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라오스 국기.jpg
파일:라오스 국장.png
국기
국장
ສັນຕິພາບ ເອກະລາດ ປະຊາທິປະໄຕ ເອກະພາບ ວັດທະນະຖາວອນ[3]
Paix, indépendance, démocratie, unité et prospérité

평화, 독립, 민주, 통일과 번영
국가 정보
국명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독립
1953년 10월 22일 프랑스로부터 독립
언어
라오어, 프랑스어
면적
2,368만 ㏊ (83위) [2023년기준]
인구
763만 3,779명 (102위)[2023년기준]
경제개발 수준
종교
불교 66.0%
민간신앙 30.7%
기독교 1.5%
기타 1.8%
상징
국기
국가
라오인 찬가
(ເພງຊາດລາວ, Pheng Xat Lao)
국화
플루메리아
국수
아시아코끼리
정치
정치체제
단일 국가,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
국가주석
통룬 시술릿
총리
소네사이 시판돈
집권여당
라오인민혁명당
외교
가입 국제기구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용산구 대사관로11길 30-4
국가 코드
418, LAO, LA
국제전화
+856
여행 경보
전 지역 여행유의
1. 개요2. 상세3. 역사4. 행정 구역5. 자연환경
5.1. 지리5.2. 지형5.3. 기후
6. 인문환경
6.1. 언어6.2. 교통6.3. 종교
7. 경제8. 정치9. 대외 관계10.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라오 인민민주공화국, 약칭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의 국가이다. 북서쪽으로는 미얀마와 중화인민공화국, 동쪽으로는 베트남, 남쪽으로는 캄보디아, 서쪽으로는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로서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내륙국이다. 주요 도시로는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방비엥, 팍세, 카이손 폼비한, 타케크 등이 있다.

2. 상세[편집]

라오스의 역사는 14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존재하고 그 이후 세 개의 왕국으로 나뉜 란쌍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3년, 비엔티안 왕국, 루앙프라방 왕국, 참파싹 왕국이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면서 연합되었다. 1945년 3월 일본군의 점령 이후 잠시 독립을 했으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다시 프랑스의 통치를 받다가, 1946년 프랑스가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하에 통일된 라오스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1949년 헌법이 공포되고 프랑스 연방 안에서 제한된 자치국가로 존재하다가 1950년 초부터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통해 실질적인 독립을 추진하였다. 좌파인 파테트라오의 군대가 북베트남과 연합해 라오스 정부군과 내전을 벌였고, 1975년 정권을 잡자 공산주의 국가인 라오 국민민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설립하였다.

라오스는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 또는 공산주의 국가이다. 수도는 비엔티안이다. 다른 큰 도시로는 루앙프라방, 카이손폼비한(사반나케트), 참빠삭 등이 있다. 공용어는 라오어이다. 라오스는 아시아 태평양 무역협정,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동아시아 정상회의,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이다.

3. 역사[편집]

19세기말 프랑스가 메콩강 동쪽에 있는 모든 시암 영토를 통치하게 되었으며 20세기초 라오스는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다

1945년 3월 일본이 프랑스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몰아내고 라오스 독립을 선언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가 다시 지배하기 시작했지만 1946년 프랑스는 루앙프라방 왕의 통치 아래 통일된 라오스를 승인하였다.

1949년 헌법이 공포되고 라오스는 프랑스 연방 안에서 제한된 자치권을 얻었다. 1950년대초 좌파인 파테트라오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의 베트민과 힘을 합쳐 프랑스와 싸웠다. 전쟁이 끝날 무렵 파테트라오는 2개의 주를 통치하게 되었다.

제네바 협정(1945년)에서 공산주의자와 연합한 북베트남과 친서방주의 노선을 걷는 타이 사이에서 완충국가로 통일, 독립한 라오스가 세워졌다. 1950년대 파테트라오는 라오스의 통치권을 놓고 우파 및 중도파와 투쟁했다. 제2차 제네바 협정(1962년)으로 파테트라오를 포함한 중립 연립 정부가 생겨났으며, 그 후 60년대가 끝날 때까지 라오스는 베트남 전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파테트라오 군대는 북베트남과 연합하여 라오스의 지배권을 쟁취하기 위해 라오스 정부군과 싸웠다.

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며 다음해 파테트라오와 우파가 함께 전라오스 통일 임시 정부를 형성했다. 사이공과 프놈펜에서 반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1975년 파테트라오가 정권을 잡았고 지하에 숨어 있던 라오스 공산당이 모습을 드러내어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을 세웠다. 라오스는 베트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1980년대 베트남이 이끄는 인도차이나 동맹(라오스·베트남·캄보디아)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베트남의 영향력은 감소했다. 1989년 최초의 총선이 있었으며, 1991년 새 헌법이 공포되었다.

4. 행정 구역[편집]

라오스의 행정 구역은 17개의 주(퀭, ແຂວງ)와

1개의 도(나컨루앙, ນະຄອນຫລວງ)로 구성되어 있다.

수도는 비엔티안(위양짠)이다.
  • 앗타푸(앗따쁘) 주 (Attapu)
  • 보케오(버깨우) 주 (Bokeo)
  • 볼리캄사이(버리캄싸이) 주 (Bolikhamxai)
  • 참빠삭(짬빠싹) 주 (Champasak)
  • 후아판 주 (Houaphan)
  • 캄무안 주 (Khammouan)
  • 루앙남타 주 (Louang Namtha)
  • 루앙프라방 주 (Louang Prabang)
  • 우돔싸이 주 (Oudomxai)
  • 퐁살리(퐁쌀리) 주 (Phongsali)
  • 사이냐불리(싸이냐불리) 주 (Sainyabuli)
  • 살라완(쌀라완) 주 (Salavan)
  • 사반나케트(싸완나켓) 주 (Savannakhet)
  • 세콩(쎄껑) 주 (Sekong)
  • 비엔티안(위양짠) 도 (Vientiane Prefecture)
  • 비엔티안(위양짠) 주 (Vientiane Province)
  • 씨앙쿠앙 주 (Xiangkhoang)
  • 싸이솜분(싸이쏨분) 주 (Xaysomboun)

5. 자연환경[편집]

5.1. 지리[편집]

라오스의 지리적 위치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의 산악 지역으로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미얀마, 남서쪽으로는 타이, 동쪽으로는 베트남, 그리고 남쪽으로는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5.2. 지형[편집]

라오스는 전체 국토 중 약 80%가 산악 지대로 산이 많은 나라이다. 북부의 대부분은 산악 고원 지대이고 동부는 안남 산맥(라오어: ພູ ຫລວງ 싸이 포우 루앙)이 베트남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라오스의 산악 여러 곳에서 발원한 강들은 메콩강으로 흘러든다. 메콩 강의 중류 구간은 타이와 라오스를 나누는 국경이기도 하다.

5.3. 기후[편집]

라오스는 열대 몬순 기후에 속하며 5월에서 10월까지의 우기와 11월에서 2월까지의 서늘한 건기, 3월에서 4월까지의 더운 건기로 나뉜다. 연간 기온 분포는 22 - 27 °C 정도이나 고산지대는 보다 낮은 기온을 보인다.

라오스의 국토 대부분이 산악 지대여서 지역간 강우량 편차가 큰 편이다. 수도인 비엔티안의 경우 연간 강우량은 평균 1648.7 mm이고 강우량이 0.1 mm 이하인 날은 평균 111일 정도이다. 12월에 가장 비가 적게 내려 월 평균 강수는 2.8 mm에 불과하지만,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8월의 월 평균 강수량은 322.5 mm에 달한다.

6. 인문환경[편집]

주민의 대부분은 라오족이며 이외 48개 소수민족(공식적인 발표로 실제는 이보다 더 많다고 한다.)이 거주한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라오스 특유의 고립성과 병존하는 이러한 다양성은 라오스가 문화·정치적으로 통합되는 데 심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들의 통치는 최근까지도 소수민족의 생각이나 활동보다는 라오족 엘리트 집단의 생각이나 열망을 반영해 왔다. 그러나 라오스 정부는 라오스 국적을 가지는 라오스인을 국민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으로는 소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라오스인은 사는 지역의 고도에 따라 저지 라오족(라오룸), 구릉 라오족(라오텅), 고지 라오족(라오쑹)으로 나눌 수 있다.

6.1. 언어[편집]

라오어. 그 외에도 영어, 태국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소수 민족어도 있다.

인도차이나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어가 우위를 점하는 라오스는 프랑스어 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 소속에 있다. 다만, 영어로 된 의사소통은 제한적이다. 또, 베트남어는 일부 베트남에서 건너온 베트남인들만 사용하지만, 태국어는 라오어와 매우 흡사하고 라오스 내 텔레비전 방송 채널이 대부분이 태국방송이라 라오스에서 태국어를 사용해도 별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6.2. 교통[편집]

수도인 비엔티안 인근에 왓타이 국제공항이 있다. 국내선 공항은 왓타이 국제공항을 포함하여 13 곳이다.

비엔티안에는 시내 버스 노선이 운영되고 있으며 수도와 지방 도시를 연결하는 시외 버스 노선은 중앙 버스터미널과 북부 버스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다. 중앙 버스터미널에서는 카시, 사바나케트, 팍세, 아타페우, 타케크로 가는 버스가 운행중이며, 북부 버스터미널에서는 농카이, 우돈타니, 콘카엔, 방콕으로 연결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타이, 베트남 등과 연결되는 노선이 검토 중이지만 현재 라오스에서 운행되는 철도 노선은 없다. 대부분이 산악 지대이어서 메콩강과 남오우 강이 주요 내륙 수운로로 이용된다. 라오스에는 모두 21개의 강이 흐르며 이를 통한 연간 수운량은 400 재화 중량 톤(Dead Weight Tons , DWT)에 달한다. 내륙 수운 항구는 모두 지방정부가 관할하고 있다.

6.3. 종교[편집]

남방상좌부 불교가 60%, 애니미즘이나 그 외의 종교가 40%이지만, 불교와 애니미즘이 혼합되어서 믿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몽쪽은 다른 민족과 달리 유교이다. 그 외 라오스 남부에서는 기독교를 소수 믿는다. 공산주의 정권의 집권 이후 종교의 자유를 탄압했지만, 1991년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이후 남방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종교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도 2003년 미국과의 협정 이후 현지 교회의 예배가 자유로워지는 등,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7. 경제[편집]

라오스의 경제는 1986년 신경제 체제에 의해 중앙집권적 경제체제에서 탈피한 시장경제체제이다. 1986년과 1989년 사이의 경제 개혁은 라오스의 국민 경제를 상당히 향상시켰다고 평가되며 많은 기업의 설립을 도왔고 국민 소득의 증가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런 경제 개혁의 영향은 제한적이어서 중화인민공화국, 태국, 베트남 등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국민들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의 생활 수준의 차이가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오스 경기 침체의 또 다른 요인은 외국인의 투자 부족이다. 열악한 경제적인 환경으로 인한 거시경제의 높은 불안정성과 높은 인플레이션, 불안정한 환율은 외국 투자자로 하여금 불확실성이라는 위험 요소를 안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가난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학자들은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등을 통한 경제 발전의 기틀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거시경제적 목표로는 물가 및 환율의 안정, 재정적자의 축소, 금융시장의 강화, 민간부문에 대한 정부 개입의 축소,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있다. 세계은행 발표에 의하면 라오스의 국민소득은 1989년 135 달러에서 1996년 230 달러로 상승했다. 라오스는 1997년 7월 아세안 정회원국으로 가입했고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다각적인 경제 협력 및 원조 외교를 구상하고 있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8. 정치[편집]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 또는 공산주의 국가이다. 현재 라오스의 정당은 라오인민혁명당 하나뿐이다. 국가 원수는 5년 임기로 선거로 뽑히는 국가주석이며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가주석이 임명하는 정부수상이 있다.

옛날에는 정부의 정책을 당 정치국(11명)과 당 중앙 위원회(61명)에서 결정했다. 1991년 라오스는 헌법을 바꾸어 국회의원(85명, 임기는 5년)을 비밀 선거로 뽑도록 개정했다. 라오스 국회는 1997년 99석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모든 새로운 입법안을 가결하였다. 라오스 국회의 의석 수는 2006년 115석으로 다시 확대되었고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11년 4월 선거에서는 다시 132명으로 늘어났다.

9. 대외 관계[편집]

  • 대한민국 : 1974년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나, 다음 해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어 단교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하게 되었다. 대한민국과는 다시 1985년 10월 25일에 재수교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선수 및 임원단을 파견하였다. 현재 비엔티안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으며, 서울에는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총 천여명의 한국인들이 라오스에 거주 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으로 오려고 했다고 알려진 탈북 청소년 9명을 라오스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강제 추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2013년 라오스 탈북청소년 북송 사건)이 일었으며, 이로 인해 라오스 정부와 대한민국 외교부간에 진실 공방[9] 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2019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라오스를 방문하며 메콩강 개발자금을 대겠다는 약조를 했다. 그러나 이후에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중국 : 라오스의 역사는 13세기에 남부에서 살던 타이계 민족의 하나인 라오족이 지금의 라오스 영토로 이주해 온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메콩강 유역에서 살았으며, 특히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참빠삭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 베트남 : 라오스는 통일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함께 미국과 싸운 베트남을 혈맹으로 여겼다. 양국 공산당의 서기장은 매 해 서로 방문하고 있으며 아세안 내에서의 입지를 위해서도 함께 노력했다.
  • 미국 : 미국은 라오내전 당시 수바나푸마 수상과 라오이싸라 당원들이 세운 우파 정권을 지지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 정부 건립 후 거리가 요원해졌다.
  • 태국 : 태국의 딱신 대왕은 1768년 방콕 건너편의 대방콕 일부에 속하는 톤부리를 도읍지로 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라오스·캄보디아까지 세력을 넓혔다. 라오스는 경제 분야에서는 태국과 가장 많은 경제관계를 맺고 있다.

10.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

[1]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인지하는 공식 명칭[2] Sathalanalat Paxathipatai Paxaxôn Lao[3] Santiphap Ekalat Paxathipatai Ekaphap Vatthanathavon[2023년기준] 4.1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