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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생가
송재서재필생가
莊陵
파일:송재서재필생가 전경.jpg
▲ 송재서재필생가 전경
국가
조성일
2003년 (23주년)[1]
거주자
소유단체
외가 문중 측 개인 90%, 서재필기념사업회 10%
관리단체
영월군
위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문덕면 가내길 18-35
1. 개요2. 개요3. 상세4. 법원의 경매 절차

1. 개요[편집]

1. 개요2. 개요3. 상세4. 법원의 경매 절차

2. 개요[편집]

서재필의 생가를 서술하는 문서이다.

3. 상세[편집]

송재서재필생가는 서재필의 외가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서재필은 개화사상의 영향을 받아 1884년 갑신정변에 적극 가담하였으나, 정변이 3일 만에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895년 귀국하여 이듬해 4월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 설립을 주도하며 민권 신장에 힘썼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갈등을 빚게 되자 1898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주 동포들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 1925년 범태평양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서재필이 태어난 집은 6.25 전쟁 때 소실되었는데 2003년 복원하여 그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은 전라남도 보성군의 북부 지역으로 천년고찰의 대원사와 향토작가 전시관인 백민 미술관 승주 고인돌공원과 연계되어 교육문화코스로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4. 법원의 경매 절차[편집]

2026년 6월 11일 전남 보성군에 따르면 보성군 문덕면 가내마을에 있는 서재필 박사의 생가 건물과 토지에 대한 강제경매 절차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진행 중이다.

경매 개시 시점은 2026년 9월에서 10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가의 10%는 서재필기념사업회, 90%는 서 박사의 외가 문중 측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데 개인 소유분이 경매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로 지분이 넘어가면 사유재산 문제로 독립운동 사적지의 관리·보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생가는 2003년 인근에 완공한 서재필 기념공원의 부속 건물로 국가보훈부에서 지정한 독립운동 현충 시설이다.

한국전쟁 때 일부 소실됐다가 기념공원 조성 시기 안채, 별당, 아래채 등이 함께 복원됐다.

보성군은 문중, 서재필기념사업회, 전남도 등과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보성군 관계자는 "해당 기관·단체들과 원만하게 낙찰받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동안 경매절차를 중지 또는 유예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1] 원래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됐으나 예산을 들여 2003년 가은당과 안채, 별당, 아래채 등 주요 건물을 복원했다.[2] 서재필이 출생 후 7세까지 성장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