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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26 | 때로는 왕이 생전에 자신이 직접 묻힐 곳을 찾아 미리 무덤을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수릉(壽陵)이라고 한다. 거대한 무덤을 조성하는 중국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왕릉을 미리 조성하는 경우는 공민왕 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조선왕릉에서는 종종 수릉을 조성하였는데 이러한 대표적인 왕릉은 세종의 구영릉과 영조가 묻히려 했던 정성왕후의 홍릉 등이 있다. |
| 27 | 27 | == 왕릉 조성 == |
| 28 | 28 | 왕릉 조성 작업은 석물을 만들어서 봉분 주변에 배치하고, 정자각과 비각 등을 조성하는 면에서는 대부분 다 비슷하지만, 능실을 조성하는데 있어서는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석실을 이용한 방식과 국조상례보편에 기록되어 있는 회격을 이용한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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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왕릉 조성이 끝난 뒤 각 도감마다 자신들이 했던 일들을 의궤에 기록하였다. 각 도감마다 기록한 의궤에서는 국장 과정과 기간, 택지에 대한 주관자와 의도, 산릉 조성에 필요한 경비와 자재, 왕릉 조성 과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하여 놓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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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이러한 기록 덕분에 조선 왕실의 장례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참고할 수 있고, 왕릉이 부득이하게 훼손되어도 그대로 복구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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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또한, 각 조선왕릉에서는 능에 대한 관리나 주요 사항을 기록한 ‘능지’를 기록하였다. 이외에 왕릉조성에 대한 규정과 과정이 기록된 국조오례의, 경국대전, 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 등이 있어 조선왕릉의 능제와 석물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 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 |
| 35 | == 제례 의식 == | |
| 36 | 조선 왕실에서 지내는 역대 왕과 왕비들에 대한 제사 의식은 크게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치르는 종묘 제례와 직접 능으로 행차하여, 치르는 산릉 제례가 있다. 이를 기신친향례(忌辰親享禮)라고도 하는데, 기신친향례는 역대 왕과 왕후에 대한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오례의 중 길례에 해당된다. 국조오례의에서는 산릉 제례로 사시(1월, 4월, 7월, 10월의 초순), 납일(연말), 속절(풍속에 따라 지키는 절기), 삭망(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치르는 정기 제례와 임금이 직접 치르는 친제로 나누었고, 이를 소상히 규정해 놓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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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제례 절차를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왕이 소여를 타고 와서 홍살문 앞에 배위에 서서 능을 한 번 바라본다. 그리고 어도를 따라 걸어 미리 설치해둔 소차로 들어가서 손을 씻고 동입서출의 예에 따라 정자각 동계에 오른다. 그리고 신을 맞이하기 위해 네 번 절을 한 뒤 제주 따르는 모습을 살펴본다. 세 번 향을 피우고, 왕이 먼저 첫 잔을 올린 다음 축문을 읽는다. 그 다음 영의정이 두 번째 잔을 올린다. 축문을 읽음으로써 조상의 위업을 다시 한 번 기리고, 향을 피우고 술잔을 바침으로써 조상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다. 그 뒤 절을 네 번 하면서 신을 보내고 축문을 태움으로써 제례를 끝낸다. 산릉 제례를 통해 왕의 존재가 단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고 먼 조상의 임금으로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을 다시 인식한다고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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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배릉 의식이라고 하여 조선 시대의 왕은 왕위에 올랐을 때 건원릉과 부왕과 모후의 산릉에 반드시 참배해야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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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42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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