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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淸海鎭海運 歲月號 沈沒 事故 Sinking of MV Sewol | ||
발생 | ||
사고선박 | 청해진해운 세월호 | |
출발 |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경[3] 인천항 연안부두|연안 여객터미널 | |
도착 예정 | ||
유형 | 침몰 | |
원인 | /침몰 원인#s-1|확증 불가 | |
탑승 인원 | 476명(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 |
인명피해 | 사망 | |
미수습 | ||
구조 | 172명(단원고 학생 75명, 교사 3명)[10] | |
재산 피해 | 약 6,000억 원 이상 | |
동원 | 인원 | 약 700여 명으로 추정 |
장비 | 수상오토바이, 제트보트, 헬기, 민간 어선 | |
1. 개요[편집]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중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한민국의 대형 참사이다.
2. 상세[편집]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역사에 지우기 힘든 아픈 상처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진정한 안전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막중한 책임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하나로 단합해서 위기를 극복한 저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좌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 것입니다.[11]박근혜 대통령 (2014년 05월 19일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1] <여객선침몰> 세월호, 막판에 항로 급히 바뀌어(종합).[2]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위치는 세월호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장소이며, 침몰을 시작하기 시작한 지점은 조금 더 아래쪽이다. 자세한 것은 세월호 이동경로를 기록한 구글 지도 참조.[3] 본래 예정된 시각은 오후 6시 30분이지만 안개로 인해 출발이 지연되면서 9시 정도에 출발하였다.[4] 도착 예정 시간을 1시간 조금 넘게 앞두고 사고가 발생했다.[5] 사고 전 정오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방송이 나왔다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있다.[6]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1997년생~빠른 98년생이다.[7] 미수습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사망자는 전체 304명, 이들 중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 사망.[8] 이들 모두 언론에서 이름이 공개되었다. 단원고 학생은 남현철·박영인 군, 교사는 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이었던 권재근·혁규 부자 2명.[9]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수습자이다. 물론 사망했다고 볼 수 있으나, 사망 선고를 내리기 위해서는 시체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민법상 실종자로 분류된다. 민법 제27조 제2항에 의하여, 사고 발생 후 1년이 지난 때부터 유족 등이 사실상 사망에 준하는 실종 선고를 법원에 청구할 수는 있다.[10] 당시 단원고의 교감은 구조 되었다가 죄책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했다.[11] 담화 내용으로는 해경 해체, 해산 및 각 부처 신설, 부패 청산, 법 개정안 등 강도 높은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역대 대통령 담화 중에서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사고 당시 온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이 가득차 있었음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