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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16 | === 이동수단 === |
| 17 | 17 | 조선의 가장 흔한 이동 형태는 걷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른 고장으로 이동하거나 서신을 전달할 경우 그저 걸어서 이동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상업 활동에도 이어져 보부상은 물건을 이거나 지고 이곳 저곳을 떠돌며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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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양반과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은 매우 비싼 교통 수단이었다. 말 한 마리의 가격은 노비 두 세명에 맞먹을 만큼 비쌌다. 조선은 산악이 많아 지방 사이를 오가는 일에 수레나 마차를 쓰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관도 역시 좁게 만들어져 졌기 때문에 수레 이용이 제한적이었다. 조선 시대의 도로 폭은 대로의 경우 12보, 중로는 9보, 소로는 6보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도로는 현지의 사정에 맞게 건설될 수 | |
| 19 | 양반과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은 매우 비싼 교통 수단이었다. 말 한 마리의 가격은 노비 두 세명에 맞먹을 만큼 비쌌다. 조선은 산악이 많아 지방 사이를 오가는 일에 수레나 마차를 쓰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관도 역시 좁게 만들어져 졌기 때문에 수레 이용이 제한적이었다. 조선 시대의 도로 폭은 대로의 경우 12보, 중로는 9보, 소로는 6보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도로는 현지의 사정에 맞게 건설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는 산악 지형이 많아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는 매우 좁았다. 문경 새재나 회양 철령과 같은 주요 관문의 도로 폭은 1 - 2보에 불과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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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21 | 신분이 높은 사람은 걷는 대신 사람이 짊어지는 가마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여러 사람이 지고 움직이는 가마의 이용에는 신분 제약이 있어 양반이 아니면 함부로 탈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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