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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왕국
[1]المملكة العربية السعودية
Kingdom of Saudi Arabia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장.png
국기
국장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국가 정보
국명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독립
1927년 5월 20일
언어
아랍어
면적
2억 1,496만 9천㏊ (12위) [2023년]
인구
3,694만 7,025명 (40위) [2023년]
국교
수니파 이슬람교
상징
국기
국가
군주를 찬양하라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سعودي
국화
대추야자
정치
정치체제
단일국가, 전제군주제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외교
UN
1945년 가입
아랍 연맹
1945년 가입
이슬람 협력기구
1969년 가입
주한 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26길 37
국가 코드
682, SAU, SA
국제 전화
+966
여행 경보
사우디-예멘 국경 인근 180km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여행자제
1. 개요2. 상세3. 지리4. 기후5. 행정 구역6. 정치7. 왕실8. 인문환경
8.1. 언어8.2. 외국인8.3. 인권8.4. 종교
9. 스포츠10.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아랍어: ٱلْمَمْلَكَة ٱلْعَرَبِيَّة ٱلسُّعُوْدِيَّة, 영어: Kingdom of Saudi Arabia, KSA), 약칭 사우디아라비아(아랍어: ٱلسُّعُوْدِيَّة)는 중동 및 서아시아에 있는 전제군주국이다. 2,207,651 km2 에 달하는 영토를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랍국가이며,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전체 아랍권 국가들 중에서는 알제리에 이어 두번째로 면적이 넓은 국가이기도 하다. 

2. 상세[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북쪽으로는 요르단과 이라크가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쿠웨이트가 있고, 동쪽으로는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가 있으며 남동쪽에는 오만, 남쪽에는 예멘이 있다. 다만 이집트와 이스라엘과는 아카바 만으로 인하여 서로 분리되어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와 페르시아 만에 둘다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 대부분은 아라비아 사막과 산맥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8년 10월에 조사된 결과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중동에서는 가장 거대하고 세계에서도 18위권에 드는 규모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도 가장 젊은 국가들 중 하나인데, 3,340만 명에 달하는 인구 중 50%에 달하는 사람들이 25살 이하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세워진 곳은 고대 문명이 번성한 유서깊은 지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대 역사는 인류 역사의 여명기로 거슬러올라가며, 세계 제 2의 종교인 이슬람교도 바로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지역에서 7세기 초에 생겨났다. 이 때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의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통일하고 동일한 이슬람 공동체로 묶었던 것이다. 무함마드가 632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후계자들은 급격하게 영토를 늘려나갔고 이슬람교를 전 세계로 포교하기 시작하였다. 전성기 때에는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에 닿았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서 발흥한 아랍 왕조들에는 정통 칼리파조, 우마이야 칼리파조, 아바스 칼리파조, 파티마 칼리파조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무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이슬람 왕조들이 이 곳에서 번성하였다.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는 크게 하자즈, 네지드, 동부 아라비아, 남부 아라비아, 총 이 4개의 지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1932년에 이븐 사우드에 의하여 건국되었는데, 그는 1902년부터 원정을 펼쳐 4개의 지방들을 하나의 국가로 묶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도 절대적인 전제군주정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사우드 가문에 의하여 국왕직이 세습되는 구조이다. 극보수적인 와하비즘과 수니파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류 문화를 장악하고 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가지고 이 사상을 전세계로 퍼뜨리고 있는 실정이다.[6] 사우디아라비아는 종종 ‘2개의 신성한 모스크의 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메카에 있는 알 마스지드 알하람과 메디나에 있는 알 마스지드 안 나바위, 이 2개의 사원이 이슬람교 전체에서 가장 신성한 모스크들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다.

1938년 3월 3일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이후 연이어 유전들이 발견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이래 세계에서 2번째로 석유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로 떠올랐고,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과 6번째로 거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 발견이 줄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자국경제에 못 따라간 석유생산량에 의하여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은행으로부터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었고, 인간개발지수도 높은 편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아랍 국가로는 유일하게 G20에 가입한 나라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 내전 개입, 이슬람 테러리즘 후원 의혹, 특히 심각한 여성 인권 침해와 시민권 탄압, 사형제의 남용, 무신론자와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국가적 탄압, 국가적인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샤리아법의 엄격한 적용 등으로 전세계적인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GDP의 8%를 군대에 쏟아부으며, 이는 오만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양의 자금을 국방비에 투자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무기 수입국이었으며, 중동으로 수출하는 미국 무기들 중 절반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입했다. BICC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28번째로 군사화된 나라이며 군장의 질도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에서 최고로 우수한 편에 손꼽힌다고 전한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예멘 내전 간섭 등의 행동으로 인하여 국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수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으며, 특히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당한 이후 그 목소리는 더더욱 커지고 있다.

3. 지리[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인 아라비아 반도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위 16도에서 북위 33도에 걸쳐져 있으며, 동경 34도에서 동경 56도에 뻗어 있다. 오만 및 아랍에미리트와의 국경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전체적인 면적은 알 수 없다. 월드 팩트북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면적을 2,149,690 km2 (830,000 mi2)로 추정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국가라고 규정했다. 지질학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바이판에서 가장 큰 국가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리는 아라비아 사막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준사막과 관목지로 구성되어 있다. 몇몇 산맥과 고원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존재하지만,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는 연결된 수많은 사막들로 구성된 땅이며 국가 남동부에 위치한 룹알할리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의 일부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몇몇 호수가 존재하지만, 영구적인 수자원은 없으며 수많은 와디가 존재한다. 비옥한 지역은 곳곳에 산재한 분지, 오아시스, 그리고 와디들에서 발견된다. 주요 지형학적 특징은 중앙의 고원으로 홍해에서 급격히 상승해 네지드쪽으로 점차 줄어드는 형상이고, 페르시아만 쪽으로 뻗어 있다. 홍해 해안 지역에서는 좁은 해안 평야가 있으며, 이 지역은 티하마로도 불린다. 아시르 주의 남서 지방은 산악지대이고 자발 사와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아시르 주 일대를 제외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막 기후로, 낮에 매우 덥고, 밤에는 급격히 온도가 떨어진다. 여름의 평균 기온은 45도이지만, 가장 높은 경우에는 54도까지 올라간다. 겨울의 경우 온도가 0도까지 하락한다. 평균적인 강수량도 적은 편이다. 아시르 지역의 경우 인도양의 몬순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몬순이 오는 10월부터 3월까지 평균 300mm로 비가 오며 1년 전체 강수량의 60%를 차지한다.

4. 기후[편집]

대부분의 지역은 건조 기후로 강수량이 매우 적은 사막 지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추운 달은 12~1월로, 이때의 날씨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유사하다. 겨울철의 경우 모래바람이 불지 않아 공기가 맑고 비가 오는 날이 많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파르와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통 겨울 외투가 반드시 필요하다.

계절에 무관하게 햇살이 강한 날이 많아, 선글라스·선크림이 필수적이다.

가장 더운 달은 6~7월이다. 낮의 온도는 보통 50도까지 올라가며, 햇빛으로부터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100미터도 걸어가기 힘든 기후이다. 이때 밤의 온도는 약 27도, 일교차는 보통 16도 이상이다.

5. 행정 구역[편집]

수도는 리야드이다.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는 메카, 메디나, 항구 도시인 지다 등의 주요 도시가 존재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총 13개의 '마나티크 이다리야'(مناطق إدارية)로 나누어져 있는데, 마나티크 이다리야는 행정 구역에서 '도'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13개의 마나티크 이다리야는 118개의 '무하파잣'(محافظات)으로 나뉜다. 무하파잣은 행정 구역에서 주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 118개의 무하파잣들에는 13개의 주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주도들은 시장을 총책임자로 하는 다른 무하파잣들과는 다르며, 법적으로도 유별한 대우를 받는다. 이 무하파잣들은 또 하위 행정 구역인 '마라키즈'(مراكز)로 나누어진다.

6. 정치[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이자 현대에 몇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전제군주정이다. 다만 1992년에 왕실 칙령으로 선포된 기본법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 국왕도 샤리아법과 쿠란은 필수적으로 지켜야만 하며, 쿠란과 무함마드의 어록을 담은 경전인 하디스가 국가의 헌법으로 공포되었다. 그 어떠한 정치적인 단체나 선거도 왕실의 허가 없이는 실행이 불가하며, 해외 평론가들은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전체주의적 독재주의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2012년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총 167개국들 중 5번째로 민주주의 지수가 낮은 국가로 평하기도 하였으며, 프리덤 하우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최하점인 7.0점, 즉 '자유롭지 않음'이라는 평가를 주었다.

전국적인 선거와 정당의 부재 탓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판에는 크게 왕실과 그 나머지 시민들, 이 두 세력만이 존재한다. 다만 사우드 왕가 이외의 인사들에게는 정치적인 참여권이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정무의 대부분은 사우드 왕가의 일원들이 토착 셰흐들이나 경제적 거물들과 밀실에서 협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며,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에도 보도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관습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모든 성년이 된 남성들이 국왕에게 탄원을 넣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옛적 부족 시대였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관습인데, 이처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전히 부족적인 색채가 정부 기관들에게까지 매우 강하게 남아있다. 부족적인 구분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매우 강한 편이고, 사우드 왕가 이외의 정치적 인사들도 대부분 유력 토착 부족장 가문들의 후예이며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져 국가적인 대소사를 결정하는 편이 많으며 지역적으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 관계에 대하여 비판이 많다 보니, 1990년대에 국정자문회의(Majlis Ashura)를 설립하고 정치 참여 계층의 폭을 넓히려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 사우드 왕가의 통치에 반발하는 세력들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이슬람 수니파 세력의 실천주의 계열 세력들, 둘째는 특히 동부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이슬람 시아파 세력, 세번째는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평론가들, 네번째는 분리주의와 독립을 추구하는 지방의 토착 셰흐들이다. 이 네 세력들 가운데에서 수니파의 실천주의 계열 세력들이 가장 정부가 온 힘을 쏟아 억누르는 대상들이며 그 목소리도 가장 크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정부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시위들, 심지어 이 시위들이 평화적이라고 하더라도 폭력이나 공권력을 사용하여 진압하는 경우가 많다.

7. 왕실[편집]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사우디아리비아의 국가원수이자 통치자이다. 국왕은 절대군주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은 물론 정무(政務)에까지 개입한다. 또한, 국왕은 사우디아라비아 군의 최고통수권자이기도 하다. 

8. 인문환경[편집]

8.1. 언어[편집]

아랍어가 공용어다. 아랍어 구사자들은 크게 3부류로 나뉘는데, 대략 6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헤자지 아랍어를 사용하며, 8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즈디 아랍어를,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페르시아 만 아랍어를 사용한다. 대략 5만 명의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남서 지방의 고유어인 파이피어를 사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수화가 공식적인 수화 언어이다. 그 외에도 리야드, 지다 등의 도시에서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랍어를 쓰지 않더라도,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 영어와 아랍어를 제외하고 타갈로그어, 로힝야어, 이집트 아랍어 등도 매우 많이 이용되고 있다.

8.2. 외국인[편집]

사우디아라비아에 10년 이상 거주한 무슬림들은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다만 팔레스타인 국적의 경우에는 사우디 자국민들과 결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민권을 신청할 수 없는데, 이는 아랍 연맹의 회원국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국적을 주는 것을 거부하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51년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도 서명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가 늘어나는 와중에 석유 수출은 갈수록 정체된 상황을 보이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점차 '사우디화' 정책을 펼쳐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국민들에게 이를 배분해주고 싶어한다. 1990년과 1991년에 정부는 80만 명에 달하는 예멘인들을 쫓아냈고, 불법 예멘인 이민자들을 막기 위하여 장벽을 세우고 국경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2013년 11월에는 수 천명에 달하는 불법 에티오피아 국적 체류자들을 추방하였고, 국제 인권 기구 등은 이같은 결정을 비판하였다. 2013년부터 대략 50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들, 대부분이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예멘 국적의 사람들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8.3. 인권[편집]

엠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프리덤하우스와 같은 각종 인권 관련 국제기구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과 인권 탄압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법정에는 배심원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소수의 관련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0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처음으로 형사소송법이 도입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는데, 이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의 기본적인 권리들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이마저도 판사들에게 무시되는 경우가 잦다고 밝혔다. 형법으로 체포된 자들은 자신이 체포된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고 만일 죄를 자백하지 않을 시 고문이나 신체적인 압박도 당할 수 있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판사들은 이미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려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중간에 증거나 물증이 있다고 하여도 이를 근거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가 힘들다. 대다수의 재판들은 비공개로 처리된다. 이같은 불공정한 재판제도는 외국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닌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영국 국적의 연금수령자이자 암환자, 그리고 74세의 고령이었던 카를 안드레가 집에서 술을 담갔다는 이유로 360대의 태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그는 영국 정부의 항의로 인하여 풀려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히 세계 최악의 인권 국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권문제들로는 지나친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심각한 여성 인권 탄압, 사형제로 다스릴 정도로 억누르고 있는 동성애 문제, 종교적인 차별, 종교경찰들의 지나친 권한, 종교의 자유와 포교의 자유의 제한 등 여러가지들이 있다. 1996년과 2000년 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4개의 UN인권 관련 협약에 서명하였고, 국가 인권 위원회를 2004년에 창설하였다. 허나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부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이유로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실제 권한은 매우 약하기에 별다른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심지어 UN의 세계인권선언에 동참하지 않은 정말 몇 안되는 나라들 중 하나인데, 그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국가이고, 서구의 인권 같은 가치들은 거의 잘 맞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들고 있다.

인권 탄압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12년에 아랍의 봄을 맞아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17세 소년 알리 무함마드 바키르 알 니므르는 2014년 5월에 체포당했는데, 공개적으로 참수형을 당했고 그 시체는 십자가에 끌려 올라갔다. 2013년에 정부는 수 천명에 달하는 외국인들을 국외로 추방하였는데, 주로 비자가 만료되었거나 불법으로 거주한 자들이었다. 인권 기구들에 의하면 이러한 외국인들이 고용주들이나 국민들에 의하여 고문당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러 오는 것을 꺼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 서비스의 질 자체를 상당히 낮추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는데, 자국민들은 정부의 현금 지원 등에 익숙해져 있기에 막노동과 같은 블루 칼라 일자리들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8.4. 종교[편집]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불리거나 혹은 종교의 자유가 다른 국가보다 덜 보장되는 것으로 악명높은 아랍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국민의 절대 다수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국가적으로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국민들이 무슬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알려진 다른 아랍 국가 중에서도 그러듯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또한 사우디 자국민을 제외한 외국인이 국가에서 지정한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를 개인적으로 믿을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슬람교의 예배장소인 모스크를 제외한 교회와 절, 사원 등의 종교 시설의 설립은 법으로 막고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태어난 직후부터 남녀가 부동석일 정도로 남녀구별이 엄격하여, 초등학교부터 남녀 공학 학교가 단 하나도 없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 교과목에도 꾸란이 포함되어 있다. 강간과 성폭력은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로 간주되며, 실제로 사우디 법원은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을 참수한 바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지만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9. 스포츠[편집]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다.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팀들 가운데 하나이며, 6번이나 AFC 결승전까지 진출하였으나 그중 3번이나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월드컵에도 1994년에서도 두각을 발휘하였는데, 1994년 피파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벨기에와 모로코 등을 꺾었으나 16강전에서 스웨덴에게 패배하였다. 199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된 킹 파흐드컵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으나, 다만 전통적인 축구 강국인 아르헨티나에게 1-3으로 패배하였다. 그 외에도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농구 등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명한데, 1999년에 농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 챔피언십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스포츠 경기인 낙타 경주와 경마도 매우 인기가 많다. 리야드에 있는 경기장에는 주로 겨울에 경기를 개최한다. 특히 낙타 경주는 1974년부터 왕실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전역에서 이 경기에 참가하기 위하여 선수와 낙타들이 올라온다. 그 외에도 매사냥과 같은 전통적 스포츠들이 여전히 인기가 있다.

여성 스포츠는 보수적인 이슬람 세력들로 인하여 남성 스포츠에 비하여 훨씬 뒤떨어져 있다. 다만 최근들어서는 이같은 규제들이 훨씬 완화되고 있으나, 2018년까지 여성들은 경기장 출입도 금지되었다. 최근들어서는 출입이 허가되었으나 여전히 좌석이 남성들과 분리되어 있고, 주요 도시의 3개 경기장에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현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수많은 새로운 종목의 스포츠들을 국내에 유치하거나 스포츠 스타들을 영입해 공연을 펼치도록 하는데, 이러한 정책은 '스포츠워싱', 즉 예멘 내전 간섭과 인권 탄압으로 악화된 국가 이미지를 스포츠를 이용하여 만회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0.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
[1] al-Mamlakah al-ʿArabīyah as-Saʿūdīyah[2023년] 2.1 2.2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