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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
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People's Republic of Bangladesh
파일:방글라데시 국기.jpg
파일:방글라데시 국장.png
국기
국장
জয় বাংলা
벵골에 승리가 있으리
국가 정보
국가명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독립
1971년 12월 16일
언어
뱅골어
면적
1,475만 7천㏊ (93위)
인구
1억 7,295만 4,319명 (8위)
종교
이슬람교 91.4%
힌두교 8%
불교 0.61%
기독교 0.3%
기타 0.12%
경제개발 수준
상징
국기
국가
나의 황금빛 벵골(আমার সোনার বাংলা)
국화
수련(식물)
국수
벵골호랑이
정치
정치체제
단일 국가, 인민공화제, 의원내각제
대통령
모함메드 샤하부딘
총리
셰이크 하시나
입법부
외교
가입 기구
주한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장문로6길 17
국가 코드
050, BGD, BD
국제전화
+880
여행경보
동남부 치타공 힐 트랙스 지역 출국권고
출국권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여행자제
1. 개요2. 역사3. 지리4. 기후5. 행정 구역6. 인문환경
6.1. 주민6.2. 언어6.3. 교육6.4. 종교
7. 교통8. 경제9. 정치
9.1. 원수9.2. 행정9.3. 입법9.4. 국제 관계
10. 군사11.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 또는 방글라데시는 남아시아에 있는 인민 공화국으로서 인도, 미얀마 그리고 벵골만에 인접해 있다. 인도의 서벵골 주와 더불어 벵골어를 쓰는 지역에 속한다. 국명 방글라데시는 벵골어로 "벵골의 땅" 또는 "벵골의 나라"를 뜻한다. 주요 도시로는 다카, 치타공, 실렛, 마이멘싱 등이 있다.

2. 역사[편집]

이슬람인들의 당(黨)인 전인도무슬림연맹(All-India Muslim League)은 1935년 인도에서 첫 선거에 패배한 후 1940년 이슬람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을 독립주로 선언하였다. 그 후 이로 인하여 캘커타 등지에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1947년 인도가 자치권을 회복하고 벵골지역을 종교에 의해 이슬람교인의 동파키스탄과 힌두교인의 서벵골로 분리하였다.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 내에서 벵골의 무지부르는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신장하기 위하여 아와미 연맹(Awami League, 약자 AL)을 만들었다. 그 후 무지브르는 아와미 연맹의 대표로서 벵골 자치운동을 벌였다. 1970년대 무지부르는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체포되고 AL당은 활동이 금지되었다. 1971년 3월 26일 파키스탄군의 유혈 진압에 맞서 벵골 애국주의자들은 독립된 방글라데시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그 후 파키스탄군과 벵골 자유 투사들 간의 전투가 가열되자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1,000만 명에 이르는 힌두교를 믿는 벵골인들이 인도의 아삼, 서벵갈 등지로 피신하였다. 인도의 지원 속에 결국 1971년 12월 16일 파키스탄 군대는 항복하고 ‘벵골 국가’라는 뜻의 방글라데시가 탄생하였다.

1972년 헌법에 의해 방글라데시는 의회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나 그 후 약 30년간 정치적인 혼란과 부정이 만연했는데 13명의 행정 수반 중 초대 대통령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과 이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아울 라만 등 2명이 암살당했고 쿠데타가 4번 이상 일어났다.

그 뒤 2번의 적법적인 정권 교체가 있었으나, 이슬람 테러라는 국가적인 위험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2008년 12월 17일 0시 1분부터 국가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2년간의 비상사태가 해제된후 방글라데시에서 7년 만에 처음 치러진 87%의 선거율을 기록한 총선에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이끄는 연정이 의회 총 300석 중 245석을 확보한 가운데, 제 1야당은 31석을 얻는 데 그쳤다.

3. 지리[편집]

인도 접경과 갠지스강 삼각주 지역은 지대가 낮지만 미얀마 국경으로 가까워 질수록 지대가 높아진다. 지리적으로 비옥한 갠지스 강 삼각주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반도의 북동쪽 겨드랑이에 위치하기에 방글라데시의 동쪽 국경은 인도차이나반도와 접할 것 같지만, 국경선의 95%는 인도와 접하여 대부분의 방향에서 인도에 싸여져 있다. 남동쪽 말단 일부만 미얀마와 접한다.

방글라데시 국토의 대부분은 인도 아대륙의 벵골만 부근에 형성된 삼각주이다. 이 삼각주를 크고 작은 하천이나 칼이라는 수로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소택지와 정글이 많은 저지대이며, 정글은 벵골호랑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북쪽은 히말라야 산맥 남쪽 기슭부, 실롱 고원(메가라야 고원), 동쪽은 트리푸라 언덕과 치타공 구릉, 서쪽은 라쥬모호르 구릉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은 벵골 만에 접해있다. 동부 및 동남부에 해발 100 ~ 500m의 구릉이 펼쳐진다.

히말라야에 수원과 서쪽에서 갠지스 강(벵골어로 폿다강), 북쪽에서 브라마푸트라강이 계곡의 거의 중앙에 합류해, 최하류에서 메그나 강에 합류하여 유역 면적 173만km2의 삼각주를 만들고 있다. 삼각주는 매우 인구 밀도 가 높다. 방글라데시의 토양은 비옥하고, 수원이 풍부해 논경작에 알맞지만, 홍수와 가뭄에 취약하여, 하천이 종종 범람해 많은 피해를 미친다. 국내의 구릉지는 남동부의 치타공 구릉지(최고 지점: 케오쿠라돈산, 1230m)와 실렛주에 한정된다.

북회귀선에 가까운 방글라데시는 열대 기후로, 10월부터 3월까지 겨울은 온난하다. 여름은 3월부터 6월에 걸쳐 고온다습한 시기가 이어지며, 6월부터 10월까지는 몬순이 내습한다. 거의 매년 이 나라를 강타하는 홍수, 사이클론, 토네이도, 해일과 같은 자연 재해는 일시적인 피해에 머무르지 않고, 삼림 벌채, 토양 열화, 부식 등의 원인이 되면서 더욱 큰 피해를 미치고 있다.

국내 최대의 도시는 수도인 다카이다. 다른 주요 도시는 치타공, 쿨나, 라지샤히이다. 치타공의 남쪽에 위치한 콕스 바자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천연의 해변으로 알려져 있다.

4. 기후[편집]

세계에서 가장 덥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 중 하나이다. 매년 몬순 홍수와, 사이클론(열대 저기압)이 있다.

5. 행정 구역[편집]

방글라데시는 8개의 주(division)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의 명칭은 각 주의 주도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방글라데시에서 주 다음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은 구(zila, districts)이며 방글라데시에는 64개의 구가 있다. 이것은 다시 우파질라(upazila, subdistricts) 또는 타나(thana)로 나뉜다.

6. 인문환경[편집]

6.1. 주민[편집]

주민은 벵골어를 사용하는 벵골 족이 대부분으로, 인구의 98%를 차지하고 있다.[4] 그 외에도 우르두어를 사용하는 비하르 주 등 인도 출신인 비(非)벵갈인 이슬람교도가 2%를 차지한다. 그 밖에 남동부의 치타공 구릉지대에는 10개 이상의 민족이 존재한다. 이들 중 소수민족인 줌머족의 경우, 방글라데시 정부의 박해를 받고 있어서 대한민국의 일부 줌마족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은 민중운동으로 이에 저항하고 있다.

6.2. 언어[편집]

방글라데시 사람 98% 이상이 벵골어를 모국어로 하며 공용어이다. 문자는 데바나가리 문자와 비슷한 벵골 문자를 이용한다. 유일한 공용어는 벵골어이지만 교육기관에서는 영어 사용도 허용되어 있다. 일부는 미얀마어, 우르두어, 아랍어, 힌디어도 사용된다. 전반적으로 공용어인 벵골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다. 모국어의 날이 있고, 파키스탄과의 독립전쟁의 계기로 파키스탄의 우르두어의 사용이 강요된 적이 있었다.

6.3. 교육[편집]

교육 제도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5년, 고등학교 2년 5-5-2제이다. 식자율은 2009년을 기준으로 53.5%로 의무교육은 초등학교 5년간이다. 취학률은 2000년 95%에 달했고, 그에 따라 문맹률도 서서히 개선되었지만, 아동의 퇴학율이 30%에 달해 또한 수업이나 교육환경의 질도 낮아서 아동의 학력향상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방글라데시의 문맹율은 아주 높다. 택시기사들은, 호텔에서 관광객에게 나눠주는 호텔 이름조차 못 읽는 경우가 많으며, 총선거가 실시될 때 벽보나 홍보 책자에 실리는 후보자를 구분하기 위해, 각색의 동물이나 물건(예컨대, 호랑이, 망고, 걸상, 비행기 등)의 그림으로 구분하여 적어야 한다. 방글라데시 민중들에게 배움이 없다는 현실은 곧 정치적, 경제적 부정부패과 비리의 온상이 된다. 현재 방글라데시의 문해율은 47% 정도로 다섯 명 가운데 두 명만 글을 읽을 수 있다.

6.4. 종교[편집]

종교는 이슬람교가 86.6%, 힌두교가 12.1%, 불교가 1% 크리스트교가0.4% 기타종교가 0.3%이다. 세계에서 무슬림이 많은 국가 중(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에서는 네번째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데, 그 수는 무슬림이 소수인 인도의 무슬림 인구보다 조금 적다. 기타 종교에는 불교, 로마 가톨릭, 개신교, 방글라데시 성공회, 부족종교가 포함된다. 이 나라의 종교 분쟁은 심각하여 같은 무슬림인데도 비하리 부족의 경우 방글라데시 시민권을 거부하여 차별받고 있다. 또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기독교인 등의 소수 종교인들도 방글라데시 국민임에도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7. 교통[편집]

중요 교통로는 수로이며 약 7,240km 정도에 이른다.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데 여객선과 화물선이 정기적으로 다닌다. 주요 항구는 항구 지역인 동부의 치타공에 있다. 다른 항구로 서쪽 챠루나 항구가 크고, 다카와 바리살, 나라양간지 등에는 규모가 큰 하항이 있다.

육상교통은 덜 발달된 상태로 국영 철도인 방글라데시 철도가 운영하는 약 2,900km 길이의 철도가 있다. 영국령 시대에 부설된 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하고 오래된 철도망이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 및 방글라데시의 3개국에 나뉘어 있다. 방글라데시쪽의 철도는 태반이 1,000mm 게이지이다. 1960년 이후 계속적으로 전화(電化)보다는 디젤기관차를 채용하는 움직임이 강하다.

차량은 좌측통행을 하며,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력거(릭샤)가 있고 바이크를 개조해 만든 2인용 베이비택시와 10인용 템포는 공해의 주범으로 퇴출중이다. 가스 자원이 풍부하므로 현재 소형 택시의 대다수는 동력으로 CNG가스를 사용하는데, 이 약자가 해당 소형차량을 부르는 명칭이 되어 CNG라 칭하기도 한다.

다카에 샤잘랄 국제공항과 치타공에 샤아마나트 국제공항이 있다. 샤잘랄 국제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항공사는 비만 방글라데시 항공과 US-방글라 항공 등의 항공사가 운행하고 있다. 방콕, 콜카타 등의 지역을 운항하고 있으며, 국내선은 치타공, 제소르, 실렛 등을 운항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상황으로 이용객은 적다.

8. 경제[편집]

2022년 방글라데시의 GDP는 4600억 달러로 남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크며, 일인당 GDP는 2734달러이다. 국제 연합 기준에 따라 후발 개도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2019년에 아시아 개발 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빈곤층은 국민의 20%를 차지한다.

갠지스 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세계 유수의 풍부한 토지를 자랑하며, 외부에서 침략도 끊이지 않았다. 벵골 술탄국 시절 인도양 무역의 중심지 중 하나로 벵골 상인들은 수마트라섬과 브루나이, 중국 사이 무역에 종사했다. 무굴 제국 지배 하에는 모슬린과 비단, 진주 무역의 중심지였다. 인도의 다른 지역에는 쌀과 비단, 목화를, 유럽에는 면직물, 비단, 아편을 수출했다. 18세기 벵골의 실질 임금과 생활 수준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영국과 비슷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콜카타를 식민지의 중심 도시로 개발했고, 동벵골의 경제 개발은 농업에 집중되었다. 영국은 이 지역에 황마를 재배하도록 했다. 동파키스탄으로 독립한 후에도 농업과 그를 기반으로 한 산업 위주의 경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서파키스탄 정부는 수입대체 산업화로 소비재 생산을 늘리려 했지만 1960년대 말 전체 수출에서 동파키스탄의 비중은 70%에서 50%로 줄었다.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 후 아와미 리그 주도로 국유화 정책을 펼쳐, 모든 은행과 보험사, 580여개의 공장을 국유화했다. 이러한 정책의 부작용과 독립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플레이션이 400%에 이르렀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1975년 정책을 바꿔 민간 기업을 장려하고 수출자유지역을 지정했다. 민영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는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9년 이후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6%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9. 정치[편집]

1991년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을 상징적 존재로 원수로하는 의원 내각제가 확립되었다.

9.1. 원수[편집]

구 영국 식민지로 영국 연방에 가입하고 있지만, 총독을 두지 않고 원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의례적 직무 만을 수행하는 상징적인 지위이다. 임기는 5년으로 국민 의회에서 선출된다. 그러나 의회와 정부가 대립하면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면 의회를 해산하고 임시 정부를 발족시킬 권한이 있다.

9.2. 행정[편집]

방글라데시의 빈곤의 원인으로 정부의 허약한 통치력을 들 수 있다. 부패가 심해, 2011년 부패인식지수는 2.7로 세계 120위에 위치하며 2003년의 1.2보다 훨씬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낮은 지위에 있는 것은 변함 없다. 또한 지방 행정이 약하고, 이로 인해 행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을 보조하는 형태로 각종 NGO가 다수 존재하여 개발 기능을 담당하는 형태가 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최대라고 하는 NGO의 BRAC나 노벨평화상을 받은 적이 있는 그라민 은행 등이 규모도 크고 유명하다.

9.3. 입법[편집]

의회는 단원제로 자티야 상샤드(국회)라고 부른다. 전체 300석이며, 임기 5년 소선거구제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또한 입법에 여성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300석 외에도, 여성 전용 30석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2001년 5월에 폐지되었다. 민주화 이후 총선마다 정권이 바뀌었으며,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의회 정치를 담당하는 정당에 문제가 많다. 선거는 대체로 공정하게 치러지지만, 정당이나 정치 풍토에는 문제가 많다. 각 정당은 하부 정치 조직이 있고, 선거 때마다 그들을 동원하여 선거를 펼친다. 선거 종료 후 패배한 정당은 파업이나 시위에 호소함은 물론, 종종 폭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9.4. 국제 관계[편집]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경을 인도와 접경하고 있으며, 인도는 독립 전쟁 때와 독립시 여당 아와미 연맹이 친 인도 정당이기도 했으므로, 독립 초기에는 우호적인 관계였지만, 원래 무슬림과 힌두교의 갈등으로 파키스탄에 편입되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관계는 이내 소원화되었다.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은 약간 반인도적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반대로 미국과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존재감이 강해지고 있으며, 중국에서의 수출액은 7년 새 4.5배로 늘었다. 인프라도 방글라데시 최대의 항구 도시 치타공에서 수도 다카로 통하는 간선 도로의 확장 공사를 중국의 지원 아래 길이 190 km 공사 구간 중 70%를 중국 기업이 하청을 받고 있다. 기타, 발전소 건설 및 교량 정비 등 민관공사에 방글라데시에 참여를 강화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또한 발생시키기도 한 국가이다. 동파키스탄으로 독립했을 때에는 양국으로 많은 난민들이 흘러들어왔으며, 또한 방글라데시 독립 시에도 파키스탄 군의 침공을 피해 100만명 가까운 방글라데시인이 난민이되어 인도로 유입되기도 하였으며, 또한 치타공 구릉지대에서는 정치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어, 이 지역의 불교계 원주민이 인도에 난민으로 유출되고 있다. 한편, 방글라데시는 남쪽 미얀마에서 무슬림 로힝 족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빈곤 국가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거액의 경제 원조를 받고있다. 아시아 개발 은행과 미국, 영국, 세계 은행, 유럽 연합 등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한다. 방글라데시는 남아시아 지역협력협의체(SAARC)와 BIMSTEC의 창립 국가이며, OIC와 D-8에 참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동시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는 1973년 12월 18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0. 군사[편집]

군대는 지원병 제도이며, 병력은 약 14만명이다. 방글라데시 군은 PKO에 적극적으로 인원을 보내고 있다. 방글라데시 군은 과거 몇 번이나 군사 정권을 수립하였고, 지금도 정치에 큰 발언권을 가진다. 2006년 BNP 정권을 퇴진시키고 아메드 선거 관리 내각을 발족시켰다.

11.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