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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4 | ||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며 일본 총독부 체제가 붕괴되었다. 총독 관저 건물은 미군정 최고 책임자의 관저로 전환되어 사용되었고, 여전히 최고 권력자의 거처라는 성격을 유지하게 된다. || |
| 35 | 35 | ||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기존 총독 관저를 대통령 관저 겸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때 이 공간은 ‘경무대’ 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경무대는 대통령 권력의 상징이 되었으며, 일반 국민에게는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 |
| 36 | 36 | ||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같은 해, 식민 잔재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경무대’라는 명칭을 폐지하고, 건물의 푸른 기와에서 착안한 ‘청와대’ 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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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는 강력한 권위주의 권력의 중심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 | |
| 38 | ||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주변의 경호·군사·경찰 체계가 대폭 강화되었으며, 이후 청와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게 된다.] || | |
| 39 | || 1974년 ||광복절 기념식 도중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 이후 대통령 경호 체계가 전면 재정비되었고, 청와대 내부 동선과 보안 시스템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 | |
| 52 | 40 | == 경호 == |
| 53 | 41 | 청와대 경호는 대통령경호처가 담당하며 경찰과 군도 경호 업무를 맡는다. 경찰 조직에선 서울특별시경찰청 소속 101경비단·202경비단·22경찰경호대 등 세 기관에서도 청와대의 경비·경호를 담당한다. 101경비단은 청와대 내곽을 경비하고 202경비단은 외곽을 경비한다. 경찰경호대는 대통령 외부 행사장에서 경호를 맡는다. 인원은 경비단이 700여 명 수준이고 경호대는 100~150명 정도다. 군 조직에선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제1경비단이 외곽 경비를 담당한다. 산하에 2개 대대와 전투지원중대·장갑중대·방공대가 있는데 과거 존재하던 30경비단과 33경비단을 통합하여 창설됐다. 소속 병력은 2,000여 명 수준이다. |
| 54 | 42 | == 풍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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