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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24 | 또한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에게도 증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와 덕연부원군에 추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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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26 | 1643년(인조 21) 3월에 인조는 그에게 '충무' 시호를 내려 충무공이 되었다. 1659년 효종 때 남해에 그를 기려 충무공 이순신의 비를 세웠다. 1688년(숙종 14년)에는 해남 명량대첩비가 건립되었고 1705년 현충사가 건립되었으며, 1793년 7월에 정조는 증 정1품 의정부 영의정을 가증했다. |
| 27 | == 평가 == | |
| 28 | 사후(사망 이후)부터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 걸쳐 이순신은 신분과 시대를 막론하고 존경과 숭모의 대상이 되었다. 각 여론조사에서 존경하는 인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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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선조 : 졸서후사제문(卒逝後賜祭文)에서도 똑같이 그 잘못을 사죄하는 듯한 말을 남기며 "인생 한 세상에 한번 죽음 못 면하네. 죽을 데서 죽은 이로 그대 같은 이 드물도다."라고 추켜세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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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 류성룡 : 징비록에서 류성룡은 "이순신은 백 번 싸운 장군으로서 한 손으로 친히 무너지는 하늘을 붙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재질을 가지고도 운수가 없어 백 가지 재능을 한 가지도 풀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평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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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 효종 : 효종이 경연 자리에서, "아침에 이순신의 비문을 보았는데,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순절한 일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는 하늘이 우리 나라를 중흥시키기 위하여 이런 훌륭한 장수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순신의 재능은 악비와 같은데, 더욱 작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공격하는 데 능하였다."고 하였다가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순신은 무인이지만 또한 '선정'으로 일컬었고 보면 선정을 꼭 유현에게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임금에게, "조정에서 현재 절의를 숭상하고 장려하는 은전을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 충신으로 드러나 칭송할 만한 이는 고 통제사 이순신만한 이가 없는데도, 묘소에 아직까지 조그만 표석조차도 없으니, 이는 자손들이 미약한 소치입니다."고 아뢰었다. | |
| 27 | 35 | == 본 문서 정보 == |
| 28 | 36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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