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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 | [include(틀:관련 문서, 문서명1=대한민국)] |
| 2 | 2 | ||<-2><tablewidth=420><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0,#fff><table bgcolor=#fff,#1f2023><bgcolor=#cd2e3a> {{{#fff {{{+2 '''태극기'''}}}[br]太極旗 | Flag of Republic of Korea (Taegeukgi)}}} || |
| 3 | 3 | ||<-2><bgcolor=#fafafa><nopad> [[파일:대한민국 국기.jpg|width=100%]] || |
| 4 | ||<width=90><colbgcolor=#0047a0> {{{#fff '''국가명'''}}} ||[[대한민국]] || | |
| 4 | ||<width=90><colbgcolor=#0047a0> {{{#fff '''국가명'''}}} ||[[대한민국 반달|대한민국]] || | |
| 5 | 5 | || {{{#fff '''제작 시기'''}}} ||1882년^^([age(1882-01-01)]주년)^^ ([[조선]]) || |
| 6 | 6 | || {{{#fff '''제작자'''}}} ||이응준[* 이응준(李應浚, 1832년(?) ~ ?)은 조선 후기의 역관이다. 자(字)는 원명(元明), 다른 이름은 응준(應俊)이다. 본관은 벽진(碧珍) 또는 금산(金山)이다. 1882년(고종 18)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선 최초로 국기인 태극기를 개발, 사용하였다.][br]박영효[* 박영효(朴泳孝(Park Young-hyo), 1861년 6월 12일 ~ 1939년 9월 21일)는 조선 경기도 광주유수 겸 수어사 직책을 지낸 조선 말기의 문신, 정치인, 사상가, 작가로 급진개화파이다.] || |
| 7 | 7 | || {{{#fff '''채택일'''}}} ||1948년 7월 1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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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9 | || {{{#fff '''비율'''}}} ||2:3 || |
| 10 | 10 | [목차] |
| 11 | 11 | == 개요 == |
| 12 |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太極旗)로 흰 바탕의 기 위에 짙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싼 모양이다. 태극기의 최초 도안자는 대한제국 고종이다. 태극기는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국기로 사용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 대한민국의 정식 국기로서 사용되고 있다. | |
| 12 | [[대한민국 반달|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太極旗)로 흰 바탕의 기 위에 짙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싼 모양이다. 태극기의 최초 도안자는 대한제국 고종이다. 태극기는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국기로 사용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 대한민국의 정식 국기로서 사용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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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14 | == 상세 == |
| 15 | 15 |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태극기가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5] 이 때까지만 해도 태극기는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로 구성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통일된 작도법이 없어 다양한 규격의 태극기가 통용되어 통일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위해 정부가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안이 수렴되었으며, 여러 토론 끝에 '우리국기보양회'의 안이 채택되었다. 최종적으로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로서 현행과 같은 태극기 규격이 정해졌다.[9] 1984년 2월 21일 대통령령으로 기존의 '국기제작법'과 '국기게양방법에 관한 건'으로 이원화된 것을 통합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고, 2007년 7월 27일부터 새로운 '대한민국 국기법'이 시행되어 태극기의 제작, 게양, 취급의 지침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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