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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청와대 靑瓦臺 | Cheong Wa Dae | |||
![]() | |||
▲ 청와대 사진 | |||
국가 | |||
건축 기간 | 1990년 9월 4일 ~ 1991년 9월 4일 | ||
면적 | 253,505㎡ | ||
위치 |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종로구 청와대로 1 | ||
1. 개요[편집]
청와대는 대한민국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2. 상세[편집]
3. 경호[편집]
청와대 경호는 대통령경호처가 담당하며 경찰과 군도 경호 업무를 맡는다. 경찰 조직에선 서울특별시경찰청 소속 101경비단·202경비단·22경찰경호대 등 세 기관에서도 청와대의 경비·경호를 담당한다. 101경비단은 청와대 내곽을 경비하고 202경비단은 외곽을 경비한다. 경찰경호대는 대통령 외부 행사장에서 경호를 맡는다. 인원은 경비단이 700여 명 수준이고 경호대는 100~150명 정도다. 군 조직에선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제1경비단이 외곽 경비를 담당한다. 산하에 2개 대대와 전투지원중대·장갑중대·방공대가 있는데 과거 존재하던 30경비단과 33경비단을 통합하여 창설됐다. 소속 병력은 2,000여 명 수준이다.
4. 풍수[편집]
옛 경복궁 후원에 조선 총독의 관저가 들어섰다가 6년만에 일본 제국이 패망하고 이 관저를 물려받은 한국 대통령들의 말년이 불운하여 풍수 논쟁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논쟁은 노태우 때 청와대 본관과 관저를 분리하는 공사를 하면서 '천하제일복지'라고 각자된 바위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최창조 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1990년대에 "청와대 터는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청와대 흉지론'을 주장했다. 그 외에도 다수의 풍수지리 연구가들은 청와대가 앞으로는 남산과 관악산, 뒤로는 북악산 등의 정기를 받고 있지만, 북악산에 많은 바위가 풍수에서는 '살기'에 해당하므로 청와대 터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조수범 단국대학교 풍수지리학과 박사는 한 많은 후궁들이 거처하던 7궁의 자리, 한때 무수리들의 임시 무덤과 군사들의 무예 훈련장으로도 사용되었던 소외되고 버려진 땅이 청와대 터라고 소개했다. 그는 청와대 터가 주변의 잡스러운 기운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복궁도 조선 시대 내내 길지다 흉지다 이견이 많았다고 하였다.
반대로 청와대가 풍수지리학상 길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890년 전인 고려 시대에도 남경의 이궁(왕궁)이 들어섰고 광복 후 수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거듭날 만큼 국가의 기운이 융성한데 땅이 무슨 문제냐는 얘기다. 대통령의 말년이 순탄하지 않았던 건 정치 시스템상의 문제이고 개인의 욕심에 의한 것이므로 청와대 터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최창조 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1990년대에 "청와대 터는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고 '청와대 흉지론'을 주장했다. 그 외에도 다수의 풍수지리 연구가들은 청와대가 앞으로는 남산과 관악산, 뒤로는 북악산 등의 정기를 받고 있지만, 북악산에 많은 바위가 풍수에서는 '살기'에 해당하므로 청와대 터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조수범 단국대학교 풍수지리학과 박사는 한 많은 후궁들이 거처하던 7궁의 자리, 한때 무수리들의 임시 무덤과 군사들의 무예 훈련장으로도 사용되었던 소외되고 버려진 땅이 청와대 터라고 소개했다. 그는 청와대 터가 주변의 잡스러운 기운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복궁도 조선 시대 내내 길지다 흉지다 이견이 많았다고 하였다.
반대로 청와대가 풍수지리학상 길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890년 전인 고려 시대에도 남경의 이궁(왕궁)이 들어섰고 광복 후 수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거듭날 만큼 국가의 기운이 융성한데 땅이 무슨 문제냐는 얘기다. 대통령의 말년이 순탄하지 않았던 건 정치 시스템상의 문제이고 개인의 욕심에 의한 것이므로 청와대 터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