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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3. 바이에른 뮌헨4. 미국 축구 국가 대표팀5. 헤르타 BSC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7.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현역 은퇴 이후, 클린스만은 상업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미국의 스포츠 마케팅 부회장이 되었고, 로스앤젤레스 갤럭시의 일원으로 메이저 리그 사커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2.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004년 7월 26일, 그는 그의 국가대표팀 동료 스트라이커의 국가대표팀 감독직 바통을 받기 위해 독일로 귀국하였다.

클린스만은 감독으로 있어 야심찬 프로그램을 시행에 옮겼다. 그는 동료 스트라이커였던 올리버 비어호프를 코칭스태프로 영입하여 공공의 관계를 개선시키려 노력하였고, 기존의 코칭방식으로부터 탈피하려 노력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는 UEFA 유로 2004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노쇠한 스쿼드를 갈아엎었고, 젊은 선수를 많이 차출시켰다. 2006년 FIFA 월드컵이 더욱 다가올수록, 클린스만은 독일 팬들과 언론들로부터 이탈리아에 1-4로 대패하는등 형편없는 성적에 대해 질타를 받았다.

클린스만은 미국에서 독일로 통근하는 것에 대해 비난이 되었고, 이는 빌트 (Bild) 지로부터 질타를 받도록 하였다. 클린스만은 전통적으로 빌트지가 독일 국가대표팀에 대한 독점적인 이권을 가져간 것에 대해 탈피하려 하였다. 빌트지는 기존에 경기전 선발 라인업 정보와 팀의 실시간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은 일부 수비축구를 무시한다는 평론가의 외면을 받았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주가 높은 선수가 아니라 실력에 따라 선발할 것이며, 젊은 스쿼드를 주력으로 채울 것이라 밝혔다.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그는 실력과는 무관하게 골키퍼를 로테이션으로 하였고, 그에 따라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이자 기존의 주전골키퍼인 올리버 칸의 비난을 샀다. 2006년 4월 7일, 클린스만은 최종적으로 칸을 벤치멤버로 내리고 아스널의 옌스 레만을 월드컵 기간동안 주전골키퍼로 기용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옌스 레만은 아스널을 이끌고 UEFA 챔피언스리그 2005-06의 결승전까지 올라가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패하였는데, 그는 16강전에서 결승전에 퇴장하기까지 단 한골도 실점하지 않은 것이 요인이 되었다.

2006년 FIFA 월드컵, 클린스만 팀의 활약은 비평가를 침묵시켰다. 독일은 코스타리카, 폴란드, 에콰도르와의 A조 조별예선 세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어 가뿐하게 16강에 올라갔다. 16강 상대는 스웨덴으로 독일은 전반전 2-0 리드를 잘 지켜 8강에 진출하였다. 독일은 8강에서 아르헨티나와 연장전까지 1-1의 팽팽한 동률을 지키다 승부차기에서 4-2 승리를 거두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이 경기의 80분에 대회 5호골을 득점하여 1-0 리드를 가져갔던 아르헨티나의 준결승행을 무위로 만들었다.

7월 4일, 준결승전에서 독일은 이탈리아와 맞붙어 연장전 막판에 파비오 그로소와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골을 실점하여 0-2로 석패하였다.[22] 경기 종료 후, 클린스만은 그라운드에 좌절한 선수들을 독려하였다. 이후, 독일은 3위 결정전에서 포르투갈에 옌스 레만을 대신하여 올리버 칸을 출전시켰고, 독일은 3-1로 포르투갈을 손쉽게 제압하였다.[23] 이 날의 승리로 다음날 독일 국가대표팀은 베를린에서 대형 카퍼레이드를 벌였고, 클린스만은 국가적인 존경을 받았다.

이후 그를 강하게 비판하던 프란츠 베켄바워는 클린스만이 연임하기를 원하였다. 팬들 사이에서는 공격 축구와 팀정신으로부터 클린스만에 대대적인 지지를 하였다. 팀의 높은 성적은 독일을 다시 축구계 정상의 팀중 하나로 복귀시켰고 국가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클린스만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써의 성공에 대해, 그는 연방 십자가를 수여받았다. 그는 황제의 뜻을 가진 "카이저"로도 불리기 시작하였으며, 축구계의 거물중 하나로 부상하였다.

클린스만은 비록 월드컵에서의 성과로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2006년 7월 11일에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할 것임을 밝혔다. 그 다음날인 2006년 7월 12일, 클린스만의 결정이 독일 축구 협회 (DFB) 에 의해 공식 발표되었다. 클린스만의 사임 이후, 그의 수석코치였던 요아힘 뢰프는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이 되었다.

클린스만은 "나의 소원은 나의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며, 그들과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 2년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은 끝에, 나는 힘을 잃은 듯하고 더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인터뷰하였다.

3. 바이에른 뮌헨[편집]

2008년 7월, 클린스만은 오트마어 히츠펠트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 되었다.

이로써 클린스만이 처음으로 클럽 감독을 맡았다. 그는 훈련 세션과 플레이스타일에 변경을 주었고, 마르틴 바스케스, 닉 테슬로프, 골키핑 코치 발터 융한스, 피트니스 코치 올리버 슈미틀라인, 토마스 빌헬미, 마르셀루 마르틴스, 달시 노르만, 그리고 스포츠 정신학자 필립 라욱스가 코칭스태프로 클린스만과 함께 바이에른에 들어갔다. 클린스만은 새 훈련방식을 활용하고, 바이에른 훈련장을 리모델링하였고, 그리고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를 위한 팀정신을 다듬었다. 그의 지도 하에 바이에른은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의 8강에 올랐으나, 이 시즌의 우승 팀인 바르셀로나에 패해 탈락하였다.

바이에른은 2008-09 시즌의 챔피언스리그에 6승 3무 1패를 기록하였다.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은 5번의 리그 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1위와 3점차로 뒤쳐져 있었고, 클린스만은 클럽 보드진과의 마찰로 경질되었다. 클린스만의 지휘 하에 바이에른은 2008-09 시즌의 분데스리가에서 16승 6무 7패를 기록하였다.

클린스만의 바이에른 임기에 대해, 필리프 람 현 독일 국가대표팀 주장은 그의 자서전 은밀한 차이에 클린스만이 전술은 없고 피트니스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비난하였다. "전술에 대해서는 상세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우리가 어떻게 전술을 구사할지 토론하여야만 했다."라고 자서전에 쓰여 있었다. 람은 그가 자서전에 쓴 것에 대해 나중에 팬들에게 사과하여야만 했다.

4. 미국 축구 국가 대표팀[편집]

2011년 7월 29일, 클린스만은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정되면서 미국의 제 35대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그는 미국 감독 취임 후, 처음 치른 6경기 중 4경기에서 패하였고, 1경기에서 승리, 1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었다. 클린스만의 미국은 2011년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만났던 슬로베니아와의 리턴 매치에서 승리하면서 끝냈다. 미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의 참담한 시작으로 인해, 클린스만은 또다시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안긴 그의 결정과 전술에 대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012년 2월 29일, 미국 국가대표팀은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역사적인 1-0 승리를 기록하였다. 이 승리는 FIFA 월드컵의 4회 챔피언을 상대로 한 첫 승리로, 1934년부터 10경기동안 지속된 이탈리아전 무승 기록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은 제노아의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에서 열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20경기 무패 행진에 마침표를 찍게 하였다. 2012년 8월 15일, 클린스만은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오랜 역사의 라이벌 멕시코를 상대로 역사적인 1-0 승리를 쟁취하였는데, 이 승리는 미국의 멕시코 원정 첫 승리였다. 2012년, 클린스만의 미국 국가대표팀은 역사상 최고 승률을 기록하였다.

2013년, 클린스만의 미국 대표팀은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6팀이 치르는 월드컵 3차 예선전에 임하였고, 미국은 멕시코와 0-0으로 비기면서 이곳에서 역사상 두 번째로 승점을 챙겼다. 2013년 6월 2일, 미국은 독일과 100주년 경기를 치르었는데, 클린스만은 4-3 승리로 이끌며, 미국이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스페인을 이긴 이래 처음으로 상위 두 팀을 상대로 승리를 챙겼다. 7월 28일, 클린스만은 CONCACAF 골드컵 결승전에서 파나마를 1-0으로 꺾고 미국의 5번째 우승을 이끌어냈다.[37] 2013년 9월 10일, 멕시코전에서의 2-0 승리로, 미국은 브라질에서 열리는 2014년 FIFA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2013년 12월 12일, 클린스만은 미국 축구 협회와의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2018년까지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게 되었다.

2014년 5월, 클린스만은 2014년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랜던 도너번을 탈락시키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클린스만은 이 결정에 대해 "감독직을 시작한 이래 [자신의] 가장 어려운 결정" 이었다고 묘사하였으나, 다른 선수를 "[도너번보다] 약간 우위"로 보았을 수도 있었다.

6월 16일, 클린스만의 미국 국가대표팀은 브라질에서 열린 2014년 FIFA 월드컵의 첫 경기인 가나전에서 2-1로 이겼다. 가나는 이전의 두 차례 월드컵에서 미국에 패배를 안겼었다. 6월 22일, 포르투갈과의 2차전에서 미국은 2-1로 막판까지 리드를 잡았으나, 통한의 실점으로 2-2 무승부를 거두었다.[42] 6월 26일, 미국은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0-1로 패하였으나, 16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후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전후반 90분동안 0:0으로 비겼고, 연장 혈투 끝에 2:1로 석패했다. 이경기에서 골키퍼 하워드는 엄청난 선방을 보여줬다.

그러나 브라질 월드컵 이후 골드컵 및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해고되었다.

5. 헤르타 BSC[편집]

2019년 11월 27일, 클린스만은 안테 초비치의 후임으로 헤르타 BSC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0년 2월 11일,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단 10주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헤르타 이사회 임원직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헤르타의 투자자 랄스 빈트호르스트가 그의 퇴진 방식이 "용납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결국 이사회 임원직에 남지 못했다.

6.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023년 2월 27일, 2번째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파울루 벤투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4강까지 이끌다가 요르단에게 2:0 충격패를 당하면서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했다.

7.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