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더시드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도구 모음
영의정
(r3판 RAW)
보기
RAW
역사
||<-2><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c00d45><tablebgcolor=#fff,#1c1d1f><colbgcolor=#c00d45><colcolor=#fff> '''{{{+1 영의정}}}[br]領議政''' || ||<width=25%><|1> '''소속''' ||의정부 || || '''설치일''' ||1401년 8월 22일 || || '''폐지일''' ||1894년 8월 20일 || ||<|1> '''품계''' ||정1품 || || '''지명자''' ||조선 국왕 || || '''임명자''' ||조선 국왕 || || '''상관''' ||조선 국왕 || || '''전신''' ||고려 문하시중 || || '''후신''' ||대조선국 총리대신 || [목차] [clearfix] == 개요 == 영의정(領議政)은 [[조선]] 의정부의 정1품 최고 벼슬로, 지금의 [[국무총리]] 격과 같거나 비슷한 직책에 속한다. == 상세 == 국회의장·대법원장 격인 좌의정·우의정과 함께 트로이카를 구성하는 삼의정(三議政) 또는 삼정승(三政丞) 또는 삼상신(三相臣)이라 하였다. 영상(領相), 수상(首相), 상상(上相), 수규(首揆), 원보(元輔)라고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왕실 구성원이 아닌 인물 중에서는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이다. == 역사 == 1401년(태종 1년) 7월 의정부가 설치될 무렵 영의정부사라고 하던 것을, 1466년(세조 12년) 1월 관제개정 때 '영의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말기까지 이어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일본관제의 영향으로 총리대신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뒤에 의정대신, 내각총리대신으로 고쳐졌다. == 평가 == 영의정은 명실공히 국정을 총괄하고 백관을 대표하는 관원으로 다양한 사안을 다루는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중요한 직책이다. 연산군은 “정승으로서 5만명을 데리고 가서 겨우 꿩 한 마리를 잡았는가”라고 비웃기도 하였다. == 여담 == * 영의정을 가장 많이 배출한 세 가문은 전주 이씨, 안동 김씨, 청송 심씨이다. * 초대 영의정은 이서이고, 마지막 영의정은 김홍집이다. * 최장으로 재임한 영의정은 황희(18년)이고, 정창손과 심순택이 10여년간을 영의정으로 재임하여 그 다음이다. * 영의정에서 유일하게 왕위에 오른 자는 7대 왕인 세조이다. * 조선왕조 500년의 역대 재상 중,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평가받은 이는 하연이다. == 본 문서 정보 ==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 [[https://ko.m.wikipedia.org/wiki/%EC%98%81%EC%9D%98%EC%A0%95|위키백과]] [[분류: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