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6 vs r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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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38 | 성종때 이후 사림의 정계진출 이후 도학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그가 계유정난과 [[세조찬위|세조 반정]]을 주도한 점이 집중 부각되어 비판과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
| 39 | 39 | == 의혹 == |
| 40 | 40 | 왕조실록에 의하면 밀양 사는 박씨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억지로 이혼시키고 조카의 아내가 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세조조에 한명회가 한언의 숙부로 밀양 사는 박씨가 재산이 많다는 말을 듣고 세조에게 청하여 전부와 이이하게 하고 언의 아내로 삼았는데, 성종조에 이르러 무릇 재가한 사족은 청현직에 서용하지 않게 되자, 홍윤이 형조의 낭관이 되어 대간의 논박을 받고 체직당하였기 때문에 상소하여 원통함을 호소하였으나, 끝내 변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 41 | == 여담 == | |
| 42 | * [[세조(조선)|세조]]는 나의 장량이라고 할 정도로 한명회를 총애했으며,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하기도 했다. 서울의 압구정동은 그가 만년에 여생을 보낼 목적으로 세운 정자이자 그의 아호인 압구정에서 유래한 지명 이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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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정몽주의 서손녀이며 정보의 서누이동생 정씨는 한명회의 소실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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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 야사에 의하면 그의 외모는 얼굴이 아래가 너무 넓게 퍼지고, 위는 좁고 뾰죽하여 마치 손으로 잡아 늘인 듯 길쭉한데다, 주먹코에 눈은 크고 눈동자가 바로 잡히지 않은 사팔뜨기로 극히 못 생겼었다고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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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 그는 세조와 그의 장남이자 자신의 사위인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와도 이중 사돈관계를 형성하였다.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는 그의 셋째 딸이고,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는 넷째 딸로, 이들은 친정 자매간이면서 시가로는 시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되는 관계가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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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 폐비 윤씨와는 먼 인척이었다. 둘째 사위 신주의 아버지 [[신숙주]]는 폐비 윤씨의 외당숙이다. 폐비 윤씨의 친정어머니이자 금삼을 전한 군부인 신씨는 신숙주의 사촌 동생이자 사위 신주의 당고모가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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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 한명회는 노년에 권좌에서 물러나 송나라 정승 한충헌의 정자를 흉내내기 위해 명나라 한림원시강 예겸에게 정자 작명을 청하면서 한가로이 갈매기와 벗하며 지내고 싶다하는 정자를 짓고 여기에 자신의 호를 붙여 '압구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노년에도 부원군의 자격으로 여전히 정사에 참여하여 권좌를 지킨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백성들에게 압구정은 자연과 벗하는 곳이 아닌 권력과 벗하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다.후배 연일 정씨는 통의원사정종화의 딸이며 정몽주의 손녀이니 그가 서북 양도의 관찰사로 재직할 때 마음과 몸차림이 단엄한 것을 보고 함께 왔다. 전주 이씨 선천공조의 딸은 아버지의 이름이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그가 서백이 되었을 때 이름 미상의 전주 이씨에게 사위 되기를 위협 받았는데 한명회가 승낙하지 않자, 그가 칼을 들고 사생결단하여 부득이 배필로 취하여 데려왔다. 집안에서 상하를 막론하고 두 부인을 부인으로서 대우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세조가 그의 집에 방문하니 정종화의 딸 정씨, 이씨가 모셔서 술을 나누니 왕이 누구인지 물으니 양 부인이 뜰에 엎드려 그 원통한 사실을 울면서 하소연하자 세조가 형수라고 부르며 입시하도록 하여, 특별히 가져온 종이와 먹에 어필로써 직접 써서 교지를 전하고 양 부인에게 정경부인을 봉하는 옥새를 눌러주니 온 집안이 이때부터 양 부인을 괄시하지 않고 부인의 예로써 대했다. | |
| 41 | 53 | == 본 문서 정보 == |
| 42 | 54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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