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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33 | 글을 읽어서 학업을 쌓았으나 오래 과거를 보지 않다가, 뒤늦게 여러번 과거 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히 낙방하고 가세도 빈한해져 그는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다. 1452년(문종 2년) 음보로 처음으로 출사하여 송도에서 경덕궁직이라는 벼슬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수양대군]]과 자주 교류하였고 뒤에 그의 모사로 활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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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35 | 경덕궁직으로 있을 때 그는 역시 같은 경덕궁직에 있던 무사 홍달손, 홍윤성, 양정 등을 만나 사귀게 되는데, 한명회는 이들 30여 명을 수양대군에게 적극 천거하여 이들의 인맥을 통해 거사를 일으킬 병력을 모으게 된다. |
| 36 | === 집권 계획 준비 === | |
| 37 | 과거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친구 권람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찾아가 거사를 논의케 했고, 다시 권람에 의해 천거되어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조선)|단종]]이 즉위하여 김종서, 황보인 등 대신이 집권하자, 권람의 주선으로 수양대군과 자주 만나며 집권 계획을 역설, 무사 홍달손 등을 추천하여 그의 심복이 되게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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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그는 강력한 [[군주]]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강력한 지도자와 엄격한 법 집행만이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느슨한 법집행과 온정주의는 도적과 부패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명회의 계책을 들은 권람은 수양대군을 찾아가 이를 고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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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권람의 진언을 받은 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대군 이용에게 포섭되어 선조의 충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의 선령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반정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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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수양대군은 처음 집권을 위한 그의 계획에 머뭇거렸으나 이내 집권을 결심하고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람을 모으게 된다. 이후 수양대군과 의기투합하여 이런 저런 사람을 주변으로 모았다. | |
| 36 | 44 | == 본 문서 정보 == |
| 37 | 45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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