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78 vs r7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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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40 | 압사 사고는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 경 해밀톤호텔 앞을 낀 내리막길의 골목에서 발생하였다. 소방당국은 11시 19분부터 축제 중단을 요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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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42 | 10월 30일 오전 6시 30분 최성범 서울용산소방서장의 브리핑에 따르면, 인명 구조를 위하여 소방 507명, 구청 800명, 경찰 1100명, 기타 14명, 총 인력 2,421명이 동원되었다. 또한 장비는 소방 184대, 구청 10대, 경찰 30대, 기타 9대의 총 233대가 동원되었다. 재난의료지원팀 14팀(서울 7, 경기 7)이 출동하였다. 또한 타 시도 구급대에서는 장비 94대, 인력 222명이 지원되었다. |
| 43 | == 사고 대응 == | |
| 44 | 경찰은 10만 명가량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경찰 137명을 현장 배치했다.[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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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사고 이후 소방과 경찰이 출동했지만 인파가 몰려있어서 100m 거리를 가는데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23] 도착했을 때는 아래에 깔린 피해자들의 팔을 잡고 꺼내려 했으나 워낙 많은 사람이 쌓여 있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23] 구조해도 사람들이 뒤엉킨 탓에 핸드폰과 가방 등 소지품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사상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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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경찰은 최초 119 소방신고의 공동대응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출동하였고, 인명구조를 다하고 있었으나 많은 인파에 축제 참가자들이 뒤엉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경찰은 "사람이 숨을 못 쉬어요. 뒤로 물러나주세요" 등 수차례 소리를 질러도 큰 음악소리와 주변 소음으로 뒷쪽까지 들리긴 힘들었다. 추후 소방과 경찰의 긴급출동요청을 받아 경찰과 소방관, 그리고 시민들이 나서서 심폐소생술 등을 진행하였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상황이라 인명 구조에는 사실상 실패하였다.[25][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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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 채널은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27][28][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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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발생일 새벽 중앙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여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였다.[30] 10월 30일 오전에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 최우선 순위를 본건 사고 수습과 후속 조처에 두겠다"라고 밝혔으며, 이태원 사고현장을 찾아 수습 상황을 둘러보고, 정부서울청사 상황실에 설치된 사고수습본부를 방문해 회의를 주재하였다.[31]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라고 지시하였다.[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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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오세훈 서울시장은 네덜란드 출장 중, 사건 보고를 받은 후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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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건 당일 개인 일정으로 충북 지역을 방문하여 취침 상태에서, 11시 32분에 사건 관련하여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으며, 11시 52분에 전화를 받았으나 취침 중으로 즉시 확인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전화를 받고 22분 후인 30일 0시 14분 사고를 인지하고, 상황 담당관과 전화통화로 상황을 보고 받은 후 서울로 즉시 출발하고, 오전 2시 30분 경찰청에서 지휘부 회의를 갖고 대응 방안을 지시하였다.[[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5593832|윤희근 경찰청장 취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