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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이봉창
李奉昌 | Yi Bongchang
파일:이봉창 사진.jpg
출생
1901년 8월 10일
한성부 서서 용산방 동문외계 동문외
(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2가)
사망
1932년 10월 10일 (향년 31세) / (사망 93주기)
도쿄부 도쿄시 우시고메구 이치가야 형무소
(現 도쿄도 신주쿠구 요초마치 4-12)
묘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국적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
신체
173cm
가족
아버지 이진규
어머니 밀양 손씨
형 이범태
이복동생 이봉준, 이종태
후손
직업
종교
불교
소속
한인애국단
상훈
건국공로훈장 복장 추서 (1983년)
(現 건국훈장 대통령장)
1. 개요2. 상세

1. 개요[편집]

이봉창은 일제강점기의 상인, 독립운동가이다.

2. 상세[편집]

본관은 전주다. 일본으로 건너가 상인 등으로 활동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화민국 장쑤성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 단원이 되었다.

경성부의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상점 점원, 철도청 견습생으로 일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상점 점원과 막노동 등에 종사하였다. 1918년 철도국의 견습사원이 되었으나 1년 후 조선인보다 늦게 입사한 일본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분개하여 철도국을 그만두었고, 1928년에는 히로히토 천황의 즉위식에 구경하러 갔다가, 한글과 한문으로 된 편지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1일간 수감되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하던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본 정부에 항거하게 되었다.

1931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한인거류민단을 통해 김구를 찾아갔다. 능행에 오르던 천황을 눈앞에서 본 것을 밝히고 천황을 제거할 계획을 모의하였다. 1932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경시청 사쿠라다 문 앞에서 쇼와 천황을 폭탄으로 저격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일본식 이름은 기노시타 쇼조, 다른 가명은 아사야마이다. 경성부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