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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 寧越 淸泠浦 Cheongnyeongpo Meandering Stream, Yeongwol | |
분류 | 자연유산 / 명승 / 문화경관 |
국가 | |
면적 | 204,241㎡ |
지정일자 | 2008년 12월 26일 |
소유단체 | 국가유산청 외 |
관리단체 | 영월군 |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 등 |
청령포 전경 |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3. 역사[편집]
단종은 청령포에서 두 달을 머물다 홍수가 나자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소쩍새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한 시 '자규시'를 남겼다.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몰래 청령포를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시신을 수습했다. 그가 시신을 몰래 묻은 곳이 지금의 장릉이다. 엄흥도는 단종의 장례를 치른 후 영월을 떠나 몸을 숨겼다.
영조는 1726년에 단종의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를 세웠다. 이어 1763년에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라는 글을 써서 단종이 거처하던 집터에 비석과 비각을 조성하였다.
2000년에 단종이 머물던 기와집을 복원하고, 부속 건물인 초가집도 함께 세웠다.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몰래 청령포를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시신을 수습했다. 그가 시신을 몰래 묻은 곳이 지금의 장릉이다. 엄흥도는 단종의 장례를 치른 후 영월을 떠나 몸을 숨겼다.
영조는 1726년에 단종의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를 세웠다. 이어 1763년에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라는 글을 써서 단종이 거처하던 집터에 비석과 비각을 조성하였다.
2000년에 단종이 머물던 기와집을 복원하고, 부속 건물인 초가집도 함께 세웠다.
4. 본 문서 정보[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일부 내용들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