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2 vs 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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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6월에 국호를 시암(태국어: สยาม 사얌[*], 음역어: 섬라(暹羅)/섬라곡국(暹羅斛國))에서 타이로 고쳤다가, 1945년 9월에 다시 시암으로 되돌렸다. 1949년 5월 11일에 국호를 다시 타이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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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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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이 함락되며 남베트남이 멸망하자, 안그래도 불안정했던 태국 사회는 갈수록 흔들렸으며 극우 세력들은 좌파 계열의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숙청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1976년에는 탐마삿 대학의 학생들이 대거 살해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그날 쿠데타가 일어났고, 태국의 민주정부가 겨난 자리에는 극우세력이 득세한 정부가 들어서 언론인, 관리,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였다. 극우 정부는 반공을 내세우며 독재를 정당화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탄압하며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같은 해 일어난 또다른 쿠데타로 인하여 그나마 더 온건한 성향의 정부가 들어섰으며, 1978년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우호를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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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이 함락되며 남베트남이 멸망하자, 안그래도 불안정했던 태국 사회는 갈수록 흔들렸으며 극우 세력들은 좌파 계열의 학생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숙청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1976년에는 탐마삿 대학의 학생들이 대거 살해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그날 쿠데타가 일어났고, 태국의 민주정부가 겨난 자리에는 극우세력이 득세한 정부가 들어서 언론인, 관리,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였다. 극우 정부는 반공을 내세우며 독재를 정당화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탄압하며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같은 해 일어난 또다른 쿠데타로 인하여 그나마 더 온건한 성향의 정부가 들어섰으며, 1978년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우호를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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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난민 문제, 국경 분쟁, 경제 문제들이 연이어 겹치며 악재에 시달리자, 쁘렘 띤나술라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980년에서 1988년까지 총리로 재임하였다. 쁘렘 총리 시기는 종종 ‘반-민주주의’ 시기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양원제로 구성된 태국의 의회들 중 하원은 모두 민주 선출제로, 상원은 모두 임명제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기에는 국왕이 점차 정사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에는 처음으로 태국에서 선거를 통하여 뽑힌 총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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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수찐다 끄라쁘라윤 장군은 자신이 총리직에 관심이 없음을 밝혔으나, 1992년 대선에서 비리를 저지르며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고, 결국 이때도 라마 9세가 또다시 정국에 개입하며 국민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수찐다 총리는 그날로 사직하였다. 1997년에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는 40여 년에 이른 경제성장을 끝내버렸다. 정부는 IMF에게 구제 금융을 받았으며, 이는 수많은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포퓰리스트 정치인 탁신 시나와트라가 이끄는 정당이 이에 편승하여 인기몰이를 하였고, 탁신 총리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재임하였다. 한편 2004년 인도양에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며 태국 남부를 대대적으로 덮쳤고,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일어나며 탁신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게 증폭되었다. 이후 탁신 총리의 2기 집권기에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2006년에 쿠데타가 일어나며 탁신 총리도 겨났다. 군부 세력은 군정을 설치하였고, 이 군정은 대략 1년 정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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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의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수찐다 끄라쁘라윤 장군은 자신이 총리직에 관심이 없음을 밝혔으나, 1992년 대선에서 비리를 저지르며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고, 결국 이때도 라마 9세가 또다시 정국에 개입하며 국민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수찐다 총리는 그날로 사직하였다. 1997년에 터진 아시아 금융위기는 40여 년에 이른 경제성장을 끝내버렸다. 정부는 IMF에게 구제 금융을 받았으며, 이는 수많은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포퓰리스트 정치인 탁신 시나와트라가 이끄는 정당이 이에 편승하여 인기몰이를 하였고, 탁신 총리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재임하였다. 한편 2004년 인도양에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며 태국 남부를 대대적으로 덮쳤고,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일어나며 탁신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게 증폭되었다. 이후 탁신 총리의 2기 집권기에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2006년에 쿠데타가 일어나며 탁신 총리도 겨났다. 군부 세력은 군정을 설치하였고, 이 군정은 대략 1년 정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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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탁신 전 총리와 연합한 태국 인민의 힘 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인민의 힘 당은 민주당과 연정을 맺어 정부를 구성하였고, 이후 탁신계 인사들이 정부에 줄줄이 재등용되는 것에 반대한 세력들이 시위를 일으켰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2011년 총선에서도 탁신계 정당이 승리를 거두었고, 탁신의 누이인 잉락 시나와트라가 새로운 총리로 당선되었다. 반대세력들은 탁신의 친척들이 정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시위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잉락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미루려 들었으나, 헌법재판소가 이를 저지하면서 실패하였다. 이후 2014년에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쁘라윳 찬오차 장군의 주도하의 국가평화유지위원회가 결성되어 현재까지 태국을 통치해오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시민권과 정치권을 제한하였으며, 국왕의 권위를 모독하는 행위들을 엄격히 단속하는 탄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야당과 반대 세력들은 ‘단속 캠프’로 보내지고 있다는 설도 있어 논란은 여전히 증폭되고 있다. 한편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라마 9세가 2016년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라마 10세가 왕위에 올랐다. 2019년에는 군부가 3월에 총선을 치르기로 합의하였고, 쁘라윳 총리는 군부를 지지하는 팔랑쁘라차랏당의 지원을 받아 총리직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한편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내려진 비상 봉쇄령에 반발하며 2020년 태국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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