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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 146 | 또한 그는 모성애 역시 학습된 학습의 결과물이라며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다.”라고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혼에 대한 상처를 씻으려고 일본에서 그림공부에 몰두하던 나혜석은 일본 동경에서 열리는 제전에 출품하기 위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그림을 그려 제 12회 제전에서 입선하고 다시 귀국하여 선전에 출품하기 위하여 금강산과 해금강을 주유하며 그림 공부에 열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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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 148 | === 작품 활동과 사회 활동 === |
| 149 | 1935년 초 경성부에서 소출품전을 가졌다. 1935년 '신생활에 들면서'를 삼천리 지에 발표, 구습과 인습에 얽매인 정조 개념의 해체를 다시 주장하였다. 자신이 정조를 지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정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일부 유교와 기독교계 인사들은 그가 불순한 뜻을 품고 사회 분란을 조장한다며 비밀리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신고, 총독부 경찰들의 내사를 당하기도 했다. | |
| 149 | 1935년 초 경성부에서 소출품전을 가졌다. 1935년 '신생활에 들면서'를 삼천리 지에 발표, 구습과 인습에 얽매인 정조 개념의 해체를 다시 주장하였다. 자신이 정조를 지키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정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부 유교와 기독교계 인사들은 그가 불순한 뜻을 품고 사회 분란을 조장한다며 비밀리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신고, 총독부 경찰들의 내사를 당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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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 151 | 이혼과 냉대에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고향 수원으로 왔다. 집과 가까운 화령전과 서호, 화성을 찾아 그림을 많이 그렸다.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가 `화령전 작약`(1935)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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