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6 vs 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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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병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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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초 딸 김나열은 개성의 한 여학교의 교사로 있었다. 그는 개성에 있던 김나열을 찾아보기도 했다. 1944년 스스로 인왕산의 사찰을 떠난 나혜석은 아이들이 있는 경성시내에 자주 나타나 딸 김나열이 머무는 곳에서 얼마간 의탁하다가 서울의 둘째 오빠 나경석의 집에 갔으나 쫓겨났다. 그는 작품 활동을 계속 하려 했으나 파킨슨병과 우울증은 악화되었고, 주변에서는 파킨슨병으로 장애를 겪는 그에게 폭언과 조롱을 퍼부었다. 그 뒤 주변에서는 그를 부양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했고, 한때 안양 양로원에 가 있다가, 1944년 10월 22일 오빠 나경석에 의해 '최고근'이라는 불교명으로 인왕산 근처 청운 양로원에 맡겨졌다. 당시 청운양로원의 원장은 오빠 나경석의 친구였고, 양로원으로 데리고 간 것은 그의 올케이자 나경석의 부인인 배숙경이었다. 심한 병으로 거동도 어려웠고 많이 늙은 것 때문에 올케 배숙경은 그를 환갑이 넘은 노파라고 주위 사람을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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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과 관절염, 중풍 등은 악화되었고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지자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 몰래 청운양로원을 빠져나오기도 했지만 김우영이 경찰까지 동원하여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여 만날 수가 없었다. 1945년 정신이상이 심하고 건강이 안좋다는 이유로 양로원에서 퇴소하고 1945년 해관 오긍선이 운영하는 경기도 시흥군의 안양 경성 기독보육원의 농장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다시 경성보육원 농장을 탈출하여 서울에 갔지만 남편 김우영의 방해와 경찰 신고로 자녀들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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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과 관절염, 중풍 등은 악화되었고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지자 사람들은 그를 정신이상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 몰래 청운양로원을 빠져나오기도 했지만 김우영이 경찰까지 동원하여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여 만날 수가 없었다. 1945년 정신이상이 심하고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양로원에서 퇴소하고 1945년 해관 오긍선이 운영하는 경기도 시흥군의 안양 경성 기독보육원의 농장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다시 경성보육원 농장을 탈출하여 서울에 갔지만 남편 김우영의 방해와 경찰 신고로 자녀들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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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과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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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가로, 시와 소설과 평론을 쓴 문인으로, 그리고 여권운동가로서도 폭넓은 삶을 살았다. 특히 「조선독립」에서부터 「선전, 비평」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날카로운 안목과 필력으로 그의 문장은 일세를 풍미했다. '자화상', '스페인 풍경', '누드' 등의 회화, '경희', '정순' 등의 소설을 남긴 작가, 또 3.1 운동 당시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5개월의 옥고를 치른 민족주의자 나혜석은 불륜이란 한 단어에 막혀 완전히 평가절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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