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5 vs 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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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적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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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이용해, 1979년의 12.12 군사 혁명과 1980년 5.17 사태 및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을 통해 불법적으로 집권했기 때문에 정권의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 대표적인 비판이다. 5.18 사건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전두환은 계획적인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직무상 관련이 없는 보안사 참모들에게 지시해 입안케 한 다음 이러한 조치를 실행했다.[208] 전두환의 집권 과정 중에 행해진 조치들에는 인권 유린, 헌정 파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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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군사 혁명이 일어나고 3주가 더 지난 시점에 군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중앙정보부 부장에 임명되어 2개의 정보기관의 기관장을 겸임하게 된다. 당시 신현확 부총리는 민간인으로 중앙정보부 부장을 임명해서 군 정보 분야에 전두환씨의 보안사와 양립 시켜서, 2개의 정보기관으로 정보를 복수로 통제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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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의 집권 과정과 제5공화국 시절에 언론의 자유가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전두환은 언론인, 언론사를 회유하기 위해 보안사를 통해 K공작계획을 비롯한 수 차례 언론 공작을 했으며, 대통령 재임 시절 언론인 대량 해직, 언론 강제 통폐합 조치에 관여했다. 전두환 정부의 문화공보부는 매일 보도 지침을 편집국에 보내서 여론을 조종했다. 제5공화국 정부는 외국 잡지나 신문을 한국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군 관계자들이 배포 전 모든 자료를 검열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사나 전두환을 비판하는 기사 등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가 있을 때는 배포 전 지면에서 빠졌다. * 국가안전기획부, 경찰청 대공분실, 보안사 등을 통해 김근태, 박종철, 권인숙 등의 반체제 인사와 학생운동가를 고문하여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했다는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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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의 집권 과정과 제5공화국 시절에 언론의 자유가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전두환은 언론인, 언론사를 회유하기 위해 보안사를 통해 K공작계획을 비롯한 수 차례 언론 공작을 했으며, 대통령 재임 시절 언론인 대량 해직, 언론 강제 통폐합 조치에 관여했다. 전두환 정부의 문화공보부는 매일 보도 지침을 편집국에 보내서 여론을 조종했다. 제5공화국 정부는 외국 잡지나 신문을 한국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군 관계자들이 배포 전 모든 자료를 검열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사나 전두환을 비판하는 기사 등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가 있을 때는 배포 전 지면에서 빠졌다. * 국가안전기획부, 경찰청 대공분실, 보안사 등을 통해 김근태, 박종철, 권인숙 등의 반체제 인사와 학생운동가를 고문하여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했다는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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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정권 동안 여러차례 권력형 비리 사건이 발생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으로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이었던 이규광의 처제였던 장영자와, 육사 2기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차장과 유정희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그의 남편인 이철희가 건설업체에 접근하여 현금을 제공하는 대신 그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 할인함으로써 거액의 자금을 조성했던 장영자ㆍ이철희사건이 발생했다. 1983년에 발생한 명성그룹사건과 영동진흥개발사건도 대표적인 사례였다. 새마을본부 중앙회장이었던 동생 전경환은 공금 76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으며 골프장 허가를 미끼로 거액을 챙긴 사촌동생 전순환과 노량진 수산시장 영업권 불법인수와 관련된 친형 전기환, 그리고 공금을 횡령한 처남 이창석 등이 전두환의 재임기간 중 저질러진 친인척의 비리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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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균 지가상승률이 이승만 21.6%, 박정희 33.1%, 전두환 14.9%, 노태우 17.7%, 김영삼 -1.2%, 김대중 -0.6%, 노무현 4.5%에다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때는 생산소득에 대한 불로소득 비율이 거의 미미한데 비해 이승만 때에 43%, 전두환은 67.9%, 노태우는 거의 100%, 박정희는 무려 248.8%에 달했으며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의 기강이 무너졌다는 것과 동시에 제5공화국 시절의 경제 치적은 실제로 경제가 좋은 것이 아니라 부동산 거품경제로 인한 착시현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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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그룹 해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 '부실기업 정리'라는 미명 아래 희생됐다는 분석이 업계에서는 정설로 돼 있다.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정치자금 헌납을 거부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모임에 늦게 나타나거나 1985년 총선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이 '괘씸죄'에 걸렸고, 결국 그룹 해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후 양정모 회장은 정부를 상대로 국제그룹 해체가 부당하다며 위헌소송을 벌여 1993년 승소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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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그룹 해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 '부실기업 정리'라는 미명 아래 희생됐다는 분석이 업계에서는 정설로 돼 있다.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정치자금 헌납을 거부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모임에 늦게 나타나거나 1985년 총선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이 '괘씸죄'에 걸렸고, 결국 그룹 해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후 양정모 회장은 정부를 상대로 국제그룹 해체가 부당하다며 위헌소송을 벌여 1993년 승소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2020
* 전두환 정권은 3S 정책 실시에 대한 비판도 있다. 3S 정책은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즐겨 쓴다는 정책이다. 올림픽 유치를 지시 한 이유, GNP 2천 달러도 안 되는 개발도상국에서 프로 야구를 출범시킨 배경이 있다. 이에 대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치밀하게 기획됐다는 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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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전두환은 포괄적 뇌물죄로 추징금 2200억원을 선고받고, 600여억원을 납부하여 추징금이 1600여억원가량 남아있던 중 2010년 10월 14일 300만원만 납부했다. 이에 대해 추징금 시효를 연장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두환의 추징금 시효는 2010년까지이며, 납부하지 않을 경우 재산이 가압류된다. 하지만 추징금중 일부를 납부할 경우 3년간 시효가 연장되어 재산 가압류를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두환 일가가 약 1700만 달러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와인 생산 농장(와이너리)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 된 바 있다. 전두환은 지인들과 무주리조트 등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들이 목격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으나, 전두환은 남은 돈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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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외금지조치가 당초 취지와 달리 음성적인 불법비밀과외가 번성하여 일부 특권층 자제만이 혜택을 누렸고, 과외비 폭등의 원인이 되었다는 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