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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 제국
大だい日にっ本ぽん帝てい國 | Empire of Japan
파일:일본 로고.jpg
파일:일본 국장.png
국기
국장
기본 정보
수도
도쿄
면적
687,647 km²
언어
일본어
국교
국가신토
정치
천황
메이지 천황 (1868년~1912년)
다이쇼 천황 (1912년~1926년)
쇼와 천황 (1926년~1947년)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1885년~1888년)
고노에 후미마로 (1937년~1939년)
도조 히데키 (1941년~1944년)
요시다 시게루 (1946년~1947년)
입법부
제국의회
1. 개요2. 상세3. 국호4. 일본 제국의 수립5. 일본 제국의 해체6. 침략7. 본 문서 정보

1. 개요[편집]

대일본제국 줄여서 일본혹은 일제는 1868년의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에 성립되어 1947년 일본국 헌법이 시행될 때까지 일본 열도, 한반도, 타이완섬, 사할린 등지에 존속했던 국가다.

2. 상세[편집]

일본 제국은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의 기치를 내걸고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산업화와 군사화를 거쳤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빠른 속도로 탈바꿈하며 강대국으로 떠올랐고, 청일 전쟁, 의화단의 난, 러일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국을 제치고 거대한 식민 제국을 경영하였다. 허나 1920년대에 대공황의 바람이 몰아닥치자 일본 내부에서도 군국주의, 민족주의, 전체주의의 광풍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추축국에 가담하였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광대한 영토를 식민지화하며 위안부 강제동원, 난징대학살 등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일본군은 2차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초기에는 나름 성과를 올렸으나, 1942년부터는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를 겪으며 전력이 크게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일본은 점차 자신들의 태평양 도서 지방들을 점점 잃어나가기 시작하였고, 이오지마와 오키나와를 잃으면서 본토마저도 미군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버렸다. 일본이 본토 사수 작전인 케츠고 작전을 계획하자 미군은 대대적인 상륙 작전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소련이 영토 확장을 위해 8월 9일에 만주를 침공하며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버티지 못하고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게 된다. 1945년 9월 2일 시게미쓰 마모루 당시 외무대신이 포츠담 선언에 서명하면서 연합국들의 관리체제에 들어갔으며, 개헌 절차를 거쳐 일본국 헌법이 제정됨으로써 체제가 붕괴되었다.

3. 국호[편집]

정식 국호인 “대일본제국”은 1889년 2월 11일에 발포된 “일본 제국 헌법”에서 “대일본제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에 유래한다. 영어로는 ‘The Empire of Japan’(직역하면 ‘일본 제국’)을 사용했으며 ‘Great Japan’(직역하면 ‘대일본’)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제국 또는 황국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당초 일본 제국 정부는 국호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고 법률이나 공문서 등에서 일본, 일본국, 일본제국, 대일본국 등으로 표기했지만 1936년 일본 외무성은 외교 문서에 사용되는 자국의 국명 표기를 “대일본제국”으로 통일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뒤에도 일본은 “대일본제국”이라는 호칭을 고집하였지만 1946년 2월 13일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일본 제국 헌법 개정 초안을 제시한 뒤부터 헌법 초안에서의 국명은 ‘일본국’이 되었다.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된 일본국 헌법에서는 '주권 재민'을 명시했으므로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4. 일본 제국의 수립[편집]

1833년부터 1839년까지 이어진 덴포의 기근을 거치면서 신뢰를 잃은 막부는 조슈, 사쓰마 등지 출신의 하급 무사들이 개혁을 추진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같은 시기 중국으로의 진출을 위해 태평양의 중간 기착지를 필요로 했던 미국은 1853년 매슈 페리 동인도 함대 사령관을 제독으로 일본에 파견해 개방을 강요하였다. 결국 1854년 '미일 화친 조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막부는 쇄국 체제를 풀고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결국 이에 대한 조슈와 사쓰마를 비롯한 여러 번들의 막부에 대한 공격으로 인하여 막부의 권위가 붕괴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 하급 무사들은 최종적으로 막부 자체를 없앨 것을 주장하며 '도바쿠'(討幕,토막) 운동을 전개하였다. 1866년에는 도사 출신의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사쓰마와 조슈 간의 비밀 군사 동맹이 성립하고, 막부에 우호적인 고메이 천황의 뒤를 이어 도바쿠 세력에 의해 메이지 천황이 즉위하면서 막부를 크게 압박하자 결국 1867년 10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모든 권력을 일본 천황에게 되돌리게 되며, 메이지 일왕은 같은 해 12월 9일 '친정'을 선포한다.

5. 일본 제국의 해체[편집]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표방하며 처음에 말레이 반도, 버마와 태국,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필리핀 등을 점령하는 등 연합군에게 타격을 가했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습격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된 전쟁은 결국 전세가 역전되어 해군이 전멸하고 오키나와섬까지 연합군에 점령됨으로써 전쟁의 막판으로 몰렸다. 하지만 일본 제국 정부와 군부는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결사적인 항전을 결심했다. 결국 미국이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고 소련이 만주를 침공함에 따라 쇼와 천황이 1945년 8월 15일 라디오 담화를 통해 연합국의 포츠담선언을 수락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서 연합군 측의 대표와 시게미츠 마모루 당시 외무대신이 공식으로 포츠담 선언에 서명하면서 연합국들의 관리체제에 들어갔으며, 개헌 절차를 거쳐 일본국 헌법이 제정됨으로써 체제가 붕괴되었다.

6. 침략[편집]

일본 제국은 19세기, 20세기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에 뛰어들때에 많은 나라를 침략하였고, 이탈리아와 독일과 연합하여 전쟁하기도 했다. 한국을 1910년 8월 26일부터 1945년까지 지배했는데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등의 일이 행해지기도 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위기에 직면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으로의 식민지 확대를 꾀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일본으로의 석유공급을 차단하고 중국측에 전쟁물자를 지원하자, 일본은 결국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도발한 뒤 패망하였다. 이러한 전쟁 기간 중 일본군은 일본 자국, 식민지, 점령지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동맹국인 나치 독일은 비교가 안될정도로 조직적이며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자행하였다. 1937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군이 학살한 사람은 약 3백만 명에서 1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연합군 포로에 대한 학대나 학살 등은 전후에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폭로되었지만, 피고용인으로 포로소장이나 포로소 직원으로 근무한 조선 사람들까지 B급 전범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징역형을 받는 일도 있었다.

7.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