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vs 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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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소련파 및 연안파가 숙청당하고, 이때 중·소 분쟁을 계기로 주체 사상이 등장하였다. 60년대에는 경제 건설을 우선시하는 갑산파 온건세력들이 숙청 당했고, 1967년 주체 사상이 지도 이념화되었다. 1972년에는 대한민국과 7.4 남북 공동성명을 맺었다. 이어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여 주체사상을 확립하였는데 이는 국가 원수가 수상제에서 주석제로 바뀌었고, 주석의 권한은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력이 장악하여 김일성 유일 체제를 확립하게 하였다. 1974년,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신성화하고 절대화하는 내용의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때 '주체 사상'을 헌법에 최초로 규범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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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대한민국(남한)·미국·일본의 안보 체제 구축과 국제 정세의 악화로 위기에 놓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방 건설을 위하여 이른바 4대 군사 노선을 채택하여 군수 공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였다. 아울러 김일성과 조선로동당의 장기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주체 로선을 강조하였다. 대남 정책에서는 겉으로는 평화적인 남북 연방제 통일 방안을 제시하고, 내면으로는 남한에 통일혁명당을 조직하여 주체 사상에 입각한 내부 혁명을 부추겼으며, 무장 군인을 파견하여 무력 도발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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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집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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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후계 체제의 확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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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김정일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0년대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가 강화되어갔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그리고 1998년 헌법 개정을 한번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완전히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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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행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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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부터 동독과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붕괴하면서 조선은 기존의 공산권으로 받던 경제적 지원과 교류가 단절되게 되었다. 또한 1993년에는 흉작이 일어나고 그 이후에도 연이어 겹친 수해와 대흉작으로 곡물 생산량은 급감했고, 식량이 부족하자 기존의 배급제가 완전히 붕괴하면서 전국적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영양실조가 만연하게 되였다. 심각한 경제난이 계속되자 조선 당국은 이러한 사태를 "고난의 행군"으로 명명하고 이를 이기어 나가자며 선전 선동을 지속했다. 한편 김정일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을 타개하기 심화조 사건을 일으키고 강력한 숙청을 반복하며 공포 정치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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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 남북 공동 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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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하여 발표한 6·15 남북 공동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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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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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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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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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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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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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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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4개월 뒤인 2012년 4월 1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화국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장직을 폐지하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정은 체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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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8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회의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인 김정은에게 기존 대장 계급에서 2단계 높은 원수 칭호를 부여할 것을 결정했다. 원수 칭호는 이미 사망한 김일성·김정일에게만 부여된 대원수의 바로 아래 계급으로, 이전까지는 리을설이 유일했었다. 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차수는 보직 해임된 리영호를 포함하여 현재 총 8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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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2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은하 3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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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2일에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리히터 규모 4.9 (미국 지질조사국은 리히터 규모 5.1)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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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14] 이에 따라 27일,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126명이 철수했고, 29일에 나머지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남은 잔류인원 50명 중 43명만 귀환 허가를 받았다(물론 나머지 7명도 훗날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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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김정은은 정권 내 제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에게 정치적 숙청을 단행해 축출했다. 이어 12일, 사형을 선고하고 즉결 집행으로 장성택을 제거했다. 그러나 고모 김경희에 대한 처분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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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일에 12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6차 핵실험에 감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합중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시작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를 촉구를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대북 제재와 함께 포용정책을 병행하면서 김정은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고 이후 아이스하키팀 등에서 단일팀과 예술단 공연 등을 하면서 2018년 4월 27일에 대한민국과 정상회담을 하여 비핵화 의지를 밝히며, 풍계리 핵 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폭파 및 폐쇄하였다. 2018년 6월 12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싱가포르에서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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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 CIA조사에서 풍계리와 동창리 이외 미사일기지와 핵 실험 장소를 비밀리에 더 보유 및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고체 연료를 사용한 미사일 시험 발사도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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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만 5월 4일에 1발 (고도 60여km, 사거리 240여km), 5월 9일에 2발 (고도 45~60여km, 사거리 420여km 및 270여km), 7월 25일에 2발 (고도 50여km, 사거리 600여km), 7월 31일에 2발 (고도 30여km, 사거리 250여km), 8월 2일에 2발 (고도 25여km, 사거리 220여km), 8월 16일에 2발 (고도는 30여㎞, 사거리 230여㎞)등을 발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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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킬체인체계 하의 미사일방어체계와 사드는 액체연료는 잘 감시, 탐지, 타격 할 수 있지만, 고체연료는 감지가 매우 어렵고, 고도를 낮추면, 방어체계에 노출되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특정지역을 타격 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군은 이를 노리고 미사일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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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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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공식수립이전인 북조선 인민위원회가 설립했을 때 무상분배, 무상몰수 토지개혁 및 주요산업등 국유화를 단행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피폐해진 국토와 전후 복구사업을 재건하기 위해 3개년 계획과 5개년 개발계획, 천리마운동 등을 전개하여 나아갔다. 이무렵에는 모든 농지의 협동 농장화와 생산력 증대를 위한 노동 강화운동, 사상, 기술, 문화의 혁명등을 추진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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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과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생산력 저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하여 교역 상대국이 상실되었고, 오늘날 에너지와 원자재, 식량 등 심각한 경제고를 겪고있다. 1990년대 이후 들어서는 매년 마이너스 경제 성장율을 보이고있다. 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 내에서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고자 1984년에 합영법제정, 1994년에는 신합영법개정하여 1991년에는 나진, 선봉 자유무역지대 설치, 2002년에는 신의주 경제 특구 설치, 개성공단 설치등 함으로써 일부지역에만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고 '제한적 개방'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달리, 북한의 경제는 침체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서울올림픽에 대응하여 주최한 행사로 인하여 북한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고난의 행군까지 가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로써, 북한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북한은 외자 유치를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나진, 선봉지역에, 신의주 공업 자유지대, 개성공단등, 중국과 대한민국의 자본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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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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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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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ko.m.wikipedia.org/wiki/%EC%A1%B0%EC%84%A0%EB%AF%BC%EC%A3%BC%EC%A3%BC%EC%9D%98%EC%9D%B8%EB%AF%BC%EA%B3%B5%ED%99%94%EA%B5%AD|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