민 회의를 단속적으로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10일 및 같은 달 24일에 신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 가결된 일로, 정권이 주장하는 개혁개방의 로드맵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2005년 11월, 정부 기관이 양곤으로부터 중부 핀마나 근교에 건설 중인 행정 수도로의 이전을 시작해, 2006년 10월 10일에 정식으로 행정 수도 네피도로의 천도를 공표했다. 2007년 9월 18일, 연료의 가격 인상을 배경으로, 불교 승려들이 대규모 반정부 데모를 해 참가자는 며칠 동안 수 만명 규모로 늘어났다. 그에 대해 군사 정권은 무력 탄압을 실시해,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가이 겐지를 포함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2007년 미얀마 반정부 데모). 군부는 2008년 개헌 국민투표를 거쳐 이런 민주화 운동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했다.
2010년 2월 13일, 정부는, 최대 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의 틴 우 부의장의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틴 우는 2003년 5월부터 구속되어 있었다.
2010년 2월 15일, 국제 연합 인권이사회의 킨타나 특별 보고자가 미얀마를 방문해 가택연금 중인 아웅 산 수 지 와의 면회를 요구했다. 작년 2월 이래 3번째의 방문이다. 이해 11월 13일, 가택연금이 해제됐다.
2012년의 보궐선거에서 NLD는 압승을 거두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의석은 여당이 가지고 있다.
2015년 미얀마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국민민주연맹이 상하원의 과반수를 넘는 수의 의석을 차지해 첫번째 민주 정부가 구성되었다.
2005년 11월, 정부 기관이 양곤으로부터 중부 핀마나 근교에 건설 중인 행정 수도로의 이전을 시작해, 2006년 10월 10일에 정식으로 행정 수도 네피도로의 천도를 공표했다. 2007년 9월 18일, 연료의 가격 인상을 배경으로, 불교 승려들이 대규모 반정부 데모를 해 참가자는 며칠 동안 수 만명 규모로 늘어났다. 그에 대해 군사 정권은 무력 탄압을 실시해,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가이 겐지를 포함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2007년 미얀마 반정부 데모). 군부는 2008년 개헌 국민투표를 거쳐 이런 민주화 운동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했다.
2010년 2월 13일, 정부는, 최대 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의 틴 우 부의장의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틴 우는 2003년 5월부터 구속되어 있었다.
2010년 2월 15일, 국제 연합 인권이사회의 킨타나 특별 보고자가 미얀마를 방문해 가택연금 중인 아웅 산 수 지 와의 면회를 요구했다. 작년 2월 이래 3번째의 방문이다. 이해 11월 13일, 가택연금이 해제됐다.
2012년의 보궐선거에서 NLD는 압승을 거두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의석은 여당이 가지고 있다.
2015년 미얀마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국민민주연맹이 상하원의 과반수를 넘는 수의 의석을 차지해 첫번째 민주 정부가 구성되었다.
5. 행정 구역[편집]
공식 수도는 네피도(2006년 초까지는 양곤)이며 행정 수도는 핀마나(2005년 11월 7일부터)이다.
행정구역은 7개 구역(tine/တိုင်း)과 7개 주(pyay nal/ပြည်နယ်)로 되어 있다. 구역은 버마족이, 주는 소수 민족이 주로 거주한다.
행정구역은 7개 구역(tine/တိုင်း)과 7개 주(pyay nal/ပြည်နယ်)로 되어 있다. 구역은 버마족이, 주는 소수 민족이 주로 거주한다.
- 구
- 사가잉 구(Sagaing Division)
- 타닌타리 구(Taninthayi Division)
- 바고 구(Bago Division)
- 마궤이 구(Magway Division)
- 만달레이 구(Mandalay Division)
- 양곤 구(Yangon Division)
- 에야와디 구(Ayeyawady Division)
- 주(Pyine)
- 카친 주(Kachin State)
- 카야 주(Kayah State)
- 카인 주(Kayin State)
- 친 주(Chin State)
- 몬 주(Mon State)
- 라카인 주(Rakhine State)
- 샨 주(Shan State)
6. 지리[편집]
미얀마의 총 면적은 678,500km2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 중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40번째로 크다. 북서쪽은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주와 인도의 미조람주, 마니푸르주, 나갈랜드주, 아루나찰프라데시주, 북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자치구,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윈난성과 접하고 국경의 총 길이는 2,185km이다. 미얀마는 남쪽과 남서쪽으로 벵골만 및 안다만해에 이르는 1,930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서단에 위치하고 있고, 지형적으로는 서부의 아라칸 산맥, 북부의 고산지대, 중부의 저지, 동부의 샨 및 테나세림 산지가 펼쳐져 있다. 중부는 다시 건조지인 상(上)미얀마분지와 저습지인 하(下)미얀마로 나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서단에 위치하고 있고, 지형적으로는 서부의 아라칸 산맥, 북부의 고산지대, 중부의 저지, 동부의 샨 및 테나세림 산지가 펼쳐져 있다. 중부는 다시 건조지인 상(上)미얀마분지와 저습지인 하(下)미얀마로 나뉜다.
7. 기후[편집]
국토가 남북으로 길기 때문에 차이가 많다. 대부분의 지역이 열대 몬순 기후로서 동쪽의 태국과 비슷하나 만달레이 이북은 온대 동계 건조 기후이다. 그리고 북쪽의 산악 지대는 겨울에 서리도 내린다. 몬순의 영향으로 5월부터 우기이다. 강우량은 하미얀마에서 2,500mm, 산간부에서는 5,000mm에 달한다. 11월에서 4월에 이르는 동안 몬순이 북동쪽에서 불게 되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조기가 된다.
네피도 이남 지역은 1월 평균 20도이상 온대와 열대의 경계지역인 중북부의 만달레이에서 미치나에 이르는 지역은 1월평균 15~22도 온대기후에 속하는 최북단의 푸타오지구는 1월평균 13도이다.
네피도 이남 지역은 1월 평균 20도이상 온대와 열대의 경계지역인 중북부의 만달레이에서 미치나에 이르는 지역은 1월평균 15~22도 온대기후에 속하는 최북단의 푸타오지구는 1월평균 13도이다.
8. 경제[편집]
미얀마는 워낙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공식 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 게다가 수 십년 동안 이어져 온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 군부의 부정부패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도 빈곤한 국민들이 굉장히 많으며, 비록 자원 수출을 중심으로 수치상 성장은 거듭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사회적, 경제적 성장은 상당히 더딘 편이다. 해외로 수출하는 상품들은 주로 이라와디 강과 태국을 통하여 외국으로 보낸다. 중국과 인도는 2010년대부터 동남아 지역에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미얀마와의 협력을 공고히 했으나, 미국과 EU 대부분 국가들은 인권 문제로 인하여 지난 몇 십년 동안 극심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미얀마가 점진적인 민주화에 들어서자 미국도 이에 태도를 바꾸어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들을 해제하였으며, 투자도 점차 늘리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미얀마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국가들은 주로 동아시아 계열 국가들로, 중국, 싱가포르, 필리핀, 대한민국, 인도, 태국 등이 있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군부가 관광업, 운송업, 석유 채굴업 등 주요 산업들을 대부분 틀어쥐고 이권을 따로 챙기고 있으며 부패도 심각하다.
9. 인문환경[편집]
9.1. 민족[편집]
미얀마에는 중국티베트어족, 따이까다이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인도유럽어족의 4개의 주요 어족이 살고 있다. 중국티베트어족은 가장 폭넓게 사용된다. 이 어족에는 버마어, 카렌어, 카친어, 친어, 중국어가 포함된다. 주요 따이까다이어족로는 샨어, 몬어, 파라웅어가 있고 와족은 주요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사용자이다. 인도유럽어족 언어로는 팔리어와 영어가 있다.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로, 정부 측에서는 135개의 민족들을 인정하고 있다. 인구의 68%를 차지하며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버마족이 가장 대표적인 민족이며,[48] 그 다음이 10%에 달하는 샨족, 7%를 차지하고 있는 카인족, 4%를 차지하고 있는 라카인족, 화교들이 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 전체 인구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몬족은 인근 캄보디아 계열의 민족으로, 언어학적으로는 크메르계와 관련이 있다. 한편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약 2% 정도 있다. 나머지에는 카친족, 친족, 로힝야족, 영국-인도 혼혈인, 구르카족, 네팔인 등이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소수민족들이다. 특히 식민지 시기에는 영국계 백인들과 버마인들이 결혼하여 낳은 ‘앵글로-버마’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독립 이후 대부분 국내의 혼란을 피해 영국이나 호주로 이민을 가버리며 현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 미얀마에는 많아봤자 약 52,000여 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로, 정부 측에서는 135개의 민족들을 인정하고 있다. 인구의 68%를 차지하며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버마족이 가장 대표적인 민족이며,[48] 그 다음이 10%에 달하는 샨족, 7%를 차지하고 있는 카인족, 4%를 차지하고 있는 라카인족, 화교들이 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얀마 전체 인구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몬족은 인근 캄보디아 계열의 민족으로, 언어학적으로는 크메르계와 관련이 있다. 한편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약 2% 정도 있다. 나머지에는 카친족, 친족, 로힝야족, 영국-인도 혼혈인, 구르카족, 네팔인 등이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소수민족들이다. 특히 식민지 시기에는 영국계 백인들과 버마인들이 결혼하여 낳은 ‘앵글로-버마’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독립 이후 대부분 국내의 혼란을 피해 영국이나 호주로 이민을 가버리며 현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 미얀마에는 많아봤자 약 52,000여 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9.2. 언어[편집]
미얀마어가 공용어이다.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약간의 영어도 사용된다. 미얀마에서 주로 사용되는 4개의 어족에는 중국티베트어족, 따이까다이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인도유럽어족 등이 있다.[49] 이 4개의 어족들 가운데에서 중국티베트어족 계열의 언어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중국티베트어족 계열의 언어들에는 버마어, 카렌어, 카친어, 친어, 중국어 등이 있으며, 따이까다이어족 계열의 언어들 가운데에서는 샨어, 몬어, 팔라웅어 등이 있으며 오스트로아시아어족 계열 언어에는 와어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대승불교에서 주로 쓰이는 문어인 팔리어, 그리고 식민시기에 유입된 영어가 있다. 미얀마 전체적으로 보면 100여 개의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언어들은 조그만 부족들 사이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몇 세대 이내에 소멸될 것으로 여겨진다.
미얀마 내 최대 민족의 언어이자 공식 언어이기도 한 버마어는 티베트어와 중국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몬족의 언어에서도 큰 영향을 받은 버마어는 둥글둥글한 글자들을 가지고 있는 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5세기 경 인도 남부 문자에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가장 오래된 버마어 고문서는 11세기 경의 것이라고 한다.
미얀마 내 최대 민족의 언어이자 공식 언어이기도 한 버마어는 티베트어와 중국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몬족의 언어에서도 큰 영향을 받은 버마어는 둥글둥글한 글자들을 가지고 있는 문자를 가지고 있으며, 5세기 경 인도 남부 문자에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가장 오래된 버마어 고문서는 11세기 경의 것이라고 한다.
9.3. 교육[편집]
유네스코 통계청에 의하면 미얀마의 공식적인 문해율은 2000년 기준으로 약 90%라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미얀마는 상당히 높은 문해율을 자랑해왔었는데, 현재 미얀마의 교육은 미얀마 교육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식민시절의 영향으로 영국의 교육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거의 모든 학교들은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으나, 21세기 초에 들어서는 점차 영어를 사용하는 사립 학교들이 부유층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의무교육은 초등학교까지로, 대략 10세까지가 의무교육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보통 의무교육이 끝나는 나이가 15세에서 16세 사이인 것에 비교해보면 상당히 짧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미얀마에는 현재 101개의 종합대학, 12개의 전문학교, 9개의 학부대학, 24개의 대학들이 있으며, 총 합산할 시에는 146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한다.[70] 그 외에도 10개의 기술전문대학이 있으며 23개의 간호대학, 1개의 스포츠대학과 20개의 산파대학이 있다. 또한 양곤 국제학교, 미얀마 국제학교 등을 포함하여 총 4개의 국제학교를 보유하고 있다.
미얀마에는 현재 101개의 종합대학, 12개의 전문학교, 9개의 학부대학, 24개의 대학들이 있으며, 총 합산할 시에는 146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한다.[70] 그 외에도 10개의 기술전문대학이 있으며 23개의 간호대학, 1개의 스포츠대학과 20개의 산파대학이 있다. 또한 양곤 국제학교, 미얀마 국제학교 등을 포함하여 총 4개의 국제학교를 보유하고 있다.
9.4. 종교[편집]
미얀마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불교를 믿으며 이 때문에 승려와 사찰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한 편이다. 군부 또한 불교를 제외한 종교들, 대표적으로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탄압하고 있으며,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공무원이나 군부와 관련된 직업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어렵다.[52] 이같은 종교적 탄압은 특히 미얀마 동부 지역에서 두드러지며, 군부는 지난 10년 동안 불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3,000여 개에 달하는 마을들을 강제로 철거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 20여 년 동안은 2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들이 군부의 탄압을 피하여 인근의 방글라데시로 도피하기까지 하였다.
미얀마인들은 압도적으로 불교를 많이 믿으며, 대략 80%[58]에서 89%의 국민들이 불교를 믿는다. 2014년 종교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87.9& 정도가 불교도라고 한다. 불교 종파들 가운데에서는 상좌부 불교가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미얀마에서는 50만 명의 승려들과 7만 5천명의 비구니들이 있으며, 인구가 5,400만 명 정도라는 것을 고려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종교들도 나름대로 사제직들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 포교 활동들을 할 수 있으나, 다만 로힝야족들은 예외이며 이들은 아예 국민들로 취급받지도 못하고 불법 이민자 대우를 받는 신세이다.
2014년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6.2%가 기독교도이며, 4.3%가 무슬림이며 0.8%가 부족 종교를 믿고 0.5% 정도가 힌두교도, 0.2%가 기타 종교, 나머지 0.1%가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10년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7%가 기독교도이며, 4%가 무슬림이고 1%가 애니미즘 종교를 믿으며 2%가 대승불교, 힌두교 등 타 종교들을 믿는다고 전했다. 1914년부터는 여호와의 증인도 미얀마에 진출해왔으며, 양곤을 중심으로 하여 포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양곤에는 조그마한 유대인 거주지와 시나고그도 있으나, 랍비는 거주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힌두교도가 전체 인구의 0.5% 정도 밖에 되지 않으나, 옛날에는 상당히 강력한 세를 지닌 종교였다. 힌두교는 역사적으로도 인도의 영향으로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와 함께 거의 몇 천년 동안 미얀마의 주요 종교였고, 버마족의 민족 종교나 미얀마 불교에 영향을 줄 정도로 한때 강성했던 종교였던 것이다.
미얀마인들은 압도적으로 불교를 많이 믿으며, 대략 80%[58]에서 89%의 국민들이 불교를 믿는다. 2014년 종교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87.9& 정도가 불교도라고 한다. 불교 종파들 가운데에서는 상좌부 불교가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미얀마에서는 50만 명의 승려들과 7만 5천명의 비구니들이 있으며, 인구가 5,400만 명 정도라는 것을 고려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종교들도 나름대로 사제직들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 포교 활동들을 할 수 있으나, 다만 로힝야족들은 예외이며 이들은 아예 국민들로 취급받지도 못하고 불법 이민자 대우를 받는 신세이다.
2014년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6.2%가 기독교도이며, 4.3%가 무슬림이며 0.8%가 부족 종교를 믿고 0.5% 정도가 힌두교도, 0.2%가 기타 종교, 나머지 0.1%가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10년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7%가 기독교도이며, 4%가 무슬림이고 1%가 애니미즘 종교를 믿으며 2%가 대승불교, 힌두교 등 타 종교들을 믿는다고 전했다. 1914년부터는 여호와의 증인도 미얀마에 진출해왔으며, 양곤을 중심으로 하여 포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양곤에는 조그마한 유대인 거주지와 시나고그도 있으나, 랍비는 거주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힌두교도가 전체 인구의 0.5% 정도 밖에 되지 않으나, 옛날에는 상당히 강력한 세를 지닌 종교였다. 힌두교는 역사적으로도 인도의 영향으로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와 함께 거의 몇 천년 동안 미얀마의 주요 종교였고, 버마족의 민족 종교나 미얀마 불교에 영향을 줄 정도로 한때 강성했던 종교였던 것이다.
10. 문화[편집]
미얀마는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하고 있는 덕분에 그 문화도 상당히 범위가 넓으나, 아무래도 주류가 되는 것은 불교 문화와 버마족들의 문화이다. 버마 문화는 주로 중국, 인도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특히 문학의 경우에는 인도에서 건너온 상좌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얀마의 대표 서사시라 일컬어지는 ‘야마 잣또(Yama Zatdaw)'는 인도의 서사시인 라마야나의 변형으로, 태국, 몬족,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편 미얀마에 유입된 불교는 미얀마의 전통 민족신앙이었던 ’낫 신앙‘과 현재까지도 공존하고 있다. ’낫 신앙‘은 일종의 정령 신앙으로, 37명의 ’낫‘들을 중심으로 하는 다신교 애니미즘 신앙이다.
시골 마을들이나 교외의 경우, 사찰이 문화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이들중에서도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미얀마 문화를 이끌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소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짧은 기간 동안 승려의 삶을 체험하는데, 모든 불교를 믿는 남성의 경우 20세가 되기 전에 이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받으며 여성들의 경우에는 귀를 뚫는 의식으로 성인식을 치른다. 또한 많은 마을들은 자신들의 마을들을 지켜주는 낫들, 즉 신들을 각자 모시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마을들마다 문화도 상당히 다르다.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서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영국의 교육 제도가 미얀마에 유입된 것 등이 있다. 또한 양곤과 같은, 백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했던 대도시들에는 식민지풍의 서구식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섰으며, 특히 동남부에 살고 있는 카렌족이나 북부에 북동부에 살고 있는 친족들은 영국으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인구 조사에 의하면 미얀마 전체 인구의 68%가 버마족이며 나머지 32%가 소수민족이라고 하는데, 다만 소수민족 측의 망명 인사들 측에서는 40% 가량이 소수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골 마을들이나 교외의 경우, 사찰이 문화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이들중에서도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미얀마 문화를 이끌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소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짧은 기간 동안 승려의 삶을 체험하는데, 모든 불교를 믿는 남성의 경우 20세가 되기 전에 이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받으며 여성들의 경우에는 귀를 뚫는 의식으로 성인식을 치른다. 또한 많은 마을들은 자신들의 마을들을 지켜주는 낫들, 즉 신들을 각자 모시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마을들마다 문화도 상당히 다르다.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서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영국의 교육 제도가 미얀마에 유입된 것 등이 있다. 또한 양곤과 같은, 백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했던 대도시들에는 식민지풍의 서구식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섰으며, 특히 동남부에 살고 있는 카렌족이나 북부에 북동부에 살고 있는 친족들은 영국으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인구 조사에 의하면 미얀마 전체 인구의 68%가 버마족이며 나머지 32%가 소수민족이라고 하는데, 다만 소수민족 측의 망명 인사들 측에서는 40% 가량이 소수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0.1. 요리[편집]
미얀마의 요리에서는 생선을 주로 쓰며, 피시 소스, 해산물 발효식품인 나피(ngapi), 말린 새우 등을 즐겨 사용한다. 미얀마의 국민 아침 식사로도 불리는 모힌가(Mohinga)는 쌀국수와 생선 육수를 낸 국물로 만든 요리이기도 하다. 특히 해안 도시들에서 해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두드러지며, 만달레이와 같은 내륙 도시들에서는 오히려 해산물보다 육류나 가금류가 주로 사용된다. 내륙에서는 주로 민물고기나 생선들을 단백질 섭취원으로 먹으며, 생으로 먹거나 염지를 하거나 건조시켜서 먹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하여 먹는다. 또한 샐러드를 주된 음식으로 먹는데, 쌀, 보리, 국수, 파스타, 감자, 생각, 토마토, 라임, 콩, 절인 찻잎 등 다양한 재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샐러드를 즐겨 만들어 먹는다.
10.2. 미디어[편집]
미얀마 군부의 엄격한 독재와 사회 차단 탓에, 미얀마는 상당한 크기의 인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미디어 기업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미디어 기업들은 국영으로 군부의 통제를 받으며, 일부는 민간 소유 기업들이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모두 군부의 검열을 받아야만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다. 2012년 8월 20일에는 문민정부 측에서 검열을 일부 완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이후로 언론과 타 방송사들이 더 이상 방송 전 의무 검열을 받아야할 필요가 사라지기도 했다. 다만 지난 수십년 동안의 군부 독재의 망령은 사라지지 않아서, 저널리스트들이나 언론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로이 펴고 있지 못하며 때때로는 자신들이 쓴 글들에 대하여 처벌을 받기도 한다. 2013년 4월에는 2012년 8월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국제 사회에 미디어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는데, 이때 이후로 군부 독재 이후 처음으로 민간 소유의 언론사가 세워지기도 했다.
10.3. 인터넷[편집]
미얀마의 인터넷 접속 비율은 타 국가들에 비하여 낮은 편이다. 미얀마 군부는 아직까지도 엄격한 인터넷 검열을 실시하고 있으며, 정부 측에서는 2012년까지만 해도 인터넷 블로그들에 게시되어 있는 글들이나 이메일들을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얀마에서는 인터넷 등을 통한 활동들이 굉장히 제약되어 있었고, 심지어 ‘자가나르’라는 아이디를 가졌던 한 블로거는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인한 미얀마의 피해 상황을 찍은 비디오를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자가나르는 2011년 10월에 석방되었다.
세계경제포럼에 의하면 미얀마는 통신 인프라가 아시아에서도 가장 미비하고 열악한 국가이다. 이 상황은 이후에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아서, 2016년 NRI 조사에서 미얀마는 전체 139개국들 가운데에서 133위를 차지하였다.
세계경제포럼에 의하면 미얀마는 통신 인프라가 아시아에서도 가장 미비하고 열악한 국가이다. 이 상황은 이후에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아서, 2016년 NRI 조사에서 미얀마는 전체 139개국들 가운데에서 133위를 차지하였다.
11. 정치[편집]
미얀마는 명목상으로는 의회민주주의에 기반을 한 입헌공화국이지만, 2021년 2월에 발생한 미얀마군 주도의 군사 쿠데타로 인하여 아웅산수찌 국가고문 주도의 내각이 무너지고 다시 군사 정권이 수립되었다. 2021년 2월, 미얀마군 지도부는 1년 간의 국가비상상태를 선포하였으며 초대 부통령인 민 슈웨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신임했다. 또한 군부 측 최고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이 국가통치평의회를 창설해 의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는 양원 의회와 2020년 총선 결과를 무효화하고 아웅산수찌와 그녀의 측근을 구금하고 여당 민족민주연맹을 불법화시켰다.
미얀마의 헌법은 독립 이래로 3차례 개헌이 이루어졌는데, 그동안 워낙 오랜 기간 동안 군부의 독재가 이루어졌기에 사실상 유명무실하며 헌법보다 미얀마군의 이권이 더 중요시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미얀마는 대통령이 일부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양원제를 기반으로 한 의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 중 25%는 미얀마군이 지명하며 나머지 75%의 의원들만 총선을 통하여 선거로 뽑힌다.
미얀마 의회는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원(House of Nationalities)는 224석,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는 440석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원의원 224명들 중 168명은 직접선거를 통한 총선으로 뽑히며, 나머지 56명은 미얀마 군부에 의하여 임명된다. 마찬가지로 하원 역시 330명의 의원들만 선거로 뽑히고 나머지 110명은 군부에 의하여 임명된다.
미얀마 정계는 크게 2개의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가 아웅산수찌 국가고문이 이끄는 정당인 민족민주연맹(NLD)이며 나머지 하나는 미얀마군 및 재향군인 단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방단결발전당(USDP)이다. 현재 미얀마의 헌법인 3차 헌법은 2008년에 군부 주도로 국민투표를 통하여 발효되었는데, 2,200만 명의 투표자들 중에서 무려 99%가 헌법 통과에 찬성의 뜻을 표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이 투표 결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군부가 자신의 뜻에 맞는 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투표함 바꿔치기, 찬성표 추가하기, 개표 결과 조작하기 등 다양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2010년 선거에서는 군부 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여러 해외 국제기구들은 이 결과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이 바로 오직 군부가 인정한 정당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으며, 가장 대표적인 야당인 민족민주연맹은 선거에 참가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선거의 부정 결과와는 상관없이, 2010년 선거로 인하여 구성된 정부가 아웅산수찌를 포함하여 여러 반 군사정권 활동가들을 가택 연금에서 석방하고 통제를 완화함에 따라 군부가 이런 조치라도 하는 것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향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또한 정부 측에서 갑작스레 2011년에 개혁 정책을 펴면서 관제가 아닌 야당의 존재를 허용하기 시작하자, 민족민주연맹 또한 야당으로 등록하고 후일의 선거를 기약하면서 2010년의 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하였다.
미얀마의 정치 역사는 전체적으로 군부의 탄압과, 끊임없는 민주화 시도와 그에 대한 충돌들로 얼룩져 있다. 미얀마가 앞으로 어떻게 민주화를 진행할 것인지가 향후 미얀마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후 2015년에 아웅산수찌의 민족민주연맹이 압승을 거두면서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기대도 한때 매우 높아졌었다. 미얀마의 부패인식지수는 전체 180개국들 중 130위를 차지하였다.
미얀마의 헌법은 독립 이래로 3차례 개헌이 이루어졌는데, 그동안 워낙 오랜 기간 동안 군부의 독재가 이루어졌기에 사실상 유명무실하며 헌법보다 미얀마군의 이권이 더 중요시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미얀마는 대통령이 일부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양원제를 기반으로 한 의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 중 25%는 미얀마군이 지명하며 나머지 75%의 의원들만 총선을 통하여 선거로 뽑힌다.
미얀마 의회는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원(House of Nationalities)는 224석,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는 440석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원의원 224명들 중 168명은 직접선거를 통한 총선으로 뽑히며, 나머지 56명은 미얀마 군부에 의하여 임명된다. 마찬가지로 하원 역시 330명의 의원들만 선거로 뽑히고 나머지 110명은 군부에 의하여 임명된다.
미얀마 정계는 크게 2개의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가 아웅산수찌 국가고문이 이끄는 정당인 민족민주연맹(NLD)이며 나머지 하나는 미얀마군 및 재향군인 단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방단결발전당(USDP)이다. 현재 미얀마의 헌법인 3차 헌법은 2008년에 군부 주도로 국민투표를 통하여 발효되었는데, 2,200만 명의 투표자들 중에서 무려 99%가 헌법 통과에 찬성의 뜻을 표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이 투표 결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군부가 자신의 뜻에 맞는 헌법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투표함 바꿔치기, 찬성표 추가하기, 개표 결과 조작하기 등 다양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2010년 선거에서는 군부 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여러 해외 국제기구들은 이 결과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이 바로 오직 군부가 인정한 정당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으며, 가장 대표적인 야당인 민족민주연맹은 선거에 참가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선거의 부정 결과와는 상관없이, 2010년 선거로 인하여 구성된 정부가 아웅산수찌를 포함하여 여러 반 군사정권 활동가들을 가택 연금에서 석방하고 통제를 완화함에 따라 군부가 이런 조치라도 하는 것이 미얀마의 민주화를 향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또한 정부 측에서 갑작스레 2011년에 개혁 정책을 펴면서 관제가 아닌 야당의 존재를 허용하기 시작하자, 민족민주연맹 또한 야당으로 등록하고 후일의 선거를 기약하면서 2010년의 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수용하였다.
미얀마의 정치 역사는 전체적으로 군부의 탄압과, 끊임없는 민주화 시도와 그에 대한 충돌들로 얼룩져 있다. 미얀마가 앞으로 어떻게 민주화를 진행할 것인지가 향후 미얀마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후 2015년에 아웅산수찌의 민족민주연맹이 압승을 거두면서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기대도 한때 매우 높아졌었다. 미얀마의 부패인식지수는 전체 180개국들 중 130위를 차지하였다.
12. 외교[편집]
미얀마는 역사적으로도 서구권 국가들과 껄끄러운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만 2010년대 이후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서구 국가들과의 관계가 일부 개선되기는 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서구 국가인 미국은 군부 독재 기간 동안 미얀마에 대한 전격적인 경제 제재를 실시하면서 외교 관계가 상당히 좋지 못한 편이었으나, 2011년 11월부터는 일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제재를 일부 풀어주면서 관계 완화기에 들어갔으며 2012년 1월에는 외교관계를 다시 재수립할 것을 천명하였다. 유럽연합의 경우, 미얀마에 대하여 무기수출 제한이나 무역 특혜 금지, 인도주의적 목적을 제외한 모든 차원의 협력 금지 등의 제재를 가해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은 미얀마에게 보이콧, 미얀마계 기업들에 대한 압박 등을 통하여 미얀마 군부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면서 대다수의 서구권 계열 회사들이 미얀마에 진출치 못하고 철수해야만 했다. 2012년 4월에는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민주계열인 국민민주동맹이 재보궐선거에서 전체 45석들 중 43석을 쓸어가고, 아웅산 수치가 당대표로 선출되는 등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 진전을 보이고 있으니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서구권 회사들이 대부분 미얀마와의 경제 협력을 꺼려하던 와중에, 대다수의 아시아 계열의 기업들은 특히 천연자원 분야에서 미얀마에 투자 가능성을 보고 경제적 협력을 가속화하였다. 이 덕분에 미얀마 군부는 바로 접하고 있는 인도와 중국과 굉장히 정치적으로 가까워졌으며, 일부 인도계와 중국계 기업들은 국내 진출도 허용하였다. 또한 인도가 ‘Look East' 정책을 통하여 아시아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인도와 미얀마 간의 협력도 커졌으며 가스와 원유 탐사, 정보기술 공유, 수소 기술 공유, 항구와 도시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아예 껄끄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2008년에는 인도가 군부의 인권 억압을 명분으로 미얀마에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2011년대에 들어서 점차 민주화가 진행되자, 벨라루스의 총리 부부가 수도인 네피도에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같은 날에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이 방문하여 아웅산 수치와 면담을 갖기도 하였다. 이후 2012년 9월부터는 미얀마의 국제사회 복귀가 더욱 가속되어서 아웅산 수치가 미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2013년 5월에는 미얀마 연방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떼인세인 대통령이 미얀마 역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을 방문하였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에게 미얀마와 미국 사이의 긴장 완화, 경제적 제재 해제 등을 약속하였다. 다만 일부 인권운동가들은 아직도 미얀마 내에서 인권탄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떼인세인 대통령의 방미를 거부하였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미얀마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 회담에서 떼인세인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범 해방, 정치 개혁 상설화, 법치, 소수민족 탄압 금지 등의 논제를 나누었으며, 2013년 5월 21일에는 상호경제협력조약을 체결하기까지 하였다. 2013년 6월에 미얀마는 세계경제포럼을 열었는데, 이는 미얀마가 개최한 첫 국제회의라는 데에서 의의가 매우 컸다. 포럼은 6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렸으며, 약 1,200여 명의 인사들이 전세계에서 참여하였다. 이들 중에서는 10명의 국가원수, 12명의 총리, 40명의 고위공직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9년 7월에는 미얀마를 포함한 37개국의 UN 대사들이 중국이 위구르와 신장 지역에서 소수민족들을 탄압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UN 인권위원회에 보내기도 하였다.
미국과 유럽 등은 미얀마에게 보이콧, 미얀마계 기업들에 대한 압박 등을 통하여 미얀마 군부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면서 대다수의 서구권 계열 회사들이 미얀마에 진출치 못하고 철수해야만 했다. 2012년 4월에는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민주계열인 국민민주동맹이 재보궐선거에서 전체 45석들 중 43석을 쓸어가고, 아웅산 수치가 당대표로 선출되는 등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 진전을 보이고 있으니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서구권 회사들이 대부분 미얀마와의 경제 협력을 꺼려하던 와중에, 대다수의 아시아 계열의 기업들은 특히 천연자원 분야에서 미얀마에 투자 가능성을 보고 경제적 협력을 가속화하였다. 이 덕분에 미얀마 군부는 바로 접하고 있는 인도와 중국과 굉장히 정치적으로 가까워졌으며, 일부 인도계와 중국계 기업들은 국내 진출도 허용하였다. 또한 인도가 ‘Look East' 정책을 통하여 아시아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인도와 미얀마 간의 협력도 커졌으며 가스와 원유 탐사, 정보기술 공유, 수소 기술 공유, 항구와 도시 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아예 껄끄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2008년에는 인도가 군부의 인권 억압을 명분으로 미얀마에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2011년대에 들어서 점차 민주화가 진행되자, 벨라루스의 총리 부부가 수도인 네피도에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같은 날에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이 방문하여 아웅산 수치와 면담을 갖기도 하였다. 이후 2012년 9월부터는 미얀마의 국제사회 복귀가 더욱 가속되어서 아웅산 수치가 미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2013년 5월에는 미얀마 연방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떼인세인 대통령이 미얀마 역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을 방문하였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에게 미얀마와 미국 사이의 긴장 완화, 경제적 제재 해제 등을 약속하였다. 다만 일부 인권운동가들은 아직도 미얀마 내에서 인권탄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떼인세인 대통령의 방미를 거부하였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미얀마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 회담에서 떼인세인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범 해방, 정치 개혁 상설화, 법치, 소수민족 탄압 금지 등의 논제를 나누었으며, 2013년 5월 21일에는 상호경제협력조약을 체결하기까지 하였다. 2013년 6월에 미얀마는 세계경제포럼을 열었는데, 이는 미얀마가 개최한 첫 국제회의라는 데에서 의의가 매우 컸다. 포럼은 6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렸으며, 약 1,200여 명의 인사들이 전세계에서 참여하였다. 이들 중에서는 10명의 국가원수, 12명의 총리, 40명의 고위공직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9년 7월에는 미얀마를 포함한 37개국의 UN 대사들이 중국이 위구르와 신장 지역에서 소수민족들을 탄압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UN 인권위원회에 보내기도 하였다.
13. 국방[편집]
미얀마는 과거에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군사 지원을 받았다. 미얀마는 1997년 이래 ASEAN의 회원국이었으며, 군부 독재로 인하여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던 2006년에는 의장국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ASEAN 정상회의를 미얀마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참고로 2014년에는 의장국 지위를 가지는 동시에 ASEAN 정상회의를 미얀마에서 개최하였다. 2008년 11월에는 접경한 방글라데시와 벵골해의 해저 유전을 동시에 탐사하면서 한때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된 적도 있다. 또한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으로 인하여 방글라데시와 지속적인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미얀마의 군대는 따마도(Tatmadaw)라고도 불리는데, 인력은 약 488,000명 정도 된다. 크게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순히 현역병 규모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12번째로 거대할 정도로 큰 군사집단들 중 하나이다. 군부 독재의 영향으로 미얀마 내에서 군대가 미치는 영향은 극도로 크고, 거의 모든 내각 인사들이 한때 군부를 거쳐갔거나 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국방비 지출도 해외로 잘 공개하지 않아서, 미얀마의 국방비 지출이 얼마 정도 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미얀마는 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인도 등에서 무기를 수입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는 현재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 핵원자로를 건설하고 있는데, 이는 핵확산방지조약과 IAEA의 조치와 상반된 것이라 국제사회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군부는 2000년 9월에 IAEA에게 원자로 건설을 통보하였는데, 2010년에는 기밀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미얀마가 북한의 기술을 넘겨받아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를 건설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2019년에 미국 국방부는 미얀마가 현재까지는 핵확산방지조약을 어긴 것은 없다고 밝혔으나, 다만 핵 관련 계획을 더 투명화하라고 압박하였다.
미얀마의 군대는 따마도(Tatmadaw)라고도 불리는데, 인력은 약 488,000명 정도 된다. 크게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순히 현역병 규모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12번째로 거대할 정도로 큰 군사집단들 중 하나이다. 군부 독재의 영향으로 미얀마 내에서 군대가 미치는 영향은 극도로 크고, 거의 모든 내각 인사들이 한때 군부를 거쳐갔거나 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국방비 지출도 해외로 잘 공개하지 않아서, 미얀마의 국방비 지출이 얼마 정도 되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미얀마는 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인도 등에서 무기를 수입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는 현재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 핵원자로를 건설하고 있는데, 이는 핵확산방지조약과 IAEA의 조치와 상반된 것이라 국제사회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군부는 2000년 9월에 IAEA에게 원자로 건설을 통보하였는데, 2010년에는 기밀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미얀마가 북한의 기술을 넘겨받아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를 건설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2019년에 미국 국방부는 미얀마가 현재까지는 핵확산방지조약을 어긴 것은 없다고 밝혔으나, 다만 핵 관련 계획을 더 투명화하라고 압박하였다.
14. 국가적 문제[편집]
14.1. 인권[편집]
국제적으로도 1962년부터 2010년대까지 미얀마를 통치했던 군부가 세계적으로도 가장 극악하고 국민에 대한 통제가 심했던 정권들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2012년 12월에 오바마 정부의 인권특별보좌관이었던 사만다 파워는 떼인세인 대통령의 방미 직전에 ‘미얀마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하여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 심각한 인권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라고 백악관 블로그에 적었을 정도였다. UN의 회원국들과 주요 인권 단체들은 미얀마에서 자행되고 있는 대규모, 체계적인 범죄를 중단하라고 반복적으로 압박하고 있는데, 2009년 11월에는 유엔 총회에서 군부에게 인권을 존중할 것, 그리고 폭력을 멈출 것을 요구하였으며 국제법상의 인권을 충실하게 지킬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휴먼라이츠워치, 엠네스티 등 여러 인권단체들에서는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범죄들을 심층적으로 다루어 세계 곳곳으로 퍼뜨리고는 한다. 2011년 프리덤 하우스의 조사에 의하면, ‘군부는 거의 모든 종류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다; 또한 양심의 거리낌 없이 인권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라고 한다. 2013년에는 미얀마 감옥에 약 100여 명의 정치범들이 수감되어 있으며, 특히 까렌, 까레니, 샨 족들을 대상으로 버마족에 강제로 동화시키려는 작업들도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엠네스티의 사진 자료와 동영상들에 의하면 미얀마 군부와 아라칸군(AA)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투로 인하여 라카인 주의 민간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엠네스티 측에서는 UN 안전보장이사회 국가들이 미얀마에 개입하거나 국제사법위원회에 이를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휴먼라이츠워치, 엠네스티 등 여러 인권단체들에서는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범죄들을 심층적으로 다루어 세계 곳곳으로 퍼뜨리고는 한다. 2011년 프리덤 하우스의 조사에 의하면, ‘군부는 거의 모든 종류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다; 또한 양심의 거리낌 없이 인권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라고 한다. 2013년에는 미얀마 감옥에 약 100여 명의 정치범들이 수감되어 있으며, 특히 까렌, 까레니, 샨 족들을 대상으로 버마족에 강제로 동화시키려는 작업들도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엠네스티의 사진 자료와 동영상들에 의하면 미얀마 군부와 아라칸군(AA)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투로 인하여 라카인 주의 민간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엠네스티 측에서는 UN 안전보장이사회 국가들이 미얀마에 개입하거나 국제사법위원회에 이를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4.2. 소년병[편집]
미얀마 군대에서는 약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소년병들의 수가 상당했다. 인디펜던트 지는 2012년 6월에 보도하기를, ‘미얀마 군대 내에서 아이들이 40달러 밖에 되지 않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쌀자루나 석유를 받고 넘겨지기도 한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UN의 특별조사관인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이 보도 이후 2012년 7월에 미얀마 정부의 대표들과 면담을 가졌으며, 빠른 변화를 촉구하였다. 이에 따라 미얀마 정부 측에서는 그 해 9월에 42명의 소년병들을 군대에서 내보냈으며, 국제노동기구 측에서는 정부군 뿐만 아니라 반군들과도 면담을 가지며 더 많은 수의 소년병들의 석방과 더 이상의 소년병 모집 금지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14.3. 건강[편집]
미얀마의 대중 복지 상태는 상당히 열악한 편으로, 정부는 전체 GDP의 0.5%에서 3% 정도만을 복지 재정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낮은 편이다. 의료보험 제도가 갖추어져는 있으나, 국민들은 약과 치료비를 따로 내야만 하며 심지어 공공병원이나 보건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들은 기본적인 의료 기기들조차 구비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제대로 된 의료진들도 부족하여 국민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 2010년의 조사에 의하면 미얀마에서는 10만 명 당 240명의 산모들이 사망한다고 전하며, 2008년에는 219.3명, 1990년에는 무려 662명에 달했다. 한편 5세 이하의 신생아의 경우, 1,000명 당 73명의 신생아들이 사망한다고 전한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편찬한 보고사에 의하면, 2007년에만 25,000여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에이즈로 사망했으며, 심지어 적절한 약물 치료만 있었다면 살아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무관심과 의료 재정 미비로 인하여 이러한 참사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미얀마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질병은 에이즈로, 미얀마 보건부 측에서도 ‘국가 위협’이라고 지정했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하다. 주로 마약 중독자들이나 매춘업자들 사이에서 들끓고 있으며, 2005년 기준으로 미얀마에서 전체 인구의 1.3%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전할 정도로 그 확산율이 심각하다. 또한 미얀마의 매춘업자들 가운데에서 32%가, 그리고 마약 중독자들의 43%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한다.
미얀마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질병은 에이즈로, 미얀마 보건부 측에서도 ‘국가 위협’이라고 지정했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하다. 주로 마약 중독자들이나 매춘업자들 사이에서 들끓고 있으며, 2005년 기준으로 미얀마에서 전체 인구의 1.3%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전할 정도로 그 확산율이 심각하다. 또한 미얀마의 매춘업자들 가운데에서 32%가, 그리고 마약 중독자들의 43%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한다.
14.4. 착취[편집]
미얀마에서는 강제 노동, 인신 매매, 아동 노동 등이 상당히 만연해 있다. 게다가 이를 통제해야 할 군부조차도 이를 자신들의 이권으로 보고 있으며, 오히려 성적 착취나 인신 매매 등으로 악명이 높은 실정이다. 2007년에는 국제적으로 미얀마에서 자행되는 범죄를 막고 여성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대규모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미얀마에서 인신매매를 당하는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이 가난한 빈민 출신으로, 더 나은 일자리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꼬임에 넘어가 브로커에게 속는다고 한다. 미얀마 군부 측에서도 이를 그저 방관하고만 있다고 전해진다. 미얀마 군부는 군인들에게 ‘민간에게 식량과 노동력을 징발하라’라고 지침까지 내리고 있으며, 정부 인사나 육군 인사 할 것 없이 모두 성적, 노동 착취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특히 탄압받고 있는 소수민족 출신의 여성들이 표적이 많이 되며, 강제로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4.5. 로힝야족 탄압[편집]
로힝야족은 지난 몇 십년 동안 버마인들이 주축이 된 미얀마 군부 측으로부터 강제로 동화 작업을 당해왔다. 그러나 로힝야족들은 스스로를 버마인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판국이다. 이는 1982년의 시민법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시민법에 따르면 국민들은 3개의 범주로 구분이 되는데, 크게 ‘완전시민’, ‘준시민’, ‘귀화시민’으로 나누었다. 완전시민은 전통적으로 미얀마에 살아왔던 민족들을 말하는 것으로, 버마족, 까렌족, 친족, 몬족, 샨족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준시민은 1823년 이전에도 자신들의 조상이 미얀마에 거주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으나, 최소 조부모계들 중 1명이 미얀마에 있었음을 증명하거나 1948년에 시민권을 이미 따놓은 자들이다. 귀화시민은 최소한 부모들 중 한 명이 완전시민이나 준시민들 중 하나이고, 부모가 1948년에 독립하기 이전부터 미얀마에 살고 있었던 자들을 의미한다. 로힝야족은 이 세 범주들 중 그 어떠한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고, 이들을 눈엣가시로 여긴 군부 측에서는 이들을 쫒아내거나 강제로 동화시키려 들었다. 이로 인하여 80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족들 가운데 절반이 쫒겨났고, 나머지 사람들도 미얀마 내부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같은 참상 때문에 로힝야족은 종종 ‘세계에서 아무도 원치 않는 자들’, 혹은 ‘세계에서 가장 탄압받는 소수민족’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하였다.
로힝야족은 허가 없이는 여행도 떠날 수 없고, 토지를 소유할 수도 없으며 2명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의 협약서에 서명도 강제로 해야 한다. 2012년 7월에 미얀마 정부는 아예 로힝야족을 미얀마 내의 소수민족 목록에 넣지도 않았는데, 이는 이들을 자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저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피난민 수준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같은 탄압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극심하여서, 지금도 280여 명이 사망하였으며 14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족이 라카인 주에서 도망쳐서 난민 신세로 전락하였다고 전했다.
로힝야족은 허가 없이는 여행도 떠날 수 없고, 토지를 소유할 수도 없으며 2명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의 협약서에 서명도 강제로 해야 한다. 2012년 7월에 미얀마 정부는 아예 로힝야족을 미얀마 내의 소수민족 목록에 넣지도 않았는데, 이는 이들을 자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그저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피난민 수준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같은 탄압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극심하여서, 지금도 280여 명이 사망하였으며 14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족이 라카인 주에서 도망쳐서 난민 신세로 전락하였다고 전했다.
14.6. 범죄[편집]
미얀마의 살인율은 10만 명 당 15.2명으로, 2012년 기준으로 약 8,044건의 살인이 발생하였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치로, 주로 내전이나 무장 봉기와 같은 사회적 불안정의 영향이 크다. 미얀마는 세계적으로 가장 부패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2012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 의하면 미얀마는 176개국들 가운데에서 171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미얀마는 세계 아편 공급량의 25%를 공급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이은 2위의 아편 생산국이며, 최악의 마약 유통 거점인 골든 트라이앵글의 일부이기도 하다. 미얀마의 아편 산업은 무려 식민시기부터 발전하여, 한때는 영국 식민지회사의 독점을 겨쳤다고 현재는 부패한 미얀마 정부 관료와 군부, 그리고 저항군들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아편 유통에 손을 대고 있다. 미얀마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메트암네타민 생산국이자, 태국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마약들도 미얀마에서 제조된다. 미얀마에서도 태국, 라오스, 중국과 접하고 있는 샨주 북동부, 그리고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마약 산업이 판을 친다고 전한다. 미얀마에서 제조된 마약들은 보통 라오스를 통하여 태국으로 수출되며, 태국에서 전세계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