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8 vs r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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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 67 |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절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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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69 | 인수대비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 혈과 그의 넷째 딸을 혼인시키는데, 후에 예종이 일찍 죽자 한명회는 신숙주, 정창손 등과 함께 자을산군을 추대하여 성종으로 등극시키게 된다. 또한 권람, 신숙주 등과 인척관계를 맺고 세조 치정의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인척 관계에 의한 요직 장악이라는 크나큰 인사 폐단을 낳아 조선왕조의 기강을 흐트러 놓는 원인이 되었다. |
| 70 | === 좌의정 재임명 === | |
| 71 | 1474년(성종 5년) 다시 의정부좌의정에 임명되었다. 1475년 초 사은사로 연경에 가서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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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1475년(성종 5년) 평안남도 병마절도사를 혁파하자는 건의가 올라와 성종이 회의를 소집하자, 모두가 혁파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를 듣고 급히 돌아와 이를 강력 반대하였다. | |
| 70 | 74 | == 군사 활동 == |
| 71 | 변방 수비와 국방 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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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 변방 수비와 국방 활동 === | |
| 73 | 76 | 그는 세조 집권 초반부터 변방의 성곽 수축과 병력 양성을 건의하고, 해안가에도 성곽을 쌓고 병력을 보내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하며 미구에 있을 왜구와 여진족의 침략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6년부터 [[단종(조선)|노산군]]과 [[금성대군]]을 처형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세조가 듣지 않았다. 1457년(세조 2년) 초 숭정대부로 승진하고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한 뒤, 상당군에 봉군되었다. 그해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모의를 적발하여 처형시켰다. 그해 겨울 해양대군의 왕세자 책봉을 주청하기 위한 세자책봉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의 연경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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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78 | 세자 책봉을 성사시키고 1458년 봄에 귀국,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여름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의 3도에 흉년이 들어, 그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3도 순찰사에 특별히 임명되어 구호물자를 싣고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순시하며 백성들을 구휼하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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