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화

수정됨
↑ 상위 문서: 미국
1. 개요2. 상세3. 요리4. 문학5. 영화6. 축구7. 성문화8.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미국의 문화를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상세[편집]

미국의 문화는 원래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미국에서 발전한 서양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는 미국이 미국 영어, 미국 음악, 미국 미술, 사회적 관습, 미국 요리, 민속 등의 고유한 사회적, 문화적 특징을 갖춘 나라가 되기 전 오랫동안 발전되어 왔다. 오늘날 미국은 초기 기독교 문화의 전통에서 역사적으로 다른 수많은 국가로부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민족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지니게 된 국가가 되었다.

3. 요리[편집]

미국 요리의 역사는 대륙 전역에 걸쳐 농경과 사냥이 혼합된 식단을 가졌던 미국 원주민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 시대에는 신대륙과 구대륙의 조리법이 혼합되었으며, 새로운 작물과 가축이 도입되었다. 19세기 초의 요리는 주로 농경 인구가 자신의 땅에서 재배하거나 사냥하거나 기를 수 있는 것들에 기반했다. 이민자의 유입이 증가하고 도시 생활로 이동함에 따라 19세기 후반 미국 음식은 더욱 다양해졌다. 20세기는 새로운 기술, 세계 대전, 음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 그리고 지속적인 이민이 결합하여 광범위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면서 요리의 혁명을 맞이했다. 이는 오늘날 미국 전역의 풍부하고 다양한 요리를 가능하게 했다. 20세기 자동차의 보급은 드라이브인 및 드라이브스루 레스토랑의 형태로 미국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요리에는 밀크셰이크, 바비큐, 그리고 다양한 튀김 음식이 포함된다. 많은 전형적인 미국 음식들은 원래 다른 요리 전통에서 유래한 음식을 독특하게 재해석한 것인데, 햄버거, 피자, 핫도그, 텍스멕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역 요리로는 연안 주들의 다양한 생선 요리, 검보, 치즈스테이크 등이 있다. 미국 요리에는 추수감사절 만찬이나 크리스마스 만찬의 칠면조와 같이 명절에 먹는 특정한 음식들이 있다. 현대 미국 요리는 패스트 푸드뿐만 아니라 종종 이국적인 포장 음식에도 중점을 둔다. 또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셀러브리티 셰프, 소셜 미디어, 그리고 미식가 문화와 관련된 활기찬 요리 문화가 존재한다.

4. 문학[편집]

콜럼버스가 1492년에 미대륙에 상륙한 이후에도, 영국은 오랫동안 이 신대륙에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1607년에 처음으로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버지니아 회사는 이주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했다. 신대륙 식민지에서 담배 재배가 성공하자 점차 대농장주 중심의 경작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훗날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남부 특유의 봉건적 사회제도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뉴잉글랜드에서는 1620년 102명의 "필그림 파더스"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매사추세츠주의 해안에 상륙하여 플리머스 식민지를 개척했다. 또 1630년에는 윈스럽의 지도아래 보스턴을 중심으로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를 만들었다. 얼마후 이 식민지와 기존에 건설한 플리머스 식민지가 하나로 통합되었고, 이 통합지역의 거주민들은 존 캘빈의 교리를 신앙의 기초로 하는 청교도 사회를 건설해 갔다. 그들은 또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하버드 대학을 설립했고 출판물의 인쇄를 위해 인쇄소를 개설했다.

그러나 이들 이주민의 대다수는 종교, 경제상의 이유로 신천지를 찾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로서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개척과 생활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본국의 문학을 바로 미대륙이라는 새로운 토양에 이식시킬 수 없었다. 또한 이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선주 민족에 남아있는 시가에 귀를 기울일 여유도 없었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미국문학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주로 기록문학, 종교문학 등이 보고문서, 역사서, 설교집, 자서전, 전기문, 일기 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 문학의 최초의 등장으로 인정되는 작품은 영국탐험가 존 스미스|스미스(1579-1631)가 제임스타운 식민지의 건설을 기록한 《버지니아의 사정》(A True Relation of Virginia (1608))인데, 역사서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한편,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총독 윈스럽의 일기("Journal")와 편지들, 플리머스 식민지 총독 브래드퍼드(1590-1657)의 《플리머스 식민지에 대해》 등도 귀중한 기록 문학으로 인정되고 있다.

종교 문학에 있어서는, 당대의 청교도 계관시인으로 불리던 위글워스(M. Wiggleworth, 1631-1703)의 시 《심판의 날》이 특히 유명하며, 64년간 목사직에서 종사했던 매더(1663-1728)의 "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업" (Magnalia Christ Americana (1702))는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이신론의 공세에 밀려서 세가 약해졌던 청교도주의는 에드워즈(1703-1758)에 의해서 놀라운 종교부흥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청교도주의를 체계화한 그의 저술들은 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에드워즈와 대조적으로 당대 최고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프랭클린(1706-1790)은 철저한 합리주의자로서 미국사회의 각계 각층에서 활발하고 눈부신 활동을 하여 오늘날 미국식 직업윤리와 물질문명의 기반적 철학과 사상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자서전" (Autobiography)은 신학중심의 시대에서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로 미국사회가 전환되어가는 시점이었던 당대의 정신사를 보여주고 있다.

독립 전쟁이 끝나자, 해밀턴(1755 혹은 1757 - 1804), 매디슨(1751 - 1836)과 존 제이(1745 - 1829)의 《더 페더럴리스트》(The Federalist)라는 수필은 미국 정부의 조직과 공화제 가치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인 논쟁을 저술 하였다. 제퍼슨(1743 - 1826)이 쓴 《미국독립선언문》, 그리고 미국 헌법에 대한 영향력, 그 자서전 《버지니아주에 관한 주석》(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과 많은 편지 등 초기 미국의 가장 재능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그 평가를 굳히고 있다.

에임스(1758 - 1808), 오티스(1725 - 1783)와 헨리(1736 - 1799)도 그 정치적 저작물이나 연설에 중점을 두었다.

새롭게 탄생한 최고 국가의 초기 문학 대다수는 기존의 문학 장르에서 미국의 소리를 직접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경향은 소설에 반영되었다. 유럽 형식과 스타일이 미국에 옮겨오면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문학 분야는 포스트 모더니즘이지만, 그 호칭은 다양한 이견이 있다.

오늘날 현대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카버(1938 - 1988), 로스(1933 -), 매카시(1933 -) 등이 있다. 예를 들어 William S. Burroughs (1914-1997)는 과학 소설, 탐정 소설, 서양을 사용한다. Giannina Braschi (1953-) 는시, 광고, 뮤지컬, 선언 및 드라마를 믹스한다.

5. 영화[편집]

→ 자세한 내용은 미국/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축구[편집]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멕시코, 코스타리카와 함께 북중미를 대표로 하는 강자다.

전통적으로 골키퍼 포지션이 강한 국가로서 미국 축구 대표팀의 성적이 평범했던 시절에도 팀 하워드, 브래드 프리델, 케이시 켈러, 마커스 하너먼, 맷 터너, 잭 스테픈, 에단 호바스, 가브리엘 슬로니나, 브래드 구잔 등등 많은 골키퍼들이 빅리그에서 활약했다.

대한민국, 모로코와 함께 비유럽 및 비남미권에서 월드컵 4강 이상 진출한 단 셋밖에 없는 나라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선 북중미 팀으로 1986 멕시코 월드컵 멕시코의 8강(6위) 이후 16년 만에 미국이 8강에 진출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자국 개최 대회인 1994년 월드컵을 포함하여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7회 연속으로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 더욱이 21세기 들어서 미국이 속한 조는 전부 예측불허의 흐름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를 제대로 꼬이게 만들 수 있는 다크호스로 꼽힌다.

미국 축구는 미주 지역 전체를 놓고 본다면 월드컵 우승팀들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보다는 위상이 낮지만, 파라과이, 칠레, 콜롬비아 등과 그 위상이 비슷하다. 그리고 1995 코파 아메리카[45]에서 아르헨티나를 3:0으로 격파, 1998 북중미 골드컵에 출전한 브라질을 1:0으로 격파한 적이 있으며, 미주 전체 합동 코파 아메리카 100주년 미국 대회에서 브라질과 우루과이가 8강 진출에 실패한 가운데 미국은 대회 4위를 기록하였다. 초대 월드컵 3위에 오른 것과 1950 브라질 월드컵 13강 조별리그에서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잉글랜드를 격파, 2002 한일 월드컵 8강(8위),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에게 1:1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였다. 월드컵 이외에도 독일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하기도 하였다.

또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미국이 유로 2008 챔피언 스페인을 2:0으로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해서 브라질에 2:3으로 패했지만 선전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축구가 미국에서의 비중은 낮지만, 절대적인 규모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역대 월드컵 평균 관중 수 1위도 1994 미국 월드컵이고, 2014년 월드컵 중계료가 가장 높았던 곳도 미국의 ESPN이었다.

미국 축구의 이변은 2015년 6월 클린스만의 미국이 독일 홈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독일에게 2-1의 승리를 거둔 사건이다. 당시의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이자 피파랭킹 1위인 독일에게 그것도 독일의 홈구장에서 2-1로 독일을 완파함으로서 미국 축구의 능력을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보여준 경기가 되었다.

2021년에는 멕시코가 미국에게 세 번 연속으로 패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고, B조에 들어가며 잉글랜드-이란-웨일스와 붙게 되며 만만찮은 조에 속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이후 성장시킨 유망주들로 과연 세대 교체에 성공했을지 실패했을지 평가받는 대회가 될 것이다.

2022년 11월 21일 펼쳐진 카타르 월드컵 32강 B조 첫경기에서 전반 36분 터진 라이베리아 대통령 조지 웨아의 아들 티모시 웨아의 골로 웨일스를 1:0으로 앞서고 있다가 가레스 베일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해 1:1로 비겼으며 이후 이어진 잉글랜드전에서 오히려 경기를 압도하며 잉글랜드와 0:0 무승부를 거두고 마지막 이란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면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뒤 네덜란드에게 패배했다.

2026년 월드컵을 개최함에 따라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지역예선을 면제 받았고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의 친선전에서 우루과이를 무려 5대 1로 격파하는 등 강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폴리식 이후로도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격수쪽으로 모나코에서 포텐이 터진 폴라린 발로건과 PSV에인트호번의 에이스인 리카르도 페피가 있으며, 미들에는 도르트문트에서 좋았었던 조반니 레이나와 25-26시즌 프리미어리그 리즈에서 공미로써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브렌든 애런슨, 리옹에서 주전 수미로 활약중인 태너 테스만이 있다. 수비쪽에는 분데스리가에서 5시즌동안 활약중인 조 스캘리가 있다. 스쿼드 대다수가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으며, 북중미의 강호인 멕시코에게 스쿼드의 질이나 네임 벨류도 이제는 밀리지 않는 수준이되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16강전에서 벨기에한테 4-1로 패해 최종 순위 12위로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7. 성문화[편집]

보통 미국 매체나 세계 최대의 미국 포르노 시장을 통해 많이 가지는 편견으로, 미국은 성적으로 아주 개방적이어서 고교 대학이나 사회에서도 오지(Orgy, 섹스파티)를 일반인들도 자주 즐기고, 20살 전까지 동정이거나 처녀면 너드, 찌질이거나 뭔가 모자란 사람 취급 받는다는 성진국이라는 인터넷글이 많이 떠돈 적이 있다. 다만 이러한 판타지적 여론은 이제 많이 줄었으나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련해서 미국은 음란하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은 주마다 문화가 다르며, 주 내에서도 교외 지역이냐 도시냐에 따라 좀 다르다. 대도시 지역이나 진보적인 지역은 1950~70년대에 걸쳐서 피임약 보급, 낙태합법화 등의 성혁명을 겪으면서 성의식이 개방적으로 변한 데 반해, 농촌이나 남부등 보수적인 지역에서 낙태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등 성혁명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낙태문제가 현재까지도 미국에서도 이슈거리가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 대체로 남부나 중부로 갈수록 보수적이고, 북동부나 서부로 갈수록 개방적이다. 그리고 도시일수록 교외 지역보다는 개방적인 편이다. 그래서 워싱턴주, 캘리포니아 등 서유럽 뺨칠 정도로 성적으로 개방적인 주도 있는 반면, 앨라배마 등 바이블벨트 등지는 대한민국보다도 더 보수적인 주도 있다. 단지 미국이 개인주의여서 남이 터치를 안 하기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으로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이를테면 매춘의 경우 유럽 국가 대부분이 합법이고[14] 물론, 북미에서도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합법이다. 그러나 미국은 네바다 주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성매매가 불법이다. 일반 가정에서도 성 문제는 대체로 쉬쉬하며, 모범생 이미지를 내세우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같은 여자 연예인들은 혼전 순결 서약을 했다고 언플하여 호감을 얻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위의 브리트니 스피어스같은 예시도 어느샌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의 20여 년 전 얘기라서 2020년대 현 시점의 미국을 대표하기엔 꽤 오래된 감이 있다. 당장 위에 예시로 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혼전 순결 서약도 거짓말로 드러난 게 현실이다. 저스틴 팀버레이크랑 10대 시절에 연애하면서 성관계 경험도 있던 그냥 평범하게 잘 노는 이쁘장한 미국 여자애였던 것이다.

한국만 해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성 의식(90년대만 해도 동성동본 혼인마저 완전 금지였던, 성적으로 이슬람권보다 좀 더 나은 수준의 국가가 한국이었다.)과 지금이 상당히 다른 편인데 미국도 그 사이에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의 스마트폰 보급 및 소셜미디어의 대중화를 거치면서 노이즈 마케팅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여러 인플루언서들의 영향으로 노출에 대한 의식이나 성적 자유도는 확실히 높아져갔다.

결혼을 본다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빠른 시기에 하는 편이며 남자나 여자 모두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는 경우가 꽤 흔하다. 물론 정치인이나 연예인, 기업인 같은 유명 인사들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결혼을 뒤늦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인같은 경우에는 한국에 비해 결혼 시기가 빠른 편이다. 그러나 마냥 빠른 것은 아니고, 미국도 매년 초혼연령이 늦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대체로 한국의 2000년대 수준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진지한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은 이 시기에 커플들이 이미 서서히 결혼할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에 비해 모든 조건을 다 완벽하게 갖추고 결혼해야 한다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옅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덜한 편이다. 정치에 입문하는 시기는 25세라서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지만 결혼 시기는 빠른 축에 들어간다.

한편 2022년 6월 미국 대법원이 낙태 자유화를 판결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지함으로서 각 주별로 낙태 금지를 명문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판결로 인해 미국 전역에서 상당한 논란이 빚어졌다#

8.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