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6 vs 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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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은 용산의 문창보통소학교에 다녔다. 가정 형편이 안되었던 이봉창은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릴 때는 집에서 글씨를 배우고 10세 이후 어렵게 용산의 문창보통소학교에 입학하였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서당이나 집에서 글을 배우다 늦게 소학교에 입학하는 일이 매우 흔했다.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도 할아버지에게 글을 배우다가 소학교 김중환 교장의 권유로 소학교 학생이 되었다) 이봉창의 아버지는 방탕한 생활 이후 본처를 버리고 첩과 생활하게 되면서 가정 형편이 매우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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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때부터 금정에 있는 서당에서 3년간 한문을 배운 뒤 1910년 천도교에서 세운 청엽정(靑葉酊)의 문창소학교(文昌小學敎)에 입학하였다. 1915년 문창소학교를 졸업하였다.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915년 경성부의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 뒤 상점 점원과 막노동을 전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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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때부터 금정에 있는 서당에서 3년간 한문을 배운 뒤 1910년 천도교에서 세운 청엽정의 문창소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문창소학교를 졸업하였다.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915년 경성부의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 뒤 상점 점원과 막노동을 전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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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15세 무렵 그는 말라리아를 앓았고, 그 후유증으로 관절염을 앓게 되었으며 항상 환절기에는 관절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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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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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식을 구경하러 오사카에서 교토로 갔다가, 한문이 섞인 한글 편지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교토 고조 경찰서에 체포되어 11일간 투옥되어 있다가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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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명을 사용하다가는 차별대우를 받는 처지에 자괴감에 빠지게 했고, 이때부터 그는 독립운동에 종사할 뜻을 본격적으로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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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탐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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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2월부터 9월까지 오사카시의 비누상점에 취직하였으나 수금한 매상금 100원을 갖고 도쿄로 달아났다. 이후 카코우 해산물 도매점의 점원으로 취직하였으나 동업자와의 경쟁에 싫증이 나 친구집에 머물거나 요시와라에서 여자를 사귀는 등 이틀 사흘밤 주인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가 공장 기숙사의 주인으로부터 한심스럽다는 질책을 받자 회사를 그만둔다. 그 뒤 가방점의 외판원으로 취직하였으나 판매금을 탕진하고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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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30세의 이봉창은 미혼이었다.[4] 일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과 함께 노동으로 허기를 채우며 적정을 정탐하기에 힘썼다.[4] 1931년 나고야에서는 병이 들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한 친구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게 되어 병세가 호전되었으며, 친구는 어느 일본인의 사위가 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봉창은 친구의 청을 거절하고 도쿄, 오사카 등지를 돌아다녔다. 이때 통상의 협의의 일본인의 말과 몸짓을 흉내내는 재주를 익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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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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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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