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1 vs r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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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둥댄 정부, 초동 대처 실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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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는 사고 발생 후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 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으나, 곧 관련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에 넘겼다. 하지만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기에 경기도교육청도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잘못된 공지로 공분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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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해수부·교육부·해양경찰청 등이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 개에 달했다. 총리실은 중구난방이 된 대책본부를 통합해 정홍원 전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했고, 결국 해수부장관이 다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게 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구조 작업은 더뎌졌다. '''이처럼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직후 초동 대처부터 허둥댔던 정부의 무능과 혼선 등 허술한 재난대응시스템이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노출되면서 정부 책임론에 대한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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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구조 작업 돌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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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선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완전히 침몰된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는데,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4월 16일 오후 5시 정도였다. 특히 사고 발생 첫날인 4월 16일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 수백 명의 구조요원이 투입되었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수중수색은 3차에 걸쳐 16명이 투입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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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월호는 사고 초기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지만 3분의 2 이상이 해상에 떠있는 상태를 상당 시간 유지하고 있어 이 시기 구조장비의 빠른 투입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체 부양을 위한 리프트백 투입은 4월 18일에야 이뤄졌고, 야간구조작업을 위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침몰 나흘째,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바지선은 침몰 5일째인 4월 20일에야 뒤늦게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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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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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는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처음 건조된 여객선이다. 일본에서 ‘페리 나미노우에(파도의 위)’라는 이름으로 2012년 10월까지 18년 동안 가고시마와 오키나와 사이의 여러 낙도들을 운항했다. 이후 한국의 청해진해운이 이 배를 중고로 도입해 6개월 정도의 수리 기간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객실 증설 공사를 진행해 총톤수를 6825t으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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