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6 vs 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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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람의 진언을 받은 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대군 이용에게 포섭되어 선조의 충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의 선령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반정의 책략을 남김없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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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은 처음 집권을 위한 그의 계획에 머뭇거렸으나 이내 집권을 결심하고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람을 모으게 된다. 이후 수양대군과 의기투합하여 이런 저런 사람을 주변으로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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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유정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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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유정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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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단종 1년) 군기감녹사가 되고, 1453년초 수양대군의 심복 참모로서 비밀리에 사람과 재물을 동원, 계유정난을 일으켜 [[한성부]]를 점령한다. 이어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제거하고 수양대군의 집권에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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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0월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의병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김종서와 황보인을 제거한다고 하자 실패를 걱정하고 군사들은 우왕좌왕하였다. 그러자 그는 칼을 빼어 들고 큰 소리로 말하며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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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한명회는 모사가들을 시켜 잔존 세력을 숙청한 후, 직접 김종서와 황보인의 집에 찾아가 김종서 등과 황보인 일족을 참살케 한 후 군기녹사·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 1등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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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자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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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세조(조선)|세조]] 2) 2월 성삼문과 집현전 학사들이 세조 3부자를 연회장에서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이후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세종대왕]]으로부터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을 부탁한다는 유지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명회는, 연회장에 별운검으로 임명된 성승, 김문기, 하위지 등을 의심하고 이들의 출입을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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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 5월에는 명나라 황제가 태감 윤봉을 보내서 특별 선물로 그에게 관복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육신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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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명나라 사신이 한성부에 도착하자 운검들이 출입하려 하였다. 그러자 그는 미구의 사태를 대비해,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는 광연루에 사신이 많아서 자리가 좁다는 이유로 세자는 연회에 참석하지 말 것과, 홍달손과 홍윤성을 시켜서 병력을 동원할 것이니 운검의 제장들도 입시하지 못하게 하기를 주청하여 세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이를 윤허하였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이 운검을 차고 곧장 들어오려 하기에 운검은 안 들어와도 된다며 제지하였다. 이에 거사의 실패를 우려한 운검의 병력들이 그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민첩하게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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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6년 초부터 그는 정창손에게 사위를 설득하게 했는데, 그해 6월 2일, 사육신과 함께 세조 3부자 척살에 가담하기로 한 김질이 장인인 정창손의 설득으로 거사의 가담자들을 폭로함으로써 성삼문, 하위지, 김문기 등을 체포하였다. 바로 이들을 국문한 후 처형하고, 800여 명의 관련자들을 처형했으며, 수천 명을 [[유배]]시켰다. 사육신이 사형된 후 사육신의 의거를 진압한 공로로 승정원좌승지를 거쳐 그해 겨울 도승지로 발탁되었다가 이조판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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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딸을 세조의 차남 해양대군에게 출가시켰으나, 셋째 딸은 아들 인성대군을 낳고는 산욕으로 요절한다. 외손자 인성대군 마저 요절하면서 한명회는 해양대군과는 다소 껄끄러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해양대군이 곧 예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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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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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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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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