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논란 및 사건 사고(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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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한·미간의 이견이 지속되자 1970년 8월 철군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애그뉴 미 부통령이 서울을 방문하여 박대통령과 장시간 회담을 갖게 된다. 부통령의 한국 방문 브리핑 문건에는 박정희가 주한미군 감군 시기와 71년 봄 선거 기간이 일치한다는 점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또한 미국이 방위조약의 모든 의무를 지키되, 한국이 요구하고 있는 유사시 자동개입은 허락할 수 없음을 못 박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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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박-애그뉴 회담에서 박대통령은 철군 이전 미국이 한국의 안보보장을 위해 외교적·군사적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즉 한국군 현대화 지원액 증액, 북한의 공격시 미국의 자동개입, 공동성명의 채택 등을 요구하였다. 애그뉴 부통령은「한·미 방위조약」에 입각한 한국 방위와 추가 군사원조를 약속하였다. 1971년 2월 6일 양국은 결국 미 7사단의 철수, 2사단의 후방 배치에 합의하였다.[[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2770&pageFlag=&sitePage=&utm_source=chatgpt.com|#]] |
| 30 | == 윤금이씨 살인 사건 == | |
| 31 | 윤금이씨 살인사건은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의 미군 기지촌에서 주한미군 제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이병이 당시 26세였던 윤금이 씨를 살해한 사건이다. [[가해자]] 마클은 윤 씨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뒤 시신에 매우 잔혹한 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사건의 참혹성이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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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1993년 4월 서울형사지법은 마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는 피해자 가족에게 배상금이 지급된 점 등이 참작돼 징역 15년으로 감형됐고, 1994년 4월 대법원이 15년형을 확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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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이후 마클은 2006년 8월 가석방돼 미국으로 출국했는데, 이미 15년형 중 상당 기간을 복역한 상태였지만 가석방 결정 역시 국내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 |
| 30 | 36 | == 지하철 미군 난동 사건 == |
| 31 | 37 | 1995년 5월 19일 충무로 지하철 미군 난동 사건은 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와 충무로역에서 술에 취한 주한미군 및 가족 13명이 소란을 피우고 여성 승객을 성희롱하는 일이 벌어진 뒤, 이를 항의하던 시민 조정국 씨를 미군들이 따라가 집단 폭행한 사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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