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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36 | * 정조 : 정조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순신은 무인이지만 또한 '선정'으로 일컬었고 보면 선정을 꼭 유현에게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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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38 | * 김육 : 효종 임금에게, "조정에서 현재 절의를 숭상하고 장려하는 은전을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 충신으로 드러나 칭송할 만한 이는 고 통제사 이순신만한 이가 없는데도, 묘소에 아직까지 조그만 표석조차도 없으니, 이는 자손들이 미약한 소치입니다."고 아뢰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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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 오윤겸 : 제문에서 그는 이순신의 죽음을 두고 "황천에서 다시 일으켜올 수 없음을 생각하고 백 명을 대신 바치고도 몰려올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고 평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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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홍석주 :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관음포의 이충무공전몰유허에서 홍석주는 이순신을 중국의 제갈량에 빗대어 칭송하고, 제갈량이 병사한 뒤에는 촉한이 위태롭게 된 것과는 달리 이순신은 오히려 그가 남긴 공적 덕분에 지금(홍석주가 살아 있었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직이 남아 있을 수 있다며 이순신의 공적을 치켜세우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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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충무공은 거의 완전무결한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성자라 하고 영웅이라 일컫는 것이다."(천관우) 등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아주 높았다. | |
| 39 | 45 | == 본 문서 정보 == |
| 40 | 46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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