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47 vs r48
......
112112
113113
양반은 세대를 거듭하여 관료를 담당함으로써 스스로 특권화된 계층으로 혼인, 학연 등을 기반으로 다른 계층과 구분되는 사회 계급을 형성하였다. 중인은 지방의 향리를 비롯하여 의원, 역관 등의 기술직에 종사하는 계층으로 이들의 신분 상승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양인은 주로 농사에 종사하였으며 각종 세금의 징수, 국가 노역의 동원, 병역의 부담 등을 떠안았다. 조선의 천민은 전대인 고려 시기의 향, 소, 부곡 등의 경우와 달리 지역 전체가 천민으로 지정되는 경우는 없었으나 여전히 사회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관청에 소속된 관노나 개인의 종으로 부려진 사노비와 같은 노비, 백정과 같은 특수한 직업을 지닌 사람, 남사당과 같은 재인 등이 천민에 속했다. 이러한 신분의 구분은 갑오경장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혁파되었으나 사회의 차별은 20세기 초까지도 남아있었다.
114114
115
결혼과 가족의 구성에서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으나 재력이 있는 남성의 경우 첩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은 개인 간의 결합이라기 보다 가문의 결합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아내는 오직 한 명만이 인정되었고 중혼할 경우 처벌받았지만, 첩의 경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양반의 경우 결혼은 인생의 주요 통과의례인 관혼상제 가운데 하나였고 가문이 결정한 바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러나 첩을 들이는 것은 남성이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본처가 새로 들인 천민 출신의 첩을 살해하는 등 양반 여성의 저항도 상당하였으나 중기인 중종 시기 국가의 강력한 개입으로 이러한 행위가 처벌되면서 처의 반발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15
결혼과 가족의 구성에서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으나 재력이 있는 남성의 경우 첩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은 개인 간의 결합이라기 보다 가문의 결합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아내는 오직 한 명만이 인정되었고 중혼할 경우 처벌받았지만, 첩의 경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양반의 경우 결혼은 인생의 주요 통과의례인 관혼상제 가운데 하나였고 가문이 결정한 바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러나 첩을 들이는 것은 남성이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본처가 새로 들인 천민 출신의 첩을 살해하는 등 양반 여성의 저항도 상당하였으나 중기인 중종 시기 국가의 강력한 개입으로 이러한 행위가 처벌되면서 처의 반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116116
117117
== 문화 ==
118118
문화는 한 사회의 생활 양식 전반을 일컫는 개념으로 조선 역시 의식주를 비롯한 사회 여러 분야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조선의 문화 가운데 상당수는 오늘날 한국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한반도를 비롯한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이웃하고 있고 삼국시대 이래로 계속하여 서로 교류하여 상당한 문화적 유사성을 보이면서도 각자 독자적인 발전을 통한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