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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25 | 그는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스위스 유학 중 사용된 가명은 '박운'이다. 김정일 사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통수자"로 칭해지고 있다. 2012년 4월 11일에 아버지 [[김정일]]을 이어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되었으며, 4월 12일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었다. 2012년 7월 18일 원수로 진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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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7 | 2016년 5월 9일 자신의 조선로동당 제1비서 직책을 폐지하고 조선로동당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권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으며,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적성국이었던 대한민국과 미국과 각각 정상회담을 두 차례씩 개최하여 국가지도자로서 세계 무대에 드러냈다. 또한 2021년 1월 10일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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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 == 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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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 === 생애 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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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 | 198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 겸 수반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 네번째 부인인 고용희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6] 친형 김정철이 있었고, 여동생으로 김여정이 있다. 그밖에 동복 누나 김혜경, 동복 형 김정남, 동복 누이 김설송, 김춘송, 친구 권우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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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 당초 그의 출생 정보에 관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출생연도에 대해서 김일성(1912년생)과 김정일(1942년생)의 출생연도와 끝자리를 맞춰 1982년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며, 김정일과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후지모토 겐지는 1983년생이라고 밝혔으나, 후에 대한민국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서는 김정은의 유학 시절 여권 등을 근거로 1984년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출생지에 대해선 평안북도 창성군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강원도 원산시에 위치한 김정일의 별장 "602호 초대소''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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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 === 학창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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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 김정은의 어린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를 거쳐 16세 때 스위스로 유학하여 김나지움(일반계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한다. 스위스 베른 근교의 중학교인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에 유학,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학교 기록 등에 따르면 중학교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일어 보충학습을 받은 뒤 1998년 8월에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해당)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9학년이던 2000년 말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담임이었던 시모네 쿤은 마이니치(每日; 매일)신문에 “그가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서 ‘내일 귀국한다’고 말한 뒤,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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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인민회의와 로동신문 보도를 통해 김정운이 아닌 김정은으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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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 === 군 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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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 귀국 뒤, 2000년대 중반부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버지 김정일 및, 조선노동당과 주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아버지인 김정일의 권유로 조선 인민군에서 하전사로 입대하였으며 하전사로서 1년 6개월 동안 군복무를 한 이후 하전사에서 곧바로 중장으로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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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한편 김정일은 2009년 3~4월경 김정은을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임명해 자신을 대신해서 엘리트들을 감시하게 하고, 김정일 사후에도 김정은이 엘리트들을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군사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우동측 부부장이 김정은의 보위부를 통한 엘리트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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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 === 권력 승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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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당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실질적인 무력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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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시점은 2009년으로, 대북 소식지가 이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인을 거부했으며,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와 같은 국내 대북 전문가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김정은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등을 들며 후계자 지명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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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 그러나 머지 않아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한 것을 중국에 알리는 등 후계자 지명이 구체화 됨에 따라 후계자 지명은 기정 사실화되었으며, 김정일 유고시 김정은의 군부 장악 가능성에 대한 예측 보도가 뒤를 잇기 시작했다. 그 후 2010년 9월 27일 조선인민군 대장 임명, 28일 3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정은은 북조선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되었다. 그동안 유년기, 청소년기의 사진으로만 알려져왔던 김정은의 얼굴은 후계자로 확정된 9월 28일 노동당대표회의 기념사진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다. 10월 6일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을 경축하는 행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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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 김정은의 3대 세습체제 구축은 북조선 내외에 불만을 가중 시켰다. 북한 내부에선 3대 세습에 대한 반발 조짐이 일면서 김씨 부자를 비방하는 전단이 돌거나 폭약이 밀반입 되는 사건이 발생 했으며, 일본의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내부 조직원들도 세습에 대해 반발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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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 === 연평도 포격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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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연평도 포격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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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 [[김정은/생애|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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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정은/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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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30 | ==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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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31 | 연평도 포격에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 등 여러 면에서 비판과 경제개혁 및 개방의 호평등 호불호가 갈리며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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