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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28 |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0월 관저 완공 후 이듬해 9월 4일 본관을 준공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으며, [[윤석열 정부]] 시절을 제외하고 대통령의 관저 역할을 해왔다. 주요 시설로는 집무 공간인 본관과 공식 행사 공간인 영빈관, 주거 공간인 관저, 외빈 접견 장소인 상춘재, 비서 부속기구인 대통령비서실, 경호 부속기구인 대통령경호처, 대언론 창구인 춘추관 등이 있다. |
| 29 | 29 | == 연혁 == |
| 30 | ||<width=18%><tablebgcolor=#fff,#1c1d1f> 1395년 ||[[조선]] [[태조(조선)|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이곳에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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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width=18%><tablebgcolor=#fff,#1c1d1f> 1395년 ||[[조선]] [[태조(조선)|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이곳에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그리고 궁궐의 배후를 보호하는 군사적·풍수적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며, 일반 백성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 | |
| 31 | ||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로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며, 경복궁과 그 후원 일대는 일본 식민 통치의 상징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 | |
| 32 | || 1937년 ||조선총독부는 기존 총독 관저가 노후화되었다는 이유로 새로운 총독 관저 건립을 결정하였다. || | |
| 33 | || 1939년 ||경복궁 후원 북쪽에 조선총독 관저가 완공되었다. 훗날 청와대 본관의 구조적 전신이 된다. 이후 이곳은 조선총독의 공식 관저이자 정치적 통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 | |
| 34 | ||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며 일본 총독부 체제가 붕괴되었다. 총독 관저 건물은 미군정 최고 책임자의 관저로 전환되어 사용되었고, 여전히 최고 권력자의 거처라는 성격을 유지하게 된다. || | |
| 35 | ||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기존 총독 관저를 대통령 관저 겸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때 이 공간은 ‘경무대’ 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경무대는 대통령 권력의 상징이 되었으며, 일반 국민에게는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 | |
| 36 | ||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같은 해, 식민 잔재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경무대’라는 명칭을 폐지하고, 건물의 푸른 기와에서 착안한 ‘청와대’ 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 |
| 37 | 37 | || 1969년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 세탁기 생산 || |
| 38 | 38 | || 1973년 ||국내 최초로 녹음기 생산 || |
| 39 | 39 | || 1976년 ||TV 생산 100만대 돌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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