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1 |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
|---|
| 2 |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width=100%]]}}} || |
|---|
| 3 | ||<-2><bgcolor=#cdcdcd> '''허난설헌''' || |
|---|
| 4 | ||<-2><bgcolor=#cdcdcd> '''許蘭雪軒''' || |
|---|
| 5 | ||<width=30%> '''본명''' || 허초희(許楚姬) || |
|---|
| 6 | || '''출생''' || 1563년 ([[조선]] 강원도 강릉도호부) || |
|---|
| 7 | || '''사망''' || 1589년 3월 19일 ([[조선]] 한성부) || |
|---|
| 8 | || '''자''' || 경번(景樊) || |
|---|
| 9 | || '''호''' || '''난설헌(蘭雪軒)''' || |
|---|
| 10 | || '''본관''' || [[양천 허씨]] || |
|---|
| 11 | || '''부모''' || 아버지 허엽, 어머니 강릉 김씨 || |
|---|
| 12 | || '''형제자매''' || 오빠 허성, 허봉, 남동생 [[허균]] || |
|---|
| 13 | || '''배우자''' || 김성립 || |
|---|
| 14 | || '''직업''' || 시인, 작가 || |
|---|
| 15 | |
|---|
| 16 | [목차] |
|---|
| 17 | |
|---|
| 18 | == 개요 == |
|---|
| 19 |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
|---|
| 20 | >---- |
|---|
| 21 |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알려진 시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중에서 |
|---|
| 22 | |
|---|
| 23 |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화가. 본명은 '''허초희'''(許楚姬)이지만, 호인 '난설헌'으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
|---|
| 24 | |
|---|
| 25 | [[신사임당]]과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예술가로 꼽히지만, 현모양처의 아이콘인 신사임당과는 정반대로 '''비극적인 천재'''의 아이콘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시대를 잘못 타고나 요절한 불운의 인물. |
|---|
| 26 | |
|---|
| 27 |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나이기도 하다. |
|---|
| 28 | |
|---|
| 29 | == 생애 == |
|---|
| 30 | === 천재 소녀 === |
|---|
| 31 | 1563년 강원도 강릉의 명문가인 양천 허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허엽은 동인의 거두였고, 형제들 모두 문장에 뛰어난 '허씨 5문장' 집안이었다. |
|---|
| 32 | 남동생 [[허균]]과 함께 당시 서자 출신 시인인 [[이달(조선)|이달]]에게 글을 배웠는데,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8세 때 지었다는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
|---|
| 33 | |
|---|
| 34 | === 불행한 결혼 생활 === |
|---|
| 35 | 15세 무렵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이 결혼은 그녀에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
|---|
| 36 | 남편 김성립은 과거 공부는 뒷전이고 기방을 드나들며 풍류를 즐기는 한량이었다. 무엇보다 아내의 재주가 자신보다 뛰어난 것에 열등감을 느껴 밖으로만 돌았다고 한다. ~~못난 남편의 전형~~ |
|---|
| 37 | 게다가 시어머니와의 고부 갈등까지 겹쳐 심신이 피폐해졌다. |
|---|
| 38 | |
|---|
| 39 | === 세 가지 한(恨) === |
|---|
| 40 | 그녀는 평소 자신에게 세 가지 한이 있다고 한탄했다. |
|---|
| 41 | 1. 조선(약소국)에서 태어난 것 |
|---|
| 42 | 2. 여자로 태어난 것 |
|---|
| 43 | 3.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
|---|
| 44 | |
|---|
| 45 | 여기에 더해 슬하에 둔 남매를 전염병으로 연달아 잃고, 뱃속의 아이까지 유산하는 끔찍한 비극을 겪는다. 이때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쓴 시가 그 유명한 《곡자(哭子)》이다. |
|---|
| 46 | |
|---|
| 47 | === 요절 === |
|---|
| 48 | 가족의 몰락과 자녀들의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는 시를 쓰며 슬픔을 달래다, 1589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
| 49 | 죽기 전, 자신의 시를 모두 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겨 방 한 칸 가득하던 시들이 모두 불타 사라졌다. |
|---|
| 50 | |
|---|
| 51 | == 작품 및 평가 == |
|---|
| 52 | === 난설헌집 === |
|---|
| 53 | 그녀가 죽은 후, 동생 [[허균]]이 누나의 재능이 묻히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그녀가 친정에 남겨두었던 시와 자신이 암기하고 있던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을 펴냈다. |
|---|
| 54 |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에서는 여자가 시를 쓴다는 이유로 저평가받았으나, 허균이 명나라 사신에게 이 시집을 전해주면서 '''중국(명나라)에서 먼저 대박이 났다.''' '난설헌'이라는 이름이 중국 문단에서 극찬을 받았고, 이후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분홍색 종이에 인쇄된 '난설헌집'이 에도 시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
|---|
| 55 | |
|---|
| 56 | === 작품 경향 === |
|---|
| 57 |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신선 세계나 도교적인 이미지를 노래한 시가 많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
|---|
| 58 | 대표작으로는 《유선사》, 《빈녀음》, 《곡자》 등이 있다. |
|---|
| 59 | |
|---|
| 60 | == 여담 == |
|---|
| 61 | * 동생 [[허균]]과는 사이가 매우 각별했다. 허균은 누나를 문학적 스승이자 소울메이트로 여겼으며, 그녀의 죽음을 평생 슬퍼했다. |
|---|
| 62 | * 남편 김성립은 난설헌이 죽은 후 재혼했으나, 훗날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전사했다. |
|---|
| 63 | * 강릉시에 있는 그녀의 생가는 현재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난설헌 문화제가 열린다. |
|---|
| 64 | * 동시대 인물인 [[신사임당]]과 자주 비교된다. 신사임당이 체제 순응적이고 성공한 어머니상이라면, 허난설헌은 체제 저항적이고 비극적인 예술가상으로 대조된다. |
|---|
| 65 | * 꿈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쓴 시 《몽유광상산》에 부용꽃 27송이가 붉게 떨어진다는 구절이 있는데, 실제로 27세에 사망하여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시로 유명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