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3 vs r4 | ||
|---|---|---|
| ... | ... | |
| 11 | 11 | 자민당은 보수, [[우익]] 정당이지만, 55년 체제 하에서는 서방의 보수 정권과 비교해 사회, 경제 전반에 있어 정부의 개입이 심했고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자민당 정권은 정부가 국가 경제 정책을 모두 관리하면서 여러 산업 분야 중 경쟁력이 부족한 분야의 기업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행정 절차상 인허가 권한 등을 이용해 이들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또한 농업 종사자에게 보조금을 교부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합동으로 여러 공공사업을 실시했다. 이렇게 강력한 정부 개입으로 추진된 일련의 정책들이 "소득 격차 해소" 및 "리스크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일본의 전후 자민당 체제는 그들의 이념과는 결함되게도 성공한 사회주의 체제였다"라는 비아냥마저 나오기도 했다. |
| 12 | 12 | |
| 13 | 13 | 자민당은 일본의 여러 유명 정치인을 배출했다. 1990년대 이후 정계계편을 통해 야당의 유력 정치인이 된 사람들도 그 뿌리를 따져보면 자민당 출신이 꽤 많다. 자민당 출신으로서 야권에 자리를 잡은 인사로는 호소카와 모리히로, 하타 쓰토무, 하토야마 유키오, 오카다 가쓰야, 오자와 이치로, 가메이 시즈카 등이 있다. |
| 14 | == 역사 == | |
| 15 | === 당명 === | |
| 16 | 1955년 11월 창당에 즈음하여 신당 창당 준비회가 "당명 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당명을 공모했다. 전국에서 총 2,191건의 공모가 있었는데, 많은 수를 얻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일본보수당"이 546건으로 1위, "민주자유당"과 "보수당"이 각각 187건으로 공동 2위, "일본국민당"이 159건으로 4위였다. 이렇게 "일본보수당"이 1위를 차지했지만 "이런 당명을 써서는 선거에서 불리하다"는 등의 부정적 의견이 제기되어 결국 채택되지 못했고, 이후 당내에서 논의한 결과 신당이 추구하는 핵심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이유로 "자유민주당"이 당명으로 결정되었다. | |
| 17 | ||
| 18 | 창당 이후 언론 매체 등에서는 본 명칭인 "자유민주당"과 약칭인 "자민당"을 자유롭게 혼용해 왔으나, 1990년대에 간 나오토 및 하토야마 유키오가 민주당을, 오자와 이치로가 자유당을 창당하고 나서부터는 혼동을 막기 위해 자유민주당을 언급할 때는 본 명칭인 "자유민주당"은 잘 쓰이지 않고 약칭인 "자민당"이 더 자주 쓰인다. 같은 이유로 당의 기관지 이름도 "자유신보"에서 "자유민주"로 바꾸었다. | |
| 19 | ||
| 20 | 제45회 총선거 패배로 [[야당]]이 된 직후인 2009년 9월에 열린 자민당의 "집권 구상 회의"에서는 "자유민주당"이라는 당명에 여론의 거부 반응이 있다며 당명 변경론이 나왔다. 새 당명으로는 "화혼당", "자유신당" 등이 제안되었지만, "당의 체질 개선이 먼저인데 당명을 바꾸자는 건 본말전도인 것 같다"는 등 당 내부의 비판이 나오자 결국 무산되었다. | |
| 14 | 21 | == 본 문서 정보 == |
| 15 | 22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 16 | 23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