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공화국
Türkiye Cumhuriyeti[1] | Republic of Türkiye
[2]
파일:튀르키예 로고.png
파일:튀르키예 국장.png
국기
국장(사실상)
Egemenlik kayıtsız şartsız Milletindir[3]
주권은 제한없이 조건없이 국민의 것이다
기본 정보
원어명
Türkiye
건국일
1923년 10월 29일
국기
월성기
수도
앙카라
위치
유럽의 동남쪽, 아시아의 남서쪽, 흑해 연안
면적
783,562
상징
국가
독립행진곡
국화
튤립
인문환경
인구
8,518만 6,199명
평균 수명
75.70세
언어
튀르키예어
정치
국가 원수
대통령
대통령
레젭 타입 에르도안
부통령
푸앗 옥타이
외교장관
메블륫 차부쉬오울루
집권 여당
정의개발당
경제
경제 체제
공화제
통화
튀르키예 리라(TL)
1인당 GDP
8,957달러
수출규모
1,744억 달러
수입규모
2,246억 달러
1인당 구매력평가기준
28,264 달러
기타 정보
국제 전화
+90
시간대
EET (UTC+2) Summer: EEST (UTC+3)
1. 개요2. 상세3. 국명 유래4. 인문 환경
4.1. 언어4.2. 인종4.3. 종교
5. 자연환경
5.1. 지리5.2. 기후
6. 경제
6.1. 무역
7. 역사8. 정치
8.1. 정치 체제8.2. 내각8.3. 입법부8.4. 사법부
8.4.1. 사법 제도8.4.2. 법원
8.5. 정당
9. 공휴일10. 국명 변경11. 튀르키예-대한민국과의 관계
11.1. 튀르키예 지진, 대한민국의 대응
12. 여담13.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아시아 서쪽 끝 동지중해에 면해 있는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와 유럽 발칸반도 남단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국가이다. 1923년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 600년 이상 지속된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건설하면서 근대국가가 되었다.

2. 상세[편집]

튀르키예 공화국(튀르키예어: Türkiye Cumhuriyeti 튀르키예 줌후리예티[4]), 약칭 튀르키예(튀르키예어: Türkiye, 영어: Turkey 터키[5])는 서아시아의 아나톨리아와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의 동트라키아에 걸친 국가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며, 가장 큰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북서쪽으로는 그리스와 불가리아와 접경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조지아가 위치해 있고, 동부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이 위치하며, 남동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에는 시리아와 지중해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에게해가 있다. 대략 80%의 인구가 튀르키예인이며 쿠르드인 인구가 15%에서 20% 정도 나머지는 소수 민족들이 있다.

3. 국명 유래[편집]

'튀르키예'의 튀르키예어 표기인 '튀르키예'(Türkiye)에서 '튀르크'(Türk)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고대 튀르크어에서 '강하다'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며 튀르키예인과 오스만인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13][14] 또 '튀르키예'의 접미사인 '-이예(-iye)'는 '주인' 또는 '~와 관계된'을 뜻하며 아랍어 접미사 '-이야(-iyya)'에서 파생된 접미사이다. 중세 라틴어 접미사 '-이아(-ia)'와 관련되어 '투르키아(Turchia)'라고 쓰이며 중세 그리스어 접미사 '이아(–ία)'가 붙어 '투르키아(Τουρκία)'라고 썼다. ''튀르크(Türük)'가 지명으로 쓰인 최초의 기록은 중앙아시아 돌궐(튀르크)의 오르혼 비문(서기 8세기경)에 등장한다. 영어 '터키(Turkey)'는 중세 라틴어 '투르키아'에서 나온 말이다.(1369년경)

2021년 12월에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튀르키예'라는 국호가 튀르키예의 문화와 문명,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설명하면서 튀르키예산 제품에 "메이드 인 튀르키예"(Made in Türkiye)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튀르키예 정부에서도 2022년 1월부터 터키라는 국호를 튀르키예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는 영어권에서 터키(Turkey)라는 단어가 칠면조를 뜻하는 단어 그리고 겁쟁이를 뜻하는 속어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에 대외적인 국호도 터키 공화국에서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변경되었으며, 동년 6월 1일 유엔에서 이를 승인받았다. 영어명을 그대로 옮긴 한국어 국명 터키에 대해서도 2022년 6월 3일 튀르키예 외무부가 대한민국 외교부 측에 '튀르키예 공화국'을 사용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국립국어원은 6월 17일 외래어 심의를 통해 국명의 한국어 표기를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확정하였으며, 6월 24일부로 대한민국 정부는 '튀르키예 공화국', 약칭 '튀르키예'를 정식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4. 인문 환경[편집]

4.1. 언어[편집]

공용어는 튀르키예어이다. 시리아 국경 부근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하며 남동부에서는 쿠르드어를 사용한다.

4.2. 인종[편집]

튀르키예계 86%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9%는 쿠르드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 아랍계, 그리스계, 소수의 유대인들도 있다.

4.3. 종교[편집]

튀르키예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사회적으로 종교적 규율을 엄격히 적용하지는 않지만, 이슬람교의 전통과 관행은 매우 중시한다. 튀르키예인 대부분이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으며, 튀르키예에 등록된 모스크(이슬람교의 사원)만도 75,000여 곳에 달한다. 인구의 약 65%가 종교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슬람교 신자 이외에는 주로 그리스 정교, 유대교 등 기독교를 믿는다.

5. 자연환경[편집]

5.1. 지리[편집]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 아시아 쪽 튀르키예 영토(주로 아나톨리아로 구성)는 국토의 97%를 차지하며, 보스포루스 해협, 마르마라해, 다르다넬스 해협(흑해와 지중해를 이어준다.)을 끼고 있는 유럽 쪽 튀르키예 영토는 국토의 3%에 불과하다.

튀르키예의 영토는 길이로는 1,600 km, 폭 800 km에 이르며,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이다.[35] 호수를 포함한 튀르키예의 육지 면적은 783,562 제곱킬로미터이며, 아시아 대륙에 속하는 영토는 755,688 제곱킬로미터이고, 유럽 대륙에 속한 영토는 23,764 제곱킬로미터이다.[36] 튀르키예는 세계에서 37번째로 넓은 나라이며, 프랑스 본토와 영국 영토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이 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는데, 서쪽에는 에게해, 북쪽에는 흑해, 남쪽에는 지중해가 있다. 또 북서쪽으로는 마르마라해가 있다.

튀르키예의 유럽 영토인 동트라키아는 그리스와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시아 쪽 영토인 아나톨리아(소아시아)는 중앙에 고원 지대와 좁은 해안 평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로 북쪽에는 쾨로을루산맥과 도우산맥(폰토스산맥)이, 남쪽에는 토로스산맥(타우루스산맥)이 뻗어 있다. 동부 튀르키예는 산악 지형이 더욱 발달되어 있으며, 유프라테스강, 티그리스강, 아라스강 등 여러 강의 수원지이고, 반호와 튀르키예 최고봉 아라라트산(높이 5,165m)이 있다.

튀르키예는 7개의 인구 조사용 지역으로 나뉘는데 마르마라 지역, 에게해 지역, 흑해 지역, 중앙아나톨리아 지역, 동아나톨리아 지역, 동남아나톨리아 지역, 지중해 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흑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북부 아나톨리아의 울퉁불퉁한 지형은 길고 좁은 띠 모양이다. 이 지역은 튀르키예 총 면적의 1/6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아나톨리아 내륙 고원은 동쪽으로 갈수록 점점 지형이 험해진다.

5.2. 기후[편집]

내륙지방은 대륙성 기후이며, 해안지방은 해양성 기후
  • 지중해 및 에게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여름은 대체로 고온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고 다습함.(연평균 기온 18℃~20℃)
  • 흑해연안은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서 연중 고른 분포의 강우량(연평균 2,500mm)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온의 월교차가 거의 없음.(연평균 22℃~24℃)
  • 북동부 및 아나톨리아 고원지대는 대륙성 기후를 보이고 있어서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림. 1~2월이 가장 추우며, 겨울철 평균기온은 0℃~10℃임.
  • 봄, 가을은 짧으며, 4월, 11월, 12월이 우기에 해당함.
  • 평균 고도 : 902m
  • 평균기온 : 11.8℃(최저: -24.9℃, 최고: 40.0℃)
  • 평균습도 : 60%
  • 연평균 강우량 : 367mm
  • 특기사항 : 건조하고 일교차 큼.

6. 경제[편집]

튀르키예는 구매력 평가 대비 국내총생산 세계 17위, 명목 국내총생산 18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나라는 경제 개발 협력 기구(OECD)와 G20의 창립 회원국이다. 1923년에서 1983년까지 튀르키예 공화정이 들어서고 60년간 튀르키예는 대개 국가주의적 정책을 고수하여 정부 예산을 엄격하게 계획하고, 개인 부문 참여, 대외 무역, 외화 유통, 외국인 직접 투자에 정부가 제약을 가하였다. 그러나 1983년부터 투르구트 외잘 총리가 일련의 개혁을 주도하면서 경제 정책이 국가주의에서 탈피하여 개인 부문과 시장 경제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바뀌었다. 자유화 개혁 덕분에 튀르키예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1994년과 1999년(그 해 지진 발생 후), 2001년에 갑작스러운 침체와 금융 위기를 겪기도 하였으나, 1981년에서 2003년 사이에 튀르키예의 연간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평균 4%를 나타내었다. 추가적인 재정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공공 부문 적자가 커진데다 광범위한 정치 부패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은행 부문이 허약해졌으며, 거시 경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2002년에서 2007년까지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평균 7.4%를 나타내었는데, 덕분에 튀르키예는 같은 기간에 세계적으로도 빠른 경제 성장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에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4.5%로 떨어졌으며,[73] 2009년 초에 튀르키예 경제는 세계 금융 위기의 영향을 받아 국제통화기금은 그 해의 침체율을 5.1%로 예측하였으며, 반면 튀르키예 정부는 3.6%로 추산하였다.

튀르키예 경제는 더 이상 농촌 지역의 전통적인 농경이 주류가 아니며, 거의 대부분 국토 서쪽 주에 집중된 주요 도시의 산업 단지들이 급속히 발전하고 서비스 부문도 확대되면서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2009년에 농업 부문은 국내 총생산의 8.8%에 머물렀으며, 산업 부문은 27.5%, 서비스 부문은 63.8%를 나타내었다.

유럽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8년 유럽 연합 평균치의 45%로 나타났다.

그 밖에 튀르키예 경제에서 중요한 경제 부문은 은행업, 건설, 가전 제품, 전기, 섬유, 석유 정제, 석유 화학 제품, 식품, 광업, 철강, 기계 산업 및 자동차를 들 수 있다. 튀르키예의 자동차 산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2008년에 1,147,110대 차량을 생산하여 유럽에서 자동차 생산국 6위(영국보다는 낮고 이탈리아보다는 높은 순위), 세계 기준으로는 15위 생산국이었다. 또 튀르키예는 조선업 선도국으로 2007년에 이 나라는 선박 수주량 기준으로 중국, 대한민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4위를 기록하였으며, 호화 유람선 수주량 기준으로도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에 이어 4위였다.

6.1. 무역[편집]

2017년 기준으로 튀르키예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독일(9.63%), 영국(6.12%), 아랍에미리트(5.85%), 이라크(5.77%), 미국(5.51%)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중국(10%), 독일(9.11%), 러시아(8.35%), 미국(5.11%), 이탈리아(4.84%)이다.

튀르키예는 2005년에 유럽 연합과 맺은 관세 동맹 덕분에 수출 예정 산업 생산이 증가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유럽 연합의 대튀르키예 외국인 투자로 이익을 보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156,993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233,800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비가공 금(6,606백만 달러), 디젤 트럭(4,368백만 달러), 보석(546백만 달러), 석유(3,671백만 달러), 자동차(3,11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비가공 금(16,576,백만 달러), 석유(9,819,백만 달러), 철(6,056백만 달러), 통신장비(3,951백만 달러), 자동차(3,912백만 달러)이다.

튀르키예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낮은 수준을 보이다가 2007년에는 219억 달러를 투자받았으며, 이후에는 투자액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84] 민영화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튀르키예가 유럽 연합과 가입 협상을 시작하면서 안정성을 얻었으며, 강력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고, 은행업과 소매업 및 통신 부문에서 구조 개혁을 단행하면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7. 역사[편집]

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11세기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족이 이주해오기 전부터 많은 나라와 문화교류가 이뤄졌으며, 이로 인한 흥망성쇠도 교차했다. 특히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문명 융화의 용광로 역할을 5000년 이상 해 왔다.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1299년 건국돼 1922년 멸망할 때까지 600년 이상 서아시아, 발칸, 북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했다. 그러다 19세기 들어서 서유럽의 교육과 기술, 제도를 도입한 탄지마트 개혁정치가 시도되나, 결국 경제가 유럽에 점령당하면서 그리스와 이집트의 독립을 허용할만큼 쇠약해졌다. 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에 가담했다가 패배한 오스만제국이 연합국에 의해 분할 위기를 맞자, 당시 케말 무스타파는 1922년 술탄칼리프 제도를 폐지하고 튀르키예공화국을 세웠다. 케말 무스타파는 2차대전 때에는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했고,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반공·친서방 노선을 취했다. 이후 1960년과 1980년 군부 쿠데타 이후인 1989년 30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했으며 현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제12대 대통령으로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튀르키예는 현재 지중해의 키프로스섬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갈등을 빚고 있다. 주민 구성이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로 양분돼 있는 키프로스는 1974년 친그리스계가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한 뒤 튀르키예의 침공으로 분단돼 남쪽은 그리스계, 북쪽은 튀르키예계 키프로스 공화국이 각각 들어섰다. 튀르키예는 1970년경부터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으나, 키프로스 문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EU 회원국 그리스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편, 튀르키예는 6·25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우리나라와 우방관계를 맺고 있으며 1957년 3월 수교한 바 있다. 

8. 정치[편집]

8.1. 정치 체제[편집]

튀르키예는 총리 중심의 내각책임제와 내각을 견제할 수 있는 실권적 대통령제를 병행하고 있었으나, 2018.7월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했다.
600명으로 구성되는 국회는 단원제이며, 국회의원 임기는 5년.
각료회의는 대통령, 부통령 그리고 각 부처 장관(Minister)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7년 헌법개정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출방식이 도입되었으며, 2017.4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전환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헌법 개정 이후 첫 대통령 선거가 2018.6월에 실시됐다.

8.2. 내각[편집]

내각은 부통령과 각급 각료로 구성되며 부통령과 각료는 대통령이 임명함. 국회의원 가운데서 각료로 임명될 경우 국회의원직을 포기해야 한다.

내각은 국가의 일반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주로 국가의 제반 문제들을 검토하여 시행령을 공포하며, 국회는 내각에 대한 불신임권이 있다.
튀르키예 정치 내각[6]
직책
성명
부총리
푸앗 옥타이
법무부 장관
베키르 보즈다이
재무부 장관
누레딘 네바티
내무부 장관
슐리만 소일루
외교부 장관
메블륫 차부쉬오울루
무역부 장관
메흐메트 무시
가족사회복지부 장관
데리아 얀크
노동사회보장부 장관
베다트 빌긴
무역부 장관
메흐메트 무시
국가교육부 장관
마무트 외저
국방부 장관
훌루시 아카르
보건부 장관
파레틴 코카
문화관광부 장관
메흐메트 에르소이
환경도시계획 및 기후변화부
무라트 쿠롬
에너지천연자원부 장관
파티아 회메즈
과학산업기술부 장관
무스타파 바랭크
청소년체육부 장관
메흐메트 카사포엘루
농업삼림부 장관
베키르 파크데미를리
교통인프라부 장관
아딜 카라스마일로울루

8.3. 입법부[편집]

국회는 단원제이며 600명의 직선의원으로 구성된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5년이며, 피선거권은 18세 이상에게 부여되며, 국회에는 의장 및 4명의 부의장을 둔다.

현 국회의장 : 무스타파 쉔톱 (Mustafa Şentop)

국회는 입법기능 외에 대통령 선출권, 정부예산심의권, 조약비준권, 국정조사권, 전쟁선포권, 내각불신임권 등을 가지며, 튀르키예(터키) 군대의 해외파병, 외국 군대의 튀르키예 주둔 등에 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내각을 견제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튀르키예 국회는 주권재민의 원칙에 의거하여 1924년 최초로 구성되었으며, 초창기에는 국회가 행정권과 입법권을 소유하고 있어서 삼권분립이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1961년 헌법개정에 의해 행정부와 입법부가 완전히 분리되었음. 당시 국회에 양원제가 도입되었으나 1982년 개정된 헌법에 의해 양원제는 폐지되었다.

8.4. 사법부[편집]

8.4.1. 사법 제도[편집]

과거 오스만제국의 사법권은 대(大)율법사인 세이휼이슬람(Sheyhulislam)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속해 있었다. 이 시기의 튀르키예 민법은 대부분 코란에 기반을 두었으며 특별종교법정(Sharia)에서 집행되었다. 이후 오스만제국 근대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이슬람법을 폐지하고 1858년 대륙법 제도를 도입하면서 법체계가 종교적 및 세속적 체제로 분리되는 이분화 현상이 나타났다.
터키 공화국 선포 이후인 1924년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슬람법을 적용하는 종교재판소를 폐쇄시킴으로써 사법체제가 세속적 형태로 일원화되었다. 그 후 1926년 법제 개혁이 이루어져 스위스 민법, 이탈리아 형법, 독일 상법 등을 도입하여 튀르키예 관습법과 전통을 가미한 법제도가 성립되었다.

8.4.2. 법원[편집]

튀르키예(터키)의 법원조직은 이심제로서 상급법원과 하급법원으로 구분되며, 법원은 민 · 형사법원, 행정법원으로 구분된다.
※ 1930년 설치된 군사법원과 1971년 설치된 최고군사법원은 2017년 헌법 개정에 따라 폐지.
  • 상급법원
  • 헌법재판소(Constitutional Court)
  • 사법부의 최고위조직으로서 1962년 설치되었으며 15명의 정위원(Regular Members)으로 구성된다.
  •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의 합헌성 검토, 법적용에 관한 분쟁시 법률해석, 헌법수정 문제의 검토, 정당 해산권 등의 권한을 가진다.
  • 최고법원(High Court of Appeals)
  • 1879년 설치(1928년 개편)된 최고재판소로, 하급 민사 · 형사법원의 판결을 확정하거나 파기할 수 있다.
  • 최고행정법원(The Council of State)
  • 1869년 설치된 최고 행정재판소로서 국가 또는 행정부서와 관련된 행정상 분쟁에 관한 재판권을 행사하며, 행정검사는 정부관료 또는 공무원의 행정범죄를 조사했으나, 2017년 헌법개정에 의해 폐쇄됬다.
  • 하급법원
  • 하급법원은 민 · 형사법원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하급 민 · 형사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 최고법원에 상소할 수 있다.

8.5. 정당[편집]

튀르키예 정당
당 명칭
총재
국회 내 의석 수
파일:튀르키예 정의개발당 로고.png 정의개발당[7]
레젭 타입 에르도안
285석
파일:튀르키예 공화인민당.png 공화인민당[10]
케말 클르치다르올루
135석
파일:튀르키예 인민민주당.png 인민민주당[11]
밋핫 산자르, 페르빈 불단
56석
파일:튀르키예 민족주의 행동당 로고.png 민족주의 운동당[12]
데블렛 바흐첼리
48석
좋은당
메랄 악쉐네르
36석

9. 공휴일[편집]

국정 공휴일과 종교 공휴일이 있으며, 국민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나 정교 분리로 금요일 근무, 토 · 일요일 휴무

* 국정 공휴일
  • 신정(1. 1.)
  • 국가주권일 및 어린이날(4. 23.)
  • 노동절(5. 1.)
  • 청소년 스포츠의 날(5. 19.)
  • 민주주의 국민통합의 날(7. 15.)
  • 승전기념일(8. 30.)
  • 공화국 선포기념일(10. 29.)

10. 국명 변경[편집]

유엔이 2022년 6월 1일 국호를 터키(Turkey)에서 튀르키예(Türkiye)로 변경해 달라는 터키 정부의 요청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UN의 모든 공식 문서는 해당 국가를 Türkiye로 명시할 예정이다. 튀르키예는 튀르키예어로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뜻으로, 튀르키예인들이 자국어로 자국을 부르는 명칭이자 튀르키예어로 표기한 정식 국호 역시 '튀르키예 공화국'이다. 

튀르키예로의 국명 변경 추진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영어식 표현인 '터키'가 국제무대에서 혼동을 가져오고,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반영한 데 따른 것이다. 즉, 영어권에서 터키(Turkey)라는 단어는 튀르키예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칠면조를 가리키는 데다 '겁쟁이, 패배자'등을 뜻하는 속어로도 사용되고 있어 '튀르크(용감한)'의 뜻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1년 12월 터키의 국명을 튀르키예로 바꾸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 공식적으로 국명 변경 캠페인의 발족을 알린 바 있다. 이후 약 6개월간 대내외적인 홍보를 거친 후 UN에 2022년 6월 1일 국가명을 새로 등록해달라는 공식 서한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11. 튀르키예-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많아 형제의 나라라고도 부른다. 튀르키예인의 조상은 훈족과 튀르크족으로, 한자식 이름은 흉노와 돌궐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이웃에 살던 민족으로 우리나라와 동맹을 맺어 중국의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에 대항하기도 했으나 결국 싸움에서 밀리며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튀르키예인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다시 우리나라와의 인연이 이어져 연합군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주었고, 이 전쟁에서 많은 튀르키예 군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또한 튀르키예 갈라타사라이 고교 학생들이 손가락에서 흘린 피로 글씨를 쓰고 저마다 손도장도 찍었다고 한다. 연인원 2만명이 넘는 병력을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시켜 한국을 도운 튀르키예의 희생에 새삼 눈시울이 붉어지며 왜 두 나라가 형제국,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지 깨닫게 된다.이런 배경으로 인해 튀르키예인들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매우 친하게 생각하여 칸카르데쉬, 즉 피로 맺어진 형제라고 부른다.

11.1. 튀르키예 지진, 대한민국의 대응[편집]

2023년 2월 튀르키예에서 강진이 발생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들어 긴급구호대 파견을 지시했다. 형제의 나라란 점을 감안해 역대 최다인 140여명 규모로 구호대가 편성됐다. 구호대가 지진 피해 현장에서 부상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 등 활동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한 뒤 윤 대통령은 그들 전원을 초청해 치하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튀르키예 구호 현장에서 보여준 여러분의 연대정신은 한국과 튀르키예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진정한 친구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웠다”며 “정부는 여러분의 헌신과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튀르키예 복구와 재건을 위한 지원도 앞으로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2. 여담[편집]

  • 터키는 우리나라에서 토이기라고 불렀다. 터키란 명칭은 영어식 발음이다.
  • 튀르키예의 수도를 이스탄불로 많이 알고 있는데, 이건 브루마블의 영향일뿐 혹은 가장큰 도시가 이스탄불이고 사실 튀르키예의 수도는 앙카라다.
  • 튀르키예는 위로 흑해와, 밑으로 지중해를 끼고 있어 물이 많을것 같지만, 사실 물부족 국가이다. 그래서 공중 화장실도 사용하려면 돈을 내야한다.
  • 한국전쟁의 참전국으로 국가유공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으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박혀있다.
  • G20의 초창기 멤버로 생각보다 높은수준의 경제적 위치에 있다.
  • 유럽연합의 공식적인 가입후보 국가이다.
  •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숙박시설로 이용됐던 이동식 컨테이너가 지진 복구 작업이 한창인 튀르키예로 갔다. HMM(옛 현대상선)은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튀르키예를 위해 임시주택 컨테이너 운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튀르키예로 운송하는 임시주택 컨테이너는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숙박시설로 사용했던 이동식 컨테이너다. 카타르는 튀르키예의 지진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 팝스코, 광명사, 광명희망나기운동본부, 국제위러브유 등 단체가 튀르키예 지진 위로금을 전달했다.

13. 문서 출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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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1] [ˈtyɾcije dʒumˈhuːɾijeti][2] Türkiye보다는 Turkey가 더 보편적이지만 튀르키예 정부는 Türkiye를 추진하고있다[3] 비공식 표어. 튀르키예는 공식적인 표어가 없다.[4] [5] [6] 2022년 2월 기준[7] 정의개발당(튀르키예어: Adalet ve Kalkınma Partisi)은 튀르키예의 보수주의[8], 우익[9] 정당이다. 이 정당은 2001년에 소규모 우익 정당들의 합병으로 창당되었다.[8] 기존 사회 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이다. 보수주의는 경제 성장과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완화하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여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9] 작은 정부와 시장에 의한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하고, 강한 안보와 전통 및 소유권 보호를 통해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원한다.[10] 1923년 9월 9일 인민당으로 출발해 1924년 10월에 공화인민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튀르키예 공화국의 모든 역사를 함께한 정당이다. 튀르키예 대국민의회의 제1야당이다. [11] 인민민주당(튀르키예어: Halkların Demokratik Partisi)은 튀르키예의 쿠르드 민족주의, 민주사회주의 정당이다. 인민민주당은 쿠르드족의 민족 자치권을 주장하는 정당이므로 쿠르드족이 많이 분포하고있는 남동쪽에서 지지세가 높다.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해안가와, 이스탄불 지역에서도 지지를 받고있다. 非 쿠르드족중에서는 주로 여성과 장애인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지지를 받는 편이다.[12] 민족주의자 운동당(튀르키예어: Milliyetçi Hareket Partisi)은 터키의 보수주의 정당으로, 이 정당의 당의 정치적 성향은 우익부터 극우까지 포괄한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과 긴밀합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정당은 극우, 반공주의 운동인 회색 늑대단과 연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