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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분류:북한 최고지도자의 배우자]] | |
| 2 | 1 | ||<-2><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024FA2><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24FA2 17%, #FFF 17%, #FFF 19%, #ED1C27 19%, #ED1C27 81%, #FFF 81%, #FFF 83%, #024FA2 83%, #024FA2)" |
| 3 | 2 | {{{#fff '''북한의 제2대 최고지도자 배우자'''[br]'''{{{+1 김옥}}}[br]金玉'''''' | Kim O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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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파일:김옥 사진.png|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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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4 | ||<-3><bgcolor=#0047a0> {{{#fff '''기본 정보'''}}} || |
| 7 | 5 | ||<colbgcolor=#ED1C27><colcolor=#fff><width=25%><|1> '''출생''' ||1964년 8월 28일{{{-2 ([age(1964-08-28)]세)}}} || |
| 8 | 6 | ||<width=25%><|1> '''국적''' ||[[파일:북한 국기.jpg|width=20px]]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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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16 | == 개요 == |
| 19 | 17 | 김옥은 [[북한]]의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서기의 다섯째 부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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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19 | == 상세 == |
| 21 | 20 | 김정일보다 23살 연하로, 2000년 이후 김정일이 해외를 방문할 때 수행했으며, 2008년 초 김정일의 딸을 낳았다. 김옥은 김정일에게 걸핏하면 마구 반말을 퍼붓고 거리낌없이 신경질도 부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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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22 | == 생애 == |
| 23 | 23 | 김옥은 금성고등중학교 출신으로 왕재산경음악단의 피아니스트였다. [[김원균명칭음악종합대학|평양 음악 무용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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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북한 국내의 시찰이나, 2006년 1월의 중화 인민 공화국 주석의 후진타오와의 회담 등, 김정일과 행동을 모두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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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29 | 2000년경의 단계에서는 한미 모두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순조롭게 존재감을 높이고 있어 2008년 9월부터 중병설이 흐르고 있는 김정일의 상세한 병상에 대해 상세를 파악하고 있다고 여겨져 또 고용희가 죽기 직전에 친자식인 김정철과 김정은을 김옥에게 맡겼던 것과, 후계자 선택에 관해 중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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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31 | == 권력구도 == |
| 31 | 32 |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위원인 마커스 놀랜드 박사는 "김옥이 김정일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며, "김정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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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34 | 2009년 당시 김정일의 병상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던 인물도 아들들을 제외하면 김정일의 주치의와 김옥 그리고 장성택 세 사람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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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36 | == 부친 == |
| 35 | 37 |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11일 "김 위원장의 사실상 네 번째 아내인 김옥의 아버지 김효 부부장이 이번 165호 선거구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됐다"고 전했다.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남한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효 노동당 재경경리부 부부장이 노동당 재경경리부장으로 선출되었다. 당 재정경리부장은 전임자인 리봉수 부장이 2004년 고용희 사망 직후 경질된 이래 공석이었다. 2009년 4월 5일 대포동 2호를 발사한 직후, 200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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