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5 vs r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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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2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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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4 | == 개요 == |
| 5 | [[대한민국 | |
| 5 |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김대중]]과 관련된 논란 및 비판, 사건사고를 다룬 문서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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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7 | == 인위적 정계 개편 논란 == |
| 8 | 8 | 대선 전 김대중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냈고, 그가 당선됨에 따라 자유민주연합은 국민회의와 더불어 여당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원내 1당은 한나라당이었고, 당시 공동여당의 의석수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김대중은 소수여당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단행하였다. 우선 1997년 15대 대선에서 3위로 낙선하고 이듬해 열린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이인제의 국민신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검찰을 동원하여 한나라당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정을 단행하여 그곳의 의원들을 빼앗는 방법 등을 써 국회 과반의석수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자 일부 의원들은 자발적으로 권력을 좇아 당적을 변경하는 철새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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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45 | [[동티모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조제 하무스 오르타가 로비설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월간조선 기자에게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라고 하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노벨상 로비설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환영하고 축하해야 할 일을 노벨상 반납까지 운운하며 로비설을 흘리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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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47 | == 병역 논란 == |
| 48 | 김대중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대한민국 | |
| 48 | 김대중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에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이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6.25 전쟁]] 동안 군 복무를 기피했다는 신한국당 측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대중은 TV 토론회에서 출연하여, 6·25전쟁 당시 병역법에 따르면 1930년생부터 징병이 됐기 때문에, 1924년생인 자신은 소집영장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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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50 | 이어 해군 경비대 소속 목포해상방위대 전남지구 부대장을 맡아 당시 자신의 해운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선박을 동원해 참전했다고 증언했다.[363] 그러나 신한국당은 목포해상방위대가 유령 군부대라고 주장했고, 국민회의 측에선 해상방위대는 1950년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38호와 국방군사연구소에서 발행한 국방사연표에 분명히 근거가 있다고 반박하는 등 양측의 공방이 이어졌다.[364] 이후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이 미국에 거주중인 해병대 예비역 준장 송인명을 만나 그의 증언록과 직접 쓴 증명서 등을 가져와 공개하고,[365] 송인명은 전 목포경비부사령관으로 부임했을 때 군과 경찰만으로 공산세력의 잔당소탕과 안녕질서 유지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목포시내 청년단과 여성청년단 등 애국단체들을 모두 동원해 작전을 보조하게 하였으며, 특히 해상작전이 중요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당시 지역유지 오재균에게 지시, 해상방위대를 창설해 김대중에게 부대장을 맡겼다고 해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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