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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논란 및 사건 사고(r4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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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문서: 안상호
1. 개요2. 대정실업친목회 참여3. '내선일체' 홍보에 활용된 가족

1. 개요[편집]

안상호논란사건 사고를 정리하는 문서다.

2. 대정실업친목회 참여[편집]

안상호에 대한 친일 논란에서 가장 확실하게 거론되는 부분은 대정실업친목회 활동이다.

1916년 결성된 대정실업친목회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내선융화를 내세웠던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된다. 안상호는 1916년 11월 선출된 간부진에서 21명의 평의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따라서 단순히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친일 논란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친일 성격의 사회단체에서 실제 간부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논란의 핵심이다.

3. '내선일체' 홍보에 활용된 가족[편집]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1918년 12월 10일 『매일신보』 기사다.

당시 안상호의 가족은 일본인과 조선인의 동화가 이루어진 사례로 소개됐다. 기사에서 안상호는 자신의 가정생활에 대해 조선 옷을 입지 않고 일본식 생활을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며, 이를 일제가 '내선일체'의 모범적인 사례로 선전했다.

특히 당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안상호의 가정이 식민통치의 동화정책을 홍보하는 데 활용됐다는 점은 그의 친일 논란을 더욱 키우는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