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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공화국
República de Chile | Republic of Chile
파일:칠레 국기.jpg
파일:칠레 국장.png
국기
국장
Por la Razón o la Fuerza
이성 혹은 힘으로
국가 정보
국명
칠레
수도
산티아고
독립
1818년 2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언어
스페인어
면적
7,567만 ㏊ (37위) [2023년기준]
인구
1,962만 9,590명 (65위) [2023년기준]
종교
기독교 62.1%
무종교 37.4%
기타 0.5%
경제개발 수준
상징
국가
칠레 국가
(스페인어: Himno nacional de Chile)
국기
국화
동백꽃
국조
안데스콘도르
정치
정치체제
단일 국가, 공화제, 대통령제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
외교
UN
1945년 가입국
TIAR
1947년 가입국
주한 대사관 총영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1가 25-5
고려대연각타워 1801호
국가 코드
152, CL, CHL
국제 전화
+56
여행경보
전 지역 여행자제
1. 개요2. 상세3. 역사4. 지명 유래5. 행정 구역6. 지리7. 기후8. 민족9. 언어10. 교육11. 종교12. 교통13. 정치14. 대외 관계15. 문서 출처

1. 개요[편집]

칠레 공화국은 태평양과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남북으로 긴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주요 도시로는 산티아고, 콘셉시온 등이 있다.

2. 상세[편집]

북쪽에는 페루, 북동쪽에는 볼리비아, 동쪽에는 아르헨티나, 국토 최남단에는 드레이크 해협이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에콰도르 와 함께 브라질과 국경이 닿지 않는 두 국가 중 한 곳이다보니. 이 나라의 서쪽 해안은 태평양이며, 그 길이는 6,435km에 이른다. 대륙 본토와 더불어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와 살라스이고메스섬, 데스벤투라다스 제도와 폴리네시아의 이스터섬도 칠레 영토이다. 칠레는 1,250,000 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남극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2]하지만 남극 영토는 남극 국제 협약에 의해 누군가가 소유할 수 없으며 탐사적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칠레는 길이 약 4,300 km, 폭 대략 175 km의 특이한 국토 형태로 매우 다양한 기후를 보이며, 북쪽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국토 가운데쪽에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남쪽에는 눈이 많고 피오르, 빙하, 호수가 있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세로로 길쭉하게 생긴 땅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국가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칠레 북부의 사막에는 광물 자원이 있는데, 그중 특히 구리 매장량은 세계1위로 매우 풍부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중앙부 지역은 인구와 농업 자원이 많아 이 나라를 주도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19세기 말에 칠레가 남부와 북부 지역을 병합하며 커진 이래 이 나라의 문화적/정치적 중심지였다. 칠레 남부는 숲이 울창하며 화산과 호수가 띠를 이룬다. 남쪽 해안은 피오르와 어귀, 운하, 복잡한 반도와 섬으로 미로를 이룬다. 안데스 산맥이 동쪽 국경으로 뻗어있다.

16세기 스페인인이 오기 전부터 칠레 북부는 잉카 제국이 지배했으며, 토착 마푸체인(아라우꼬)들이 칠레 중앙부와 남부에 살고 있었다. 1810년 칠레는 독립을 선언했으나 1818년에야 스페인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아타카마 사막의 초석을 두고 벌어진 태평양 전쟁(1879~1884) 때 페루와 볼리비아를 무찌르고 현재 북부 지역을 얻었다. 마푸체인들이 완전히 정복된 것은 188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칠레는 민주주의 전통으로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에 비해 쿠데타나 독재 정부가 적은 편이었으나, 20세기 이 대륙에서 매우 잔인했던 17년간 군사 독재(1973-1990)로 3,000여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오늘날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상당히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국가이다. 인간개발지수나 (물가와 구매력을 고려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국가 경쟁력, 삶의 질, 정치적 안정, 세계화, 경제 자유, 낮은 수준의 부패, 극히 낮은 빈곤율면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현재 메르코수르(MERCOSUR)의 협력 회원국으로 미국과 2004년 자유 무역 협정을 맺고 유럽 연합과도 협의가 진행되는 등 경제 활동이 남미에서 가장 활발하다. 칠레는 이 지역에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이 잘 이루어져 있으나 지니 계수로는 높은 소득 불균등을 보인다.

대부분의 미주 지역에서는 원주민 탄압이 사그라드는 와중에 칠레만 유일하게 매우 활발히 탄압하고 있다.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에게 칠레 정부가 건물을 몰수하고 이스터 섬 관광삼품을 칠레 본토인들에게만 판매하도록 하고 있는 등 원주민에 대한 탐압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항의시위를 하자 칠레 정부는 무장 경찰을 투입해 고무탄을 쏘며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3. 역사[편집]

유럽인이 이 지역을 방문하기 이전인 콜럼버스 이전기에는 칠레 중부와 남부에 마푸체 인과 그 계통의 피쿤체 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폴리네시아계의 주민이 태평양에서 동쪽으로 맞은편에 칠레에 도착했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15세기에 들어서, 쿠스코를 거점으로 확대했다 케추아어족의 타완팅스유(잉카)의 황제 투팍 잉카 유판키와 와이나 카팍 등이 정복하여 북부는 잉카 제국에 포함되었지만, 마울레 강 인근에서 잉카 제국은 마푸체 족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투팍 유판키가 이끄는 잉카 제국 군대는 마울레 강 전투에서 마푸체 군에게 패배하였으며, 잉카 제국의 남부로 확대하지 않고 남부는 마푸체 족들이 계속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본토에서 훨씬 서쪽 파스 섬(이스터 섬)에 폴리네시아인에 의해 라파누이 문화를 건설하였으며, 모아이 상이 다수 건설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이 에스파냐 국왕을 몰아내고 자신의 동생 조제프를 옹립하면서, 에스파냐에서 독립하려는 시도에 불이 붙었다. 1810년 9월 18일 쫓겨난 왕의 후계자인 페르디난도의 이름을 딴 첫 의회가 열렸다. 이 의회는 칠레를 에스파냐 왕국 내 자치 공화국으로 선언했다. 곧 완전 독립 운동이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된다. 에스파냐는 이 땅을 다시 찾고자 시도해, 지리한 투쟁이 이어졌다.

간헐적인 전쟁이 계속되다가, 1817년 칠레의 애국자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와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의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이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를 해방시켰다. 1818년 2월 12일 칠레는 오이긴스의 지도 아래 독립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반란은 사회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으며, 19세기 칠레 사회는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사회 계층 구조가 지속됐고, 여기에는 가족 정치와 로마 가톨릭교회가 큰 영향을 주었다. 강력한 대통령이 등장했으나, 부유층 지주는 여전히 권력을 누렸다.

4. 지명 유래[편집]

칠레(Chile)의 어원을 두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8세기 스페인 연대기 작가 디에고 데 로살레스가 제시한 가설에 따르자면, 페루의 잉카인들이 아콩카과 산을 "Chili"라고 불렀는데, 15세기 잉카의 정복기에 이 지역을 지배한 피쿤체 족 족장("cacique")의 이름 Tili가 와전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설로는 Chili라는 이름의 계곡과 마을이 있는 페루의 카스마 협곡과 아콩카과 협곡이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 토착 마푸체어로 "땅이 끝나는 곳", "지구에서 가장 깊은 지점", 혹은 "갈매기"를 뜻하는 낱말 chili에서 나왔다거나, 케추아어로 "추운"을 뜻하는 chin 혹은 아이마라어로 "눈"을 뜻하는 tchili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또 chili란 말은 마푸체어로 새 소리의 의성어인 cheele-cheele-를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인에게서 이 이름을 들었으며, 1535~1536년에 페루에서 남쪽으로 간 디에고 데 알마그로의 첫 스페인 탐험대의 얼마 안되는 생존자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chili 사람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알마그로는 "칠레(Chile)"라는 국명이 일반화된 곳이라고 한다.

5. 행정 구역[편집]

파일:칠레 행정구역.jpg

6. 지리[편집]

서쪽은 태평양, 동쪽은 안데스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는 아타카마 사막 지대가, 중남부에는 피오르 해안이, 남부에는 빙하 지대가 있다. 북쪽에서 남쪽까지 총길이는 약 4,630km에 이른다. 땅의 생김새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땅이 긴 국가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대북부는 높은 해안 산맥이 존재하며 해안 평지가 존재하지 않고, 해안 산맥이 바다로 떨어지는 절벽, 해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으로 쭉 이어진다. 또한, 안데스 산맥이 존재한다.

중북부는 해안 산맥과 해안 평지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안데스 산맥이 점점 낮아진다.

중부는 중부 계곡이 가로지르는 산줄기에 의해 끊기며, 이들 작은 산줄기들은 해안 산맥과 안데스 산맥을 연결한다. 산티아고가 삼면이 산으로 가로막히는 형세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 있다. 안데스 산맥이 최고 높이를 차지한다. 아콩카구아 남미 최고봉이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남부는 해안 산맥이 차차 없어지다가 비오-비오 지역 부근에서 약간의 높이를 회복했다가 다시 사라진다. 네개의 지리적 특성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파타고니아의 해안 산맥은 바다 밑으로 가라 앉은 상태이며 그 연장 선상에는 많은 섬들이 나타난다. 칠로에섬이 이 중 가장 뚜렷하다. 그러므로 해안 평지도, 중심 계곡도 없다. 오직 안데스 산맥만이 위태히 푼타 아레나스 북부까지 내려갔다가, 남극에서 다시 나타난다.

7. 기후[편집]

칠레의 다양한 기후에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범위 북쪽 아타카마 사막 통해 해양 기후에 중심에 있는 지중해 성 기후, 이스터 섬에 위치한 습한 아열대, 고산 툰드라와 동쪽과 남쪽에 있는 빙하를 포함하여 처리한다. 쾨펜의 시스템에 따르면, 칠레 국경 내에서 적어도 7 개의 중요한 기후 서브 타입을 개최하고 있다. 봄 (9월부터 11월까지) 여름(12월에서 2월까지), 가을 (3월부터 5월까지), 겨울 (6월부터 8월까지) 국가의 대부분의 사계절이 있다.

8. 민족[편집]

백인은 주로 스페인인 후손이며,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등 및 이들 사이의 혼혈도 있다. 메스티소 집단은 과거 스페인 식민 정착민(주로 안달루시아나 카스티야 출신)들과 토착 부족(피쿤체, 디아기타, 마푸체족 등)의 혼혈이다. 이런 점에서 칠레는 다인종국가지만, 인구 대다수는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칠레인"으로 규정한다.(Chilenidad) 아프리카계 인구는 거의 없으며, 식민 시대에 최대 25,000명까지 이르렀으나, 이들의 비율은 1%도 안된다. 인구 조사 결과, 현재 토착 아메리카인도 수가 적은데, 그나마도 혈통적으로 검증하자면 통계상 수는 더 줄어든다. 2002년 인구조사에서는 칠레 인구의 4.6%가 토착 아메리카인인데, 상당수는 혼혈의 정도차이를 보인다.

9. 언어[편집]

대부분의 남아메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칠레에서도 스페인어를 쓰는데, 이웃 나라와는 달리 무척 특이한 억양을 보이고 있다.

칠레에는 몇몇 토착 언어가 존재한다. 마푸둥군어, 케추아어, 라파누이어 등이다. 대 북부에는 케추아어, 아이마라어, 아타카메뇨(사어)가 있으며, 중부와 남부에는 마푸체어, 파타고니아에는 오나어가 분포한다. 칠레 제9주에는 가장 큰 인디오 민족 마푸체(Mapuche)가 거주한다. 그들의 언어는 마푸둔군(Mapudungun)이다. 마푸체는 "땅의 주민들"이라는 뜻이다(마푸: 땅, 체:사람). 마푸체는 다시 북쪽 땅의 사람들인 페우엘체와 남쪽 땅의 사람들인 우일리체로 구분된다. 스페인 침략 이후 스페인어가 링구아 프랑카로 기능하면서, 토착 언어들은 소수 언어로 전락했으며, 몇몇은 현재 사멸했으며 혹은 사멸 위기에 놓여있다.

10. 교육[편집]

칠레의 교육은 2009년 교육법을 기반으로 한다.[57] 일반적으로 8년의 초등교육과정과 4년의 중등교육과정을 거쳐 대학교 혹은 기술학교로 진학한다.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을 제외하고는 학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교는 일반적으로 6년제이며 (4년 본과 + 2년 자격인증), 공립과 사립이 있으며 사립대의 등록금은 2011년 4월 현재 평균 한화 900만원 정도 이고 공립은 2,30% 정도 낮다. 졸업과정이 길고 힘든 탓인지, 인구의 17% 미만이 학사 이상의 학력을 소지하고 있어 졸업후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2000년 이후로 사립대의 지분거래가 가능하지면서 여러 교육법인의 사립 대학교가 난립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안정되고 있으며,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낙후된 교육수준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이 있으나 교육의 경제, 사회적 불평등이 문제되고 있다. 칠레는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에 대한민국을 제치고 1위의 사교육.사립분야 성장률을 자랑하고 있다.

칠레 헌법에서는 교육을 받을 권리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공교육이 엉망으로 무너지고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이어서 2006년과 2011년에는 학생들이 전면적으로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가 한화 5만원 정도하는 대입시험의 응시료를 공립 학교에는 면제하는 등 다양한 정책과 예산을 남발했으나. 2010년부터 국립 칠레대학교를 주체로 무너진 공교육의 대규모 개혁을 촉구하는 데모에 1만 5000명이 모이는 등 행사가 현재까지 꾸준하고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 교육의 개편을 촉구 하는 목소리와 사유화를 자제하는 목소리를 커지고 있다. 펭귄이란 이름은 공립 학교에서 입는 짙은 남색의 남.여 교복에서 유래한다.

11. 종교[편집]

칠레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다른 법과 정책을 통해 일반적으로 종교 의식의 자유에 기여하고 있다. 모든 수준의 법은 정부에 의한 종교 억압을 완전히 막고자 한다.[49] 또 칠레는 정교 분리 국가이며, 1999년 종교 관련법에서 종교 금지를 금했으나, 칠레의 전통종교인 가톨릭은 50%로로 특별한 위치에 있으며, 가끔 우대를 받기도 한다. 정부 공무원은 가톨릭 행사 뿐 아니라 유대교나 성공회 행사에도 참여한다.

70%는 가톨릭 신자이며, 15%는 개신교(Evangelical)이다. 여기서 "개신교"란 동방 정교회(그리스, 페르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모르몬,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한 非가톨릭계 그리스도교를 총칭한다. 개신교는 15%로 오순절 교회, 루터교회, 개혁교회,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이다.[49]무종교 사람들, 무신론자, 불가지론 자 및 인구의 약 40%를 차지한다.

피노체트의 군사독재당시 칠레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우들이 민중들을 살인, 고문, 가혹행위 등의 국가 폭력으로 탄압하는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살해당하자, 1973년 10월 정의평화위원회를 구성,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정의평화위원회에는 로마 가톨릭교회 외에도 유대교, 정교회, 개신교에서도 참여했다. 7명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들이 살해당할 정도로 정의평화위원회는 군사독재 정권의 큰 탄압을 받았으며 지도자로 활동하던 추기경도 피노체트 군사독재 정권으로부터 "붉은 추기경"(Red Cardinal)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미움받았다.[50] 칠레 기독교의 민주화 운동은 성만찬에 근거한 신학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회운동과 다르다. 즉 로마 제국과 예루살렘 성전의 결탁에 의한 예수의 죽임과 수난을 기억하는 성례전인 성만찬을 통해 예수처럼 지배계급에게 부당한 죽임과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의 고통을 생각하고 그들의 인권과 해방을 위해 투쟁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UCC) 터 브로그만은 성만찬이 칠레 교회가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가장 큰 무기였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성탄절, 성 금요일, 가르멜 산의 성모, 성 베드로와 바울 축일(Feast of Saints Peter and Paul),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제성일(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 공현절(Feast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주님의 공현 대축일, 주현절이라고도 함. 1월 6일)등 기독교가 교회력에 따라 지키는 절기들을 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날인 10월 31일을 개신교를 위한 공휴일로 정했다.

12. 교통[편집]

  • 항공 : 항공은 민영항공사들에 의해 운영되며 1~2000Km 내외의 단거리 항공이 잘 발달 되어 있고, 산티아고와 안토파가스타에 국제공항이 있다. 특히 섬이 많아 육로의 이용이 어려운 남부지방이나 거리가 먼 이스터 섬에 정기적인 항공편이 애용되고 있다.
  • 철도 : 남북으로 길쭉한 칠레에서는 철도·도로·연안 항로가 남북부를 연결한다. 동시에 높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볼리비아·아르헨티나와도 철도·도로로 연결된다. 철도는 전장 1만 100km이나 북부의 광산철도와 같이 주로 산업용이고 수도가 위치하는 중부지방의 승객을 위한 철도 시설이나 열차의 상태는 열악하여 개선이 필요하다.
  • 도로 : 도로는 7만 6,595km에 달하지만 도시와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다차선 도로가 없고 오히려 간선도로가 발달되어있다. 덧붙여, 대도시는 도로포장의 유지 보수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 해상 : 세계에서 가장 긴 형태의 국가인 동시에 해상운송을 활용하는 해운이 잘 발달되어 있다. 주로 대량운송의 유류비 절감의 목적으로 정기적인 운송이 무역항 사이에서 운용되고 있다. 특히 섬이 많은 남부 지방과 칠로에 섬에 주로 승객과 차량을 동시에 운송하는 페리선들이 많다.

13. 정치[편집]

3권 분리 민주주의이며, 정치 형태는 대통령제이며 4년마다 대통령 선거가 있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의회는 하원(Cámara de Diputados)과 상원(Senado)으로 나뉜다.

14. 대외 관계[편집]

독립 초기부터 칠레는 외교문제에 적극 관여해왔다. 1837년 연방전쟁(War of confederation)에서 페루와 볼리비아의 연맹군을 패퇴시켜 페루가 점유하던 태평양 무역요지인 깔라오 항을 빼앗으려 했다. 이 전쟁은 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분산시키며 페루 볼리비아 연맹을 무너뜨렸다. 그 영역에 상당히 추가하는 동안 두 번째 국제전인 태평양 (1879-83)의 전쟁에서 나아가 칠레의 지역 역할을 증가시켰다.

19세기 칠레의 상업 관계는 주로 영국, 칠레 해군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법률 및 교육 시스템은 20세기 초에 자본의 구조를 통해 칠레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프로이센은 조직과 군대식 훈련의 영향을 미쳤다.

1945년 6월 26일 칠레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엔 헌장에 서명하여 50개국의 국제연합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1973년 군사 쿠데타는 광범위한 인권 침해로 정치적으로 고립을 야기했다.

1990년 민주주의로의 복귀 이후, 칠레는 국제 정치 무대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국제 원자력기구 (IAEA) 이사회를 맡고 있고, 2007-2008년에는 Milenko E. Skoknic 칠레 대사가 위원장을 맡았다. 유엔의 회원이며, UN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3년 임기로 2011년 유엔 인권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재 선출되었다. 또한 2013년에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비상임 좌석 다섯 중 하나에 선임되었다. 2005년과 2007년 11월에는 민주주의 공동체 회의와 이베로 아메리카 정상 회의를 개최하였다. 메르코수르 준회원 및 APEC 전체 회원으로서, 칠레는 국제 경제 문제와 반구 자유 무역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칠레 정부는 대부분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남부 파타고니아 아이스 필드에서 국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1990년대 아르헨티나와 모든 영토 분쟁을 해결하였다. 칠레와 볼리비아는 1879-83년 태평양 전쟁 등이 있었으며 1978년에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두 나라는 영사 관계를 총영사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15. 문서 출처[편집]

  • 본 문서에 작성된 내용은 아래의 자료들로 참고한 내용을 알립니다.
[2023년기준]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