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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 이후 도래인의 유입은 극히 드물어지다가, 3세기 후반부터 호족의 연합정권인 야마토 조정이 일본 통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지배자의 권위의 상징으로서 각지에 고분이 축조되고, 중국에서 한자를 수입하여 고분문화가 성립되었다. 다시 4세기 말에서 6세기 중기까지 도래인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가 4세기 후반부터 남진 정책으로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가야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면서 일본 열도로 피난 오는 사람들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일본 왕실(가야왕족의 친척)은 백제를 비롯하여 백제 등지에서 피난 오는 도래 기술자로부터 유용한 대륙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위해 백제가 고구려에 대적할 수 있도록 전면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일본 왕실(가야왕족의 친척)이 도래인들에게 각종 특혜를 주면서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도래 씨족이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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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카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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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말에는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되어 7세기 전반의 아스카 시대에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가 생겨났다. 특히 7세기에 이르러 도래인 계열 씨족 중 대표적인 씨족이었던 소가 씨(蘇我氏)는 불교를 앞세워 모노노베 씨 등의 경쟁 씨족을 제압하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어 5대에 걸쳐 일본 왕실의 외척이 되어 정치적으로 실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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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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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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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천황을 정치적·종교적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율령국가(律令國家)가 형성되었다. 다이호 율령은 이후에 후지와라노 후히토 등에 의해 누차 손질되어오며 10세기까지 일본에서 최고 법전의 지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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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이안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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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이안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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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기의 나라 시대에서 헤이안 시대 초기의 문화는 대륙 문화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으나 헤이안 초기에는 여러 가지 가나가 만들어졌고 정치적으로도 율령국가가 변질하여 섭관정치, 이어 인세이가 장원(莊園)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한편 이전부터 율령 반포에 참여하는 등 일본 왕실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후지와라 씨는 9세기 초에 이르러 소가 씨처럼 황실의 외척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고 전횡하기 시작했다.[4]:122 비록 간무(桓武)와 사가(嵯峨) 두 천황이 귀족을 누르고 절대 왕권을 행사한 적이 있었으나 사가 천황 이후에 후지와라 씨는 본격적으로 정치적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858년, 후지와라노 요시후사(藤原良房)는 조카이자 사위인 몬토쿠 천황이 사망하자 어린 외손자인 세이와 천황을 천황으로 즉위시키고 자신은 섭정(일본어: 摂政 셋쇼[*])이 되어 정권을 독점하였다. 요시후사 이후에도 후지와라노 모토쓰네가 관백(일본어: 関白, かんぱく 간파쿠[*])이 되어 다시 권력을 잡았다. 이처럼 후지와라 씨는 천황이 어리면 섭정직을, 천황이 성인이 되면 관백직을 번갈아가며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를 섭관정치라 하며, 11세기 후반 시라카와 천황의 인세이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