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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 상세 == |
| 30 | 30 | 이범석은 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중화민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와 북로군정서 등지에서 항일독립활동을 하였으며, 북로군정서 연성대장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 뒤 소련과 만주에서 활동하던 중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중장으로 광복군 참모장과 제2지대장 등을 지냈다. 1945년 조선 광복 직후 귀국을 시도했지만 강제로 상하이에 억류 조치 처분되었다가 이듬해 1946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안호상과 함께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민족주의 정치 활동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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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김구]]의 남북협상에 반대하여 [[이승만]]에 협력, 단독 정부 수립에 동참하여 1948년 7월 31일에서 1950년 4월 20일까지 제1대 [[대한민국 | |
| 32 | [[김구]]의 남북협상에 반대하여 [[이승만]]에 협력, 단독 정부 수립에 동참하여 1948년 7월 31일에서 1950년 4월 20일까지 제1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하였고 8월 15일부터는 [[국방부장관]]도 겸임하였다. 이후 중화민국 주재 대사와 내무부 장관을 거쳐 1952년 제2대 부통령 후보에 출마했고, 1956년 제3대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0년 이후에는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탈당, 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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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4 | 대한민국 초기 시대 나치 연구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조선 [[세종대왕]]의 5남이었던 광평대군의 17대손이며 이문하의 아들이다. 호는 철기, 자는 인남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왕운산, 인남, 철기, 이국근, 이국진 등이 있다. 본관은 전주이며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