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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내를 만났다. 헤어진지 5년만에 재회였다. 1907년 후반까지 북청군 안산사 노은리에 거주하며 사냥과 화전농에 종사하였다. 특히 이 때 선생은 안산사 일대 포수들의 동업조직인 포연대의 대장으로서 포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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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9월 3일 일제가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공포하고 포수들의 총을 회수하려 하자, 11월 차도선 등과 산포수 70명으로 산포대를 조직한 뒤 포수들의 총을 압수하여 북청으로 반출하는 일본군을 북청의 후치령에서 습격하여 적군 2명과 일본인 순사 1명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같은 달 25일에도 이곳에서 미야베 대위가 지휘하는 일본인 군경 70여 명과 3시간 동안 격전을 벌여 적군 30여 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갑산 · 삼수 · 혜산 · 풍산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 수비대를 격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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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공산당 국제대회에 국제공산당이 지휘한 원동의 식민지·반식민지 혁명가로 참석한다. 1927년 소련의 볼셰비키당에 입당하였으나, 1937년 스탈린에게 고려인이 일본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강제로 이주 당했다. 당시 소련은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인 및 일본군 간첩을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많은 고려인들을 황량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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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로르다로 옮겨온 그는 거기서 집단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말년에는 고려극장의 관리인으로 일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1943년에 향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후 키질로르다의 한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93년에 북한은 홍범도가 평양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봉환 시도를 하였지만, 고려인 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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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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