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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대한민국의 유공자]] [[분류: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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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47a0><tablewidth=450><tablebgcolor=white,#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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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독립유공자|{{{#white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br] {{{#white '''{{{+1 이봉창}}}[br]李奉昌 | Yi Bongcha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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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2><nopad> [[이봉창|[[파일:이봉창 사진.jpg|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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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2><width=18%><colbgcolor=#0047a0><colcolor=white> '''출생''' ||1901년 8월 1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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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한성부 서서 용산방 동문외계 동문외[br](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2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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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2> '''사망''' ||1932년 10월 10일 (향년 31세) / {{{-2 (사망 [age(1932-10-10)]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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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도쿄부 도쿄시 우시고메구 이치가야 형무소[br](現 도쿄도 신주쿠구 요초마치 4-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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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 '''묘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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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jpg|width=20px]] [[대한민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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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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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 '''신체''' ||173c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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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 '''가족''' ||아버지 이진규[br]어머니 밀양 손씨[br]형 이범태[br]이복동생 이봉준, 이종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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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 '''후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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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 '''직업''' ||[[독립운동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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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 '''종교''' ||불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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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 '''소속''' ||한인애국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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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 '''상훈''' ||건국공로훈장 복장 추서 {{{-2 (1983년)}}}[br](現 [[건국훈장]] 대통령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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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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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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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이봉창은 [[일제강점기]]의 상인, [[독립운동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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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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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본관은 전주다. 일본으로 건너가 상인 등으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 단원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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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경성부의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상점 점원, 철도청 견습생으로 일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상점 점원과 막노동 등에 종사하였다. 1918년 철도국의 견습사원이 되었으나 1년 후 조선인보다 늦게 입사한 일본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분개하여 철도국을 그만두었고, 1928년에는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식에 구경하러 갔다가, 한글과 한문으로 된 편지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1일간 수감되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하던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본 정부에 항거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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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1931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한인거류민단을 통해 김구를 찾아갔다. 능행에 오르던 천황을 눈앞에서 본 것을 밝히고 천황을 제거할 계획을 모의하였다. 1932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경시청 사쿠라다 문 앞에서 쇼와 천황을 폭탄으로 저격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일본식 이름은 기노시타 쇼조, 다른 가명은 아사야마이다. 경성부 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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