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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76 | “믿음”이란 단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다양한 기독교 교파의 교리와 전통에 따라 다르다. 교파마다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예수가 기독교의 중심에 자리하며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예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
77 | 77 | == 교파 == |
78 | 기독교(그리스도교)의 교파 분류는 크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전통으로 나뉜다. 동방교회는 현재 동방 정교회가 가장 큰 교단이며 각 국가별 동방정교회가 있다. 서방교회는 16세기 분리되어 로마 가톨릭교회의 각 교파와 개신교의 각 교파로 교파가 존재한다. '가톨릭 교회'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전승을 따라 거룩하고, 단일하고, 보편성을 지닌, 즉 공의회의 교리를 따르는 교회 전체를 의미하지만 현재에는 | |
78 | 기독교(그리스도교)의 교파 분류는 크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전통으로 나뉜다. 동방교회는 현재 동방 정교회가 가장 큰 교단이며 각 국가별 동방정교회가 있다. 서방교회는 16세기 분리되어 로마 가톨릭교회의 각 교파와 개신교의 각 교파로 교파가 존재한다. '가톨릭 교회'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전승을 따라 거룩하고, 단일하고, 보편성을 지닌, 즉 공의회의 교리를 따르는 교회 전체를 의미하지만 현재에는 로마 가톨릭교를 가리킬 때 많이 사용한다. | |
79 | 79 | == 기독교의 교육 == |
80 | 80 | 중세문화의 기본은 기독교이다. 학문에 있어서는 신학이 가장 중시되었으며, 철학은 '문학의 종(從)'이었다. 기독교 그 자체의 발전이 중세의 사상적·문화적·교육적 특징을 뒷받침했다. 대학에서는 신학부가 가장 격식이 높았다. 기독교 문화가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대조되어 서양 문화의 2대 조류를 만들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교육제도·내용 및 방법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고대교육에 있어서 인간본위 및 주지주의(主知主義)가 중시된 데 비하여, 기독교의 이상은 신을 본위로 한 주정주의(主情主義)에 입각했다. 이러한 신 본위와 주정주의가 고대교육의 인간본위 및 주지주의와 대조된 것이 원시 기독교 이상의 특색이었다. 이러한 이상은 내세(來世)에서만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며, 현세에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초현세주의, 내세주의, 도야사상(陶冶思想)이 원시 기독교의 이상이었다. 또한 동포애 정신과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를 표방, 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 적을 사랑할 수 있는 정신을 도야하였다. 이와 같은 기독교의 이상을 중심으로 한 초기 기독교는 종교 자체를 하나의 교육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는 지적 발달을 위한 어떤 것보다 도덕적 훈련이 최고의 과제였다. 그리스도의 설교와 교훈 자체가 그들이 주장하는 높은 이상이었고, 교육의 목적임과 동시에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내세를 위한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이 곧 교육적 이상이었다. 이와 같은 교육적 이상은 교육제도에 있어서도 종교를 중심으로 하여 신을 신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중세의 교육사에 있어서 기독교가 로마 황제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정신계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의 희생과 사도(使徒)의 전도, 신자의 순교정신이 민심을 감동케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이교도를 그리스도 교도화하기 위한 학교가 발달하게 되어, 2세기경에는 문답학교·고급문답학교·사원학교 등 세 가지 단계의 학교가 성립되었다. 이어 6세기경부터는 수도원이 기독교 승려의 수양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수도원은 현세의 향락주의를 거부하고, 영적(靈的) 생활을 찾기 위한 승려들의 은둔처가 되었다. 이 수도원제도는 로마의 퇴폐와 더불어 교회 안에서 심오한 종교적 생활을 영위하자는 운동으로 나타나, 13세기에 이르러 유럽 각지에 널리 전파되었다. 수도원제도는 인간의 금욕적인 요소를 강조하며, 은거생활을 주장하는 한편, 육체적 고통을 인내하려는 습관과 정신을 훈련시켰다. 그 이상은 빈곤·순결·복종이었고, 수도생활을 실천하려는 승려는 개인생활·사유재산·개인의 자유를 부정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실천한 사람이 성(聖)베네딕트였다. 베네딕트는 529년에 이탈리아의 몬테 카시노 산상(山上)에 수도원을 창설하였고, 수도생활에 관한 세 가지 규칙을 제정하였다. 한편, 중세기의 교육사상 제2기에 속할 수 있는 스콜라주의 운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발견되고, 그의 사상이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이용되기 시작할 때부터 비롯되었다. 이 시기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a), 알베르트 승정(Albert 僧正), 아퀴나스(Tomas Aquinas) 등 저명한 신학사상가가 출현하여 신학사상에 있어서는 눈부신 발전을 보였지만, 교육사상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아퀴나스와 같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의 경우도 교육사상 그 자체에는 별반 창조적인 것이 없었다. 아퀴나스는 지식의 습득을 도덕의 습득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존재하는 어떤 가능성의 발전에 있다고 보았다. 또 그는 지식이란 '어떤 보편적 원리'에 내재하는 능동적 지성이라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단순한 감각적 지각으로부터 지적 개념을 이끌어 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퀴나스를 비롯한 스콜라 철학자들은 교육적 문제보다도 형이상학적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이것은 스콜라주의적·아리스토텔레스적 지식원리에 더욱 심취했던 스콜라 철학자들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요컨대 중세기를 통해 아퀴나스와 같은 당대의 위대한 인물에서도 교육에 대한 관심이 희박했음을 알 수 있지만, 역사의 진전과 더불어 교육도 근대교육을 지향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
81 | 81 | == 과학과 기독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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