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24 vs r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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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50 | 50 | * 철기 이범석 자전 (1991년, 유고집) |
| 51 | 51 | == 상훈 == |
| 52 | 52 | *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 (1963) |
| 53 | == 역대 선거 결과 == | |
| 54 | ||<tablealign=center><tablewidth=45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152484><bgcolor=#152484><rowcolor=#000><width=2%> '''연도''' ||<bgcolor=#152484><width=10%> '''선거[br]종류''' ||<bgcolor=#152484><width=10%> '''선거구''' ||<bgcolor=#152484><width=10%> '''소속[br]정당''' ||<bgcolor=#152484><width=13%> '''득표수[br](득표율)''' ||<bgcolor=#152484><width=7%> '''당선[br]여부''' || | |
| 55 | ||1956|| 3대[br]부통령선거 || 전국 || 자유당 || 1,815,692[br](25.5%) ||<bgcolor=#fa4b4c> '''낙선[br](2위)''' || | |
| 56 | ||1960|| 4대[br]부통령선거 || 전국 || 자유당 || 317,579[br](3.7%) ||<bgcolor=#fa4b4c> '''낙선[br](6위)''' || | |
| 57 | ||1960|| 5대[br]국회의원 || 참의원[br]충청북도 || 자유당 || ||<bgcolor=#4bfa4b> '''당선[br](1위)''' || | |
| 58 | 53 | == 평가 == |
| 59 | 54 |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 [[대한민국 국군]]의 이념과 징신을 바로세운 대한민국 국방건설의 아버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유능한 장군이라는 평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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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67 | 62 | 한편, 한강철교 폭파는 군사적 관점에서 당연한 것이고, 한강교폭파의 문제는 시행과정에서 육군본부가 시민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한강철교가 폭파됨으로 인해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3일을 서울에서 지체하게 되었고 이는 차후 국군과 유엔군의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결정적으로 귀중한 시간을 갖게 하였다. 부산정치 파동시 내무장관 이범석은 부임한지 1달이 채 되지 않은 상태이어서 업무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실제 당시 치안국장이었던 문봉제가 자신의 자서전 발간에서 부산정치 파동은 자신과 대한청년단 출신 김창민이 하였다고 밝혔다. 고 2008년 5월 9일 강영훈 前 국무총리가 철기 이범석 장군 추도식에서 밝힌 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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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64 | 이범석에 대한 비판은 주로 좌익 측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이는 정부 출범과 군 창설시부터 강력한 반공을 주장한 이범석을 견제하고 하야시키기 위한 음모로 인식되고 있다. |
| 65 | == 역대 선거 결과 == | |
| 66 | ||<tablealign=center><tablewidth=45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152484><bgcolor=#152484><rowcolor=#000><width=2%> '''연도''' ||<bgcolor=#152484><width=10%> '''선거[br]종류''' ||<bgcolor=#152484><width=10%> '''선거구''' ||<bgcolor=#152484><width=10%> '''소속[br]정당''' ||<bgcolor=#152484><width=13%> '''득표수[br](득표율)''' ||<bgcolor=#152484><width=7%> '''당선[br]여부''' || | |
| 67 | ||1956|| 3대[br]부통령선거 || 전국 || 자유당 || 1,815,692[br](25.5%) ||<bgcolor=#fa4b4c> '''낙선[br](2위)''' || | |
| 68 | ||1960|| 4대[br]부통령선거 || 전국 || 자유당 || 317,579[br](3.7%) ||<bgcolor=#fa4b4c> '''낙선[br](6위)''' || | |
| 69 | ||1960|| 5대[br]국회의원 || 참의원[br]충청북도 || 자유당 || ||<bgcolor=#4bfa4b> '''당선[br](1위)''' || | |
| 70 | == 여담 == | |
| 71 | * 광복군 참모장 시절 동료들은 그를 “철의 장군”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그의 군사적 엄격함과 철저한 규율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병사들에게는 깊은 신망을 받았기 때문. 훈련 중에는 매우 엄했지만, 한편으로 병사들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챙기는 면모도 있어 존경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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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 중국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그는, 일본군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면서도 중국 군인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다. 나중에 대한민국 국군 창설 시, 황푸군관학교 출신 군사 지식을 그대로 한국군에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큰 장점이었다. | |
| 74 | ||
| 75 | *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 등 초기 반란 진압 과정에서 강경한 조치를 취해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일부에서는 “과도하게 강경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는 독립운동가 출신임에도 정치에서는 군사적 사고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정치적 유연성보다는 실용적·강경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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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 광복군 시절 연합군 및 중국군과 협력하면서 외국군 장교들과 교류가 많았는데, 그의 조직력과 군사적 실력 덕분에 외국인 장교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았다. 특히 작전 계획과 훈련 체계가 체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한국군 창설 초기에도 이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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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 사생활이나 가족 관련 기록은 많지 않지만, 동료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가정적이고 신뢰가 깊은 인물이었으며, 특히 부하와 직원들에게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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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 * 이범석은 단순한 정치인이나 군인이 아니라, 독립운동 → 광복군 →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세 단계의 역사적 맥락을 직접 경험하고 참여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광복군 참모장과 초대 국무총리라는 두 가지 상징적 역할로 기억되며, 건국 초기 대한민국의 국가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 |
| 70 | 82 | == 본 문서 정보 == |
| 71 | 83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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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85 | * [[https://ko.m.wikipedia.org/wiki/%EC%9D%B4%EB%B2%94%EC%84%9D|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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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 챗GP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