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vs 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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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즉위하자 성석린을 보내 태조를 서울로 모셔 왔다. 그러나 이성계는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이고, 자신을 사실상 폐위한 이방원을 매우 증오해 1402년(태종 2년)에 다시 함경도로 들어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태종이 차사(差使)를 보내어 돌아오기를 권유하니, 차사마저 돌려보내지 않고 활에 화살을 넣고 족족 오는 차사마다 죽였다는 야사가 있어 함흥차사란 말이 생겨났다. 그곳에서 이성계는 '조사의의 난'을 부추겨 아들 이방원을 쳤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뒤에 태종 이방원의 아내인 '원경왕후 민씨'의 천거로 무학대사가 차사로 가서 겨우 서울로 오게 하였는데 오면서도 두 차례에 걸쳐 이방원을 살해할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체념해 이방원을 인정하고 용서했다는 야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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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년 한성부로 돌아온 태조는 태상왕으로 7년을 더 살며 염불삼매로 조용한 나날을 보내다가 1408년 음력 5월 24일에 지병으로 있던 중풍이 악화되어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74세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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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년 한성부로 돌아온 태조는 태상왕으로 7년을 더 살며 염불삼매로 조용한 나날을 보내다가 1408년 음력 5월 24일에 지병으로 있던 중풍이 악화되어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74세로 승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