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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에는 사병(私兵)을 혁파하여 군사권을 의흥삼군부로 집중시켰다. (1차 군·정 분리)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 의정부(議政府, 최고정무기구)로,중추원(中樞院) → 삼군부(三軍府, 군무)와 승정원(承政院, 정무:왕명출납 등)으로 분리, 개편하였다.참고로, 2차 군·정 분리(중서문하성 폐지) 개혁은 태종 원년(1401)에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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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에는 노비변정도감(奴婢辨正都監)을 설치하여 고려 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으로 환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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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위와 여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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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은 왕자의 난을 이유로 수도를 한성에서 개경으로 옮겼으나 다음 해인 정종 2년(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동생 정안공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9개월 뒤인 음력 11월 13일에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 맏형으로서 남아있는 형제들간의 반목을 일소하고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재위중에는 형제간의 친목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재위중에, 삼성(三省)이 회안대군을 탄핵하기 위해 논의하려 할때, 동모제(同母弟, 친동생)의 형친(兄親)의 정으로서 논의를 미연에 차단 금지시켰다.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인덕궁(仁德宮)에서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세종 1년(1419년) 음력 9월 26일에 63세의 나이에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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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은 왕자의 난을 이유로 수도를 한성에서 개경으로 옮겼으나 다음 해인 정종 2년(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동생 정안공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9개월 뒤인 음력 11월 13일에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 맏형으로서 남아있는 형제들간의 반목을 일소하고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재위중에는 형제간의 친목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재위중에, 삼성(三省)이 회안대군을 탄핵하기 위해 논의하려 할때, 동모제(同母弟, 친동생)의 형친(兄親)의 정으로서 논의를 미연에 차단 금지시켰다.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인덕궁(仁德宮)에서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세종 1년(1419년) 음력 9월 26일에 63세의 나이에 승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